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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N
17 장

성과에서 성숙으로

다음 세대의 경계를 위하여

스물세 살이던 해에 들은 설교 한 편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훗날 장인이 되신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세상에 한 무명의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한 작은 마을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로 인해 그 작은 마을이 변했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장인어른의 설교, 1990년대 초

그 한 문단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까지 나는 성공을 크기로 재고 있었다. 얼마나 알려지는가, 얼마나 커지는가. 그런데 저 문장은 다른 자를 내밀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한 마을이 변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삼십 년 뒤 그분은 담도암으로 십구 개월을 앓다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그분은 자신이 설교한 대로 사셨다. 그분을 보내 드리며 나는 뒤늦게 한 가지를 알았다. 그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언젠가 내가 그 무명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나 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그분이 그 무명의 사람이었고, 내가 그 작은 마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그분은 한 사람을 가르쳤고, 그 한 사람이 변했다. 이 장에서 하려는 이야기가 결국 그 설교의 풀이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더 크게 부풀라는 격려가 아니다.

세 단어로 그 마음을 옮겨 보고 싶다. 성과, 성장, 성숙.

흥미롭게도 이 세 단어는 모두 이룰 성(成)을 지녔다. 그런데 그다음 글자가 길을 가른다. 성과(成果)는 열매 과(果)다. 밖으로 내놓을 결과물, 측정되고 비교되는 산출이다. 성장(成長)은 길 장(長)이다. 안에서 자라남, 구조와 함께 커지는 일이다. 성숙(成熟)은 익을 숙(熟)이다. 때가 되어 무르익고, 물러날 줄 아는 것이다. 1장에서 말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여기서 열매를 맺는 셈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멈추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성숙이다. 니체가 그린 진짜 강한 사람도 쉼 없이 달리는 자가 아니라, 고요히 느리게 움직이며 지나친 분주함을 싫어하는 여가의 사람이었다. 쉼 없이 부푸는 사람은 그가 경멸한 최후의 인간에 가깝지, 결코 초인이 아니다. 성과가 목표인 삶은 늘 바깥을 보고, 성숙에 이른 삶은 안이 정렬된다. 성장이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묻는다면, 성숙은 이 길이 나에게 맞는가를 묻는다.

성장과 팽창의 이 차이를, 교육학자 이성회 교수는 한 문장으로 벼려 주었다. 성장은 통합성(integrity)을 잃지 않으면서 경계가 넓어지는 것이고, 통합성 없이 외형만 커지는 것은 팽창이며, 팽창은 죽음이다. 안이 함께 자라며 밖이 넓어지면 성장이지만, 안은 그대로인데 겉만 부풀면 그것은 죽음을 향한 팽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1장부터 풍선과 나무로 이야기해 온 그 구별을, 그는 이렇게 학문의 언어로 정확히 짚어 주었다.

성숙이란 삶의 무게가 밖에서 안으로 옮겨오는 것이라고, 나는 오래 생각해 왔다. 놀랍게도 역사가 토인비도 문명 전체에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가 본 참된 성장은 힘을 밖, 곧 정복과 확장이 아니라 안, 곧 자기를 다스리는 힘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같은 것을 한 사람에게서 보았다. 미숙한 사람은 잣대를 늘 밖에 둔다. 남이 어떻게 볼까. 성숙한 사람은 그 잣대가 안으로 들어와, 자기 마음의 감각으로 판단한다. 역사가와 심리학자가 각자 자리에서, 내가 본 것과 같은 진실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오래된 기도 하나를 꺼내고 싶다. 성경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짧게 등장해 이렇게 구한다.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경(地境)을 넓혀 주십시오. 처음 이 기도를 들었을 때 나는 불편했다. 더 많이, 더 크게 달라는 기도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 책의 언어로는 팽창을 구하는 기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경이라는 말을 다시 본다. 지경은 땅의 경계다. 야베스가 구한 것은 더 부풀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넓혀 달라는 것이었다. 이 둘은 전혀 다르다. 부풀기는 얇아지면서 커지는 것이고, 경계가 넓어지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자라는 것이다. 풍선은 커질수록 막이 얇아지지만, 나무는 굵어질수록 껍질이 두꺼워진다. 그러니 야베스의 기도는 팽창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장을 구하는 기도다. 더 많이 가지게 해 달라가 아니라, 더 많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이 가장 오래 미뤄 둔 물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1장에서 본 부풀기를 떠올려 보자. 부풀기만 하던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하기를 두려워했다. 진짜 실패가 무서워, 최선을 아껴 두고 부풀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를 어떻게 부풀기에서 자라기로 돌려세울까? 답은 뜻밖에도 역설적이다. 최선을 다해 봐야, 비로소 자신의 경계를 알 수 있다.

경계란 내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경계를 끝내 모른다. 했으면 잘했을 텐데라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 자신을 두기에, 자기가 실제로 어디까지인지를 영영 알 수 없다. 경계를 모르니 자랄 방향도 모른다. 그저 사방으로 부풀 뿐이다. 팽창은 자기 경계를 모르는 자의 성장 흉내다. 반대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자기 경계에 닿는다. 여기까지가 나구나. 이 벽이 지금의 나구나. 그 벽에 부딪혀 본 사람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6장에서 근육이 자극받은 자리에서 굵어졌듯, 사람은 자기 경계에 부딪힌 자리에서 자란다.

검증된 유한한 실패가, 검증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보다 언제나 더 살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놓아야 할 것은 단 한 문장이다. 만약 내가 그때 최선을 다했더라면. 이 알리바이를 내려놓는 순간, 진짜 문장이 찾아온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성숙의 도착점이고, 우리가 11장에서 만난 安息의 다른 이름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비로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 息하는 자리 말이다.

그런데 됐다고 말한 다음에도 하나가 남는다. 이 책이 가장 오래 미뤄 둔 자리다. 여기까지 나는 줄곧 주는 쪽을 이야기해 왔다. 15장에서는 놓아주는 일을, 16장에서는 밟히는 일을 말했다. 그런데 삶의 끝으로 갈수록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는 받아야 한다. 누가 나를 태워다 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밥을 차려 준다.

평생 주는 자리에 서 있던 사람에게 이것이 가장 어렵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온다. 겸손하게 들리지만 나는 그 말이 조금 의심스럽다. 그 밑에 마지막까지 남은 한 문장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도 결국 쥐고 있는 자리다.

13장에서 상호내주를 이야기하며 나는 그것이 서로 안에 깃드는 일이라고 했다. 서로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상호내주가 아니다. 그러니 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마지막 성숙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주역』 「계사전」에 이런 말이 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막다른 곳에 이른 것이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라는 뜻이고, 그렇게 변한 것만이 오래간다는 뜻이다. 이 책이 처음부터 말해 온 것이 결국 그것이다. 부풀기만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가는 것은 리듬을 가진 것이다. 나아갔다 물러서고, 들이쉬었다 내쉬고, 자랐다 멈추는 것.

이 책이 지나온 자리를 여섯 줄로 접으면 이렇게 된다.

생존은 경계를 지켰다.
성공은 경계 밖에 자리를 만들었다.
성장은 경계를 넓혔다.
성숙은 경계에 서서 경계를 바라보았다.
사랑은 경계를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경계마저 놓는다.

나는 이제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더 크게 부풀라는 격려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자기 경계에 닿아 보라는 초대다. 그 경계에서 다치고, 그 상처로 자라고, 그 자람을 나누고, 다한 뒤에는 쉬라는 것. 부풀지 말고 자라라는 것. 홀로 서지 말고 관계 안에서 태어나라는 것.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한 마을이 변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경계다.

이 장의 참고

아널드 토인비(에테르화) · 칼 로저스(내적 평가) · 칼 융(개성화) · 프리드리히 니체(최후의 인간) · 역대상 4:10 · 『주역』 「계사전」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