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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한 달 사이에 상주가 되었다가 혼주가 되었다. 93년을 사시고 어머니가 하늘로 떠나신 지 한 달 만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치매를 앓으시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드신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가셨다. 28년을 사신 그 집을. 앰뷸런스로 병원에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나는 이런 글을 적었다.
꿈 같은 나들이이자 아버지에게는 소풍이다. 우리네 인생이 소풍이라는 말이 불현듯 생각을 스친다.— 2025년, 페이스북
인생이 소풍이라면, 우리는 모두 잠시 왔다 가는 존재다. 그리고 소풍의 끝에는 돌아감이 있다. 이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함민복 시인의 시로 문을 열었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이 아니다
꽃이 지는 것도 꽃이 아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그 자리가 꽃이다 — 함민복, 「꽃」
열세 개의 장을 지나, 이 시가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비유로 읽었다. 지금은 내 삶의 요약으로 읽는다. 건강은 안에도 밖에도 없다. 피는 것에도 지는 것에도 없다. 그 사이, 그 자리, 그 경계에 있다. 세포는 막이라는 경계로 살고,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경계에서 뛰며, 숨은 들이쉼과 내쉼의 경계에서 생명을 잇는다. 그리고 사람은 나와 너의 경계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돌아보면 이 책은 하나의 경계를 층층이 올라온 여정이었다. 가장 안쪽 세포막과 장벽과 혈뇌장벽이라는 몸의 경계에서 시작해, 나와 너를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지나, 마침내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의 경계—상호내주—에 이르렀다. 크기와 층위는 달라도 물음은 언제나 하나였다. 네 경계는 살아 있는가. 몸이든 마음이든 관계든, 건강은 늘 같은 것을 묻는다. 경계에 서서, 그 경계를 살아 있게 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그 물음이었다—경계에서, 경계를 바라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의 역설이 남는다. 경계에서 태어난 것들은, 끝내 그 경계를 넘어선다. 12장의 상호내주가 그러했다. 서로 안에 깊이 깃들어, 마침내 서로를 가르던 경계가 사랑 안에서 투명해지는 것. 구별은 남되, 벽은 사라지는 것. 세포막도 그렇다. 그 단단한 경계는 사실 매 순간 무언가를 안으로 밖으로 흘려보내며, 안과 밖을 하나의 생명으로 잇고 있다. 가장 완고해 보이는 경계가, 실은 가장 부지런한 소통의 자리다. 경계의 완성은 벽이 아니라 통로다.
경계에서 시작해, 경계가 사랑 안에서 무너지는 자리까지.
어머니가 떠나신 다음 날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늘 집에서 입던 가운을 입고. "엄마 잘 갔다 왔어?" 나는 물었고, 어머니는 그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셨다. 그 미소가, 나에게는 마지막 安息처럼 느껴졌다.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무언가 태어난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자리에서도. 나는 이 책을 그 믿음으로 썼다. 부풀지 말고 자라기를, 홀로 타 버리지 말고 관계 안에서 쉬기를, 최선을 다한 뒤에 "됐다"고 말할 수 있기를.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그 자리가 꽃이다.
이 장의 참고
함민복,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