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번호

이 글은 비밀번호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KREN
14 장

가장 닫힌 경계에서 피어난 생명

DMZ

한반도에서 사람이 가장 오래 들어가지 못한 땅에,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멸종위기 동물이 산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그어 놓은 선을 따라, 동에서 서로 이백오십 킬로미터, 폭 사 킬로미터의 띠가 있다. 넓이로는 구백 제곱킬로미터 남짓, 서울보다 조금 넓다. 그 안에서 조사된 생물이 육천백육십팔 종이다. 한반도의 멸종위기종 이백육십칠 종 가운데 백두 종이 이 띠에서 확인되었다. 세계에 열다섯 종뿐인 두루미 가운데 일곱 종이 여기서 겨울을 난다. 산양이 있고 사향노루가 있고 반달가슴곰이 있고 수달과 독수리가 있다. 깊은 숲에는 아직 호랑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돈다.

이 사실은 늘 아름다운 이야기로 소비된다. 사람이 물러나니 자연이 돌아왔다는 이야기, 분단이 뜻밖의 낙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나는 이 장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쓰면 이 책이 지금까지 말해 온 것을 배반하게 된다.

그 땅이 보존된 이유는 지뢰다.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지뢰가 가장 조밀하게 묻힌 곳이 이 띠와 그 언저리다. 두루미가 거기 내려앉는 것은 그곳이 안전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서다. 그러니 DMZ는 자연보호구역이 아니다.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손댈 수 없었던 상처다. 칠십 년을 아물지 못한 채 벌어져 있는, 한 나라의 갈라진 자리다.

더 곤혹스러운 사실이 있다. 이곳을 오래 연구해 온 사람들은 평화를 걱정한다. DMZ생태연구소의 김승호 소장은 이 지역이 지켜진 것은 환경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군사적 대치 덕분이었으므로, 대치가 풀리면 심각한 위협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을 연구하는 정수영은 더 아픈 말을 한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이 곧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뢰를 걷어 내려면 땅을 파야 하고, 땅을 파면 그 위의 것이 사라진다.

상처가 생명을 지키고 있고, 그 상처를 치료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보다 더 정확한 경계의 역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4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살아 있는 경계는 가르면서 동시에 잇는다고 했다. 완전히 닫혀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막 안에서 세포는 굶어 죽는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DMZ는 반증인가. 완전히 닫혔는데 생명이 넘치지 않는가.

아니다. DMZ의 생명은 그 선이 살아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람이 비운 자리에 생명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생명은 우리가 손을 뗀 어떤 틈에도 들어간다. 폐허에도 들어가고 체르노빌에도 들어간다. 그것은 생명의 힘에 관한 증거이지 벽의 공로가 아니다. 두루미가 지뢰밭에 앉아 있다고 해서 지뢰밭이 좋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벽에도 생명은 깃든다. 그러나 그것은 벽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그 벽에 구멍이 났던 때가 있었다. 1991년 봄, 일본 지바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분단 사십육 년 만에 남과 북이 하나의 팀으로 나갔다. 팀 이름은 코리아, 유니폼에는 두 나라 국기가 아니라 한반도 모양이 붙었고, 시상대에서는 애국가도 아니고 북의 국가도 아닌 아리랑이 울렸다. 여자 단체전에서 이 팀이 중국을 꺾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남쪽의 현정화와 북쪽의 리분희가 그 팀에 있었다.

이십일 년 뒤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나와 이렇게 적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습니다. 왜 남한과 북한은 둘로 나뉘어져 있어야 하는지, 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인지.— 2012년, 페이스북

그때 나를 더 아프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얼마 전 리분희와 현정화가 중국에서 만나려 했는데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이십 년 전에는 같은 팀으로 같은 시상대에 올랐던 두 사람이, 이제는 제삼국에서 차 한잔 나누는 것도 안 되었다. 열렸던 경계가 다시 닫힌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울면서 감사하기도 했다. 남과 북이 최악으로 치닫던 그때에, 하필 그 기억이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런 문장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봐라, 할 수 있다. 가능한 일이다.

한 번 열려 본 경계는 그 사실이 지워지지 않는다. 7장에서 나는 한 번 건너 본 사람이 다음 문지방 앞에서 조금 덜 무서워한다고 썼다. 공동체도 같다. 지바는 사십육 년 만의 첫 문지방이었고, 그 뒤로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문지방에는 나도 조금 얹혀 있다. 나는 육 년 넘게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유치위원회에서 일했다. 2007년 IOC 총회에서는 갑자기 최종 발표자로 지명되어, 앞이 안 보일까 봐 원고를 통째로 외우고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속으로 그 원고를 외웠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전에도 떨어졌으니 두 번 내리 진 셈이다. 세 번째에야 우리는 2018년 대회를 따냈다.

유치가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 협약이 어긋나고 예산이 모자라고 여론이 싸늘해지는 동안, 우리가 이러려고 유치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유치위에서 보낸 육 년 중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정작 회의실이 아니었다. 실사단이 컬링장에 왔을 때 강원도민 이천십팔 명이 합창단을 이루어 아리랑을 부르던 장면, 그리고 실사단이 탄 버스를 배웅하러 길가에 늘어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 앞에서 나는 울면서 다짐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그 대회의 개회식에서 남과 북이 함께 걸어 들어왔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는 다시 단일팀이 꾸려졌다. 지바로부터 이십칠 년이 지나 있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를 빠뜨리면 안 된다. 그 단일팀은 마냥 아름답기만 하지 않았다. 오래 준비해 온 우리 선수 몇이 그 결정 때문에 뛸 자리를 잃었고, 그 일로 적지 않은 사람이 화를 냈다. 나는 그 화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열림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고,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는지 묻지 않는 열림은 환대가 아니다. 13장에서 환대에는 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인이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환대이지, 남의 것을 대신 내주는 것은 환대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는 것은 벽이 무너져 아무 선도 없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4장의 언어로 하면 막이 터진 세포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선이 벽에서 막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전히 나누되, 무엇을 언제 들일지 매번 가려내면서, 가르는 동시에 잇는 선.

2018년 첫날, 나는 가족과 임진각에 갔다. 새해에 통일을 염원하며 종을 치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 내가 페이스북에 남긴 말은 이랬다.

통일을 염원하며 임진각에서. 그런데 종소리보다 아이 목소리가 더 크네.— 2018년 1월 1일, 페이스북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있다. 무거운 자리에 왔는데 아이가 떠들어서 종소리가 묻혔다. 그때는 그저 우스워서 적은 말이었다. 지금 다시 보니 이 장의 결론이 거기 있었다.

종은 어른들이 친다. 우리는 종을 치고, 성명을 내고, 회담을 하고, 또 결렬시킨다. 칠십 년 동안 그렇게 해 왔다. 그 소리 위로 아이 목소리가 얹혔다. 그 아이는 그날 통일이 무엇인지 몰랐고 자기 목소리가 종소리를 덮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 아이가 자란다. 그리고 우리가 끝내 막으로 바꾸지 못한 이 선을 물려받는다. 우리가 물려주는 것은 결국 두 가지다. 아물지 않은 상처 하나와, 그것이 한 번은 열린 적이 있다는 기억 하나다.

12장에서 나는 값은 안에서 치러지고 배움은 밖에서 거두어진다고 썼다. 이 선 앞에서 그 말은 시간의 언어가 된다. 값은 이 안에서, 이 세대에서 치러진다. 배움은 아직 이 회로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 종소리보다 목소리가 컸던 그 아이 쪽에서 거두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우리가 끝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비슷한 일을 다른 갈라진 땅에서 한 사람이 있다.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는 1990년, 북아일랜드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를 다시 썼다. 제목은 「트로이의 치유」였다. 낫지 않는 상처 때문에 버려졌던 사람을 결국 데리러 가는 이야기를, 서로를 오래 버려 둔 땅 위에 다시 올린 것이다. 그 극의 코러스가 이렇게 노래한다. 역사는 무덤 이편에서 희망을 갖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일생에 한 번쯤은 오래 기다린 정의의 밀물이 밀려와 희망과 역사가 운을 맞추는 때가 온다고.

나는 그 말을 이 선 앞에서 다시 읽는다. 히니는 그런 일이 자주 온다고 하지 않았다. 일생에 한 번쯤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991년 봄의 지바가 우리에게는 그 한 번이었다.

경계를 물려주는 일이 이 책의 마지막 물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에게서 시작해 너에게로 갔다. 상처가 통로가 되는 자리를 보았고, 두 사람이 서로 안에 깃드는 자리를 보았고, 이제 한 공동체가 반세기 넘게 닫아 둔 자리까지 왔다. 남은 것은 시간의 방향이다. 내가 배운 경계를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건네는가. 그것이 이 책의 마지막 부다.

이 장의 참고

국립생태원 DMZ 일원 생물다양성 조사(6,168종) · 환경부 멸종위기종 자료 · DMZ생태연구소 김승호 소장과 식물연구자 정수영 인터뷰 — NPR, 2019년 4월 20일 ·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지바, 1991) 남북 단일팀 · 영화 「코리아」(2012) · 2018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 셰이머스 히니, 『트로이의 치유 — 소포클레스 「필록테테스」의 한 판본』(1990) · 필자의 페이스북 기록(2012,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