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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잊히면서 남는다
몇 해 전, 진짜 고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적어 둔 적이 있다. 세상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도, 때로는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기 소명을 찾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오면서 만난 그런 분들을 떠올리며 공통점을 넷으로 적었다.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배우려고 한다.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본다. 뭐가 감사한지, 계속 감사하다고 한다. 자신이 발견한 사실, 혹은 지식을 자꾸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한다.— 2022년, 페이스북
네 가지를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것들이 결국 한 가지를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넷 다 자기를 앞세우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다. 다 안다고 하지 않으니 배우고,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보니 힘을 좇지 않고, 감사하니 자기 공으로 돌리지 않고, 아는 것을 나누니 독점하지 않는다. 고수는 크게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진 사람이다.
그 글을 나는 이렇게 맺었다. 이 글을 읽으며 혹시 내 이야기를 쓴 건가 싶다면 맞다, 바로 당신 이야기다. 포기하지 마세요. 그냥 버티세요. 곧 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그때는 지나가는 말로 적은 줄 알았는데, 이 장은 결국 그분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이십 년쯤 전, 보스턴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후배가 선물한 책 한 권을 읽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다. 병으로 죽어 가는 노교수가 첫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십 년간 사회심리학을 가르쳤지만 이번에는 이 강의를 들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죽을병을 앓고 있어 학기를 마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걱정되면 다른 과목으로 바꾸어도 좋다.
스승이 자기 죽음을 강의 계획서에 적어 넣은 것이다. 12장에서 말한 상처를 여는 일의 가장 마지막 형태가 저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눈물로 다짐했다. 진짜 스승이 되겠다고.
그리고 십 년이 흘러 그 책을 다시 펴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난 지난 10년간 어떤 스승이었을까? 좋은 스승이란 어떤 스승일까? 인기 있는 스승은 아닐 텐데. 강의를 잘하는 교수? 강의만 잘하면 좋은 교수일까? 연구를 잘하는 교수? 누구를 무엇을 위한 연구였을까?— 2014년, 페이스북
그 십 년 동안 많은 강의를 만들었고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눈물을 쏙 뺄 만큼 혼낸 적도 있고 내 감정에 못 이겨 학생들 앞에서 운 적도 있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십 년의 답이 무엇이었느냐고 지금 묻는다면, 나는 강의도 연구도 아니라고 답하겠다.
스승의 목표는 제자에게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다리는 건너간 사람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건너편에 도착한 사람은 앞을 보고 걸어가지 뒤를 돌아 다리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리가 없으면 아무도 건너지 못한다. 잊히는 것이 다리의 실패가 아니라 다리의 완성이다.
내가 이십 년 넘게 출근하는 학교에 그 완성의 한 예가 있다.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과 이과대학이 서 있는 자리다. 그 건물들 앞을 매일 수천 명이 지나가지만, 그 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9년 3월 17일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교수 부인들이 한 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고, 한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우겼다. 현관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다른 한 명이 뒷문으로 들어와 뒤에서 총을 쏘았다. 총을 맞은 사람은 에델 밴 와고너 언더우드,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가문의 며느리이자 원한경 박사의 아내였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지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총을 쏜 젊은이들은 그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평생을 바쳐 제자를 키웠는데 그 제자가 아내를 죽였다. 그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원한경 박사는 사형 선고를 받은 그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과도한 수사와 강압 수사를 하지 말라며, 자기 아내를 죽인 자들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 뒤 전쟁이 나자 홀로 부산으로 피난해 전시 캠퍼스를 준비하고 고아원을 제주도로 옮기는 일에 힘쓰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아들 원일한 박사는 어머니가 총에 맞은 그 집과 주변 만 평의 땅을 학교에 기증했다. 그 땅 위에 지금의 건물들이 섰다. 2004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가문은 남은 소유권까지 모두 학교에 넘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생각한다. 저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 이야기를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 다리는 잊히면서 건너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 가문이 남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땅이었고, 땅 위에 선 것은 그들의 기념비가 아니라 남의 강의실이었다.
1장에서 우리는 부풀기와 자라기를 갈랐다. 이제 그 구별을 마지막으로 다시 말할 수 있다. 부풀기는 이름을 키우는 일이고, 자라기는 이름이 지워져도 남는 것을 만드는 일이다. 팽창한 사람은 자기 이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 이름이 사라져도 남을 것을 짓는다. 이 장의 제목을 이름 없이, 얼굴 없이라고 붙인 것은 겸손해 보이려는 수사가 아니다. 1장에서부터 준비된 논증의 결론이다.
영어에서 축복을 뜻하는 bless는 피를 뜻하는 옛말과 뿌리를 나눈다. 반면 행복을 뜻하는 happiness의 뿌리는 우연을 뜻하는 hap이다. 행복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축복은 누군가 흘린 피에서 온다. 내 피 흘림이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되는 자리, 그것이 경계에 선 사람이 마지막으로 서는 자리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 위로, 누가 걸어가고 있는가.
이 장의 참고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에델 밴 와고너 언더우드(1949)와 원한경·원일한 박사의 기록 · bless와 happiness의 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