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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한 달 사이에 상주가 되었다가 혼주가 되었다. 93년을 사시고 어머니가 하늘로 떠나신 지 한 달 만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치매를 앓으시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드신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가셨다. 28년을 사신 그 집을. 앰뷸런스로 병원에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나는 이런 글을 적었다.

꿈 같은 나들이이자 아버지에게는 소풍이다. 우리네 인생이 소풍이라는 말이 불현듯 생각을 스친다.— 2025년, 페이스북

그때는 몰랐는데, 그 한 달이 이 책의 마지막 부를 통째로 살아 낸 시간이었다. 한쪽 문으로 앞 세대를 보내고 다른 쪽 문으로 다음 세대를 들이는 일. 검은 옷을 입었다가 한 달 뒤에 다른 옷을 갈아입는 일. 그것이 5부에서 내가 계승이라 부른 것의 실물이었다.

인생이 소풍이라면, 우리는 모두 잠시 왔다 가는 존재다. 그리고 소풍의 끝에는 돌아감이 있다. 이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함민복 시인의 「꽃」으로 문을 열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첫 줄로.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 함민복, 「꽃」

열일곱 개의 장을 지나, 이 시가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첫 줄만 보였다. 경계에서 꽃이 핀다는 것, 가르는 자리가 곧 피어나는 자리라는 것. 지금은 마지막 연이 더 오래 남는다. 눈물이 메말라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이 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

왜 하필 눈물인가. 눈물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슬픔이든 감동이든, 눈물은 바깥의 무언가가 내 안까지 건너왔을 때 흐른다. 안과 밖이 아직 통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러니 눈물이 메마른다는 것은 슬픔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경계가 통로이기를 그쳤다는 뜻이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거기서 갈린다. 경계는 저절로 살아 있지 않다. 거기 서는 사람이 있어야 산다. 건강은 안에도 밖에도 없다. 그 사이, 그 자리, 그 경계에 있다. 세포는 막이라는 경계로 살고,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경계에서 뛰며, 숨은 들이쉼과 내쉼의 경계에서 생명을 잇는다. 그리고 사람은 나와 너의 경계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돌아보면 이 책은 하나의 물음을 다섯 층으로 밟아 올라온 여정이었다. 부풀기만 하는 시대를 진단하는 데서 시작해, 세포막과 장벽과 혈뇌장벽이라는 몸의 경계에서 그 원리를 배웠다. 그 경계가 시간 속으로 들어가 나아감과 물러섬의 리듬이 되는 것을 보았고, 상처가 통로가 되고 두 사람이 서로 안에 깃드는 자리에서 새것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얻은 경계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까지 왔다. 층위는 달라도 물음은 언제나 하나였다. 네 경계는 살아 있는가. 몸이든 마음이든 관계든 공동체든, 건강은 늘 같은 것을 묻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두 개의 역설이 남는다. 하나는 밝고 하나는 어둡다.

밝은 쪽부터 말하면, 경계에서 태어난 것들은 끝내 그 경계를 넘어선다. 13장의 상호내주가 그러했다. 서로 안에 깊이 깃들어, 마침내 서로를 가르던 경계가 사랑 안에서 투명해지는 것. 구별은 남되, 벽은 사라지는 것. 세포막도 그렇다. 그 단단한 경계는 사실 매 순간 무언가를 안으로 밖으로 흘려보내며, 안과 밖을 하나의 생명으로 잇고 있다. 가장 완고해 보이는 경계가, 실은 가장 부지런한 소통의 자리다. 경계의 완성은 벽이 아니라 통로다.

경계에서 시작해, 경계가 사랑 안에서 무너지는 자리까지.

어두운 쪽은 14장에 있었다. 어떤 경계는 우리 대에 끝내 통로가 되지 못한다. 칠십 년을 아물지 못한 자리에 지뢰가 묻혀 있고, 그 위로 두루미가 내려앉는다. 상처가 생명을 지키고 있고 그 상처를 치료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자리 앞에서, 나는 이 책이 그렇게 쉽게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임진각에서 통일의 종을 치던 날, 종소리보다 아이 목소리가 컸다. 그때는 그저 우스워서 그 말을 적었다. 지금은 그것이 이 책의 마지막 문턱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 풀지 못한 경계는 결국 물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5부가 필요했다. 무엇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15장에서 나는 사랑과 존중을 갈랐다. 사랑은 받아들이는 일이고 존중은 놓아주는 일이며,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뒤의 것이 어렵다. 16장에서는 다리를 이야기했다. 건너간 사람은 다리를 기억하지 않지만, 다리가 없으면 아무도 건너지 못한다. 잊히는 것이 다리의 실패가 아니라 완성이다. 그리고 17장에서, 나는 이 책이 가장 오래 미뤄 둔 문장에 도착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세 장이 결국 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 쓰고 나서야 알았다. 물려준다는 것은 내 것을 넘겨주는 일이 아니라 내가 비켜서는 일이라는 것. 존중은 자리를 내주는 일이고, 다리는 밟히는 일이며, 됐다고 말하는 것은 더 쥐지 않겠다는 뜻이다. 계승은 주는 동작이 아니라 놓는 동작이다.

그러고 보면 그 한 달이 나에게 가르친 것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를 보내 드리는 일도, 아들을 보내는 일도, 결국은 붙잡고 있던 손을 펴는 일이었다. 하나는 슬퍼서 폈고 하나는 기뻐서 폈지만, 손을 편다는 점에서 두 일은 같았다.

어머니가 떠나신 다음 날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늘 집에서 입던 가운을 입고. "엄마 잘 갔다 왔어?" 나는 물었고, 어머니는 그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셨다. 그 미소가, 나에게는 마지막 安息처럼 느껴졌다.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무언가 태어난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자리에서도.

나는 이 책을 그 믿음으로 썼다. 부풀지 말고 자라기를, 홀로 타 버리지 말고 관계 안에서 쉬기를, 최선을 다한 뒤에 "됐다"고 말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조용히 비켜설 수 있기를.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경계가 벽이 아니라 막이기를, 그리고 그 막이 당신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열려 있기를 바란다.

멈추는 자리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 글의 참고

함민복, 「꽃」(『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필자의 페이스북 기록(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