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밀번호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경계를 위하여
언젠가 채플에서 수천 명의 학생 앞에 서서 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사실 나 자신에게도 하고 있었다. 이제 이 책의 마지막에서, 나는 다음 세대에게 정말로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것은 "더 크게 부풀어라"가 아니다. 세 단어로 그 마음을 옮겨 보고 싶다. 성과, 성장, 성숙.
흥미롭게도 이 세 단어는 모두 이룰 성(成)을 지녔다. 그런데 그다음 글자가 길을 가른다. 성과(成果)는 열매 과(果)다. 밖으로 내놓을 결과물, 측정되고 비교되는 산출이다. 성장(成長)은 길 장(長)이다. 안에서 자라남, 구조와 함께 커지는 일이다. 성숙(成熟)은 익을 숙(熟)이다. 때가 되어 무르익고, 물러날 줄 아는 것이다. 1장에서 말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여기서 열매를 맺는 셈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멈추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그것이 성숙이다. 니체가 그린 진짜 강한 사람도 쉼 없이 달리는 자가 아니라, 고요히 느리게 움직이며 지나친 분주함을 싫어하는 여가의 사람이었다. 쉼 없이 부푸는 사람은 그가 경멸한 '최후의 인간'에 가깝지, 결코 초인이 아니다. 성숙은 그 느림 쪽에 있다. 성과가 목표인 삶은 늘 바깥을 보고, 성숙에 이른 삶은 안이 정렬된다. 성장이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묻는다면, 성숙은 "이 길이 나에게 맞는가"를 묻는다.
성장과 팽창의 이 차이를, 교육학자 이성회 교수는 한 문장으로 벼려 주었다. "성장은 통합성(integrity)을 잃지 않으면서 경계가 넓어지는 것이고, 통합성 없이 외형만 커지는 것은 팽창이며, 팽창은 죽음이다." 안이 함께 자라며 밖이 넓어지면 성장이지만, 안은 그대로인데 겉만 부풀면 그것은 죽음을 향한 팽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1장부터 풍선과 나무로 이야기해 온 그 구별을, 그는 이렇게 학문의 언어로 정확히 짚어 주었다.
성숙이란 삶의 무게가 밖에서 안으로 옮겨오는 것이라고, 나는 오래 생각해 왔다. 놀랍게도 역사가 토인비도 문명 전체에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가 본 참된 성장은 힘을 밖(정복과 확장)이 아니라 안(자기를 다스리는 힘)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같은 것을 한 사람에게서 보았다. 미숙한 사람은 잣대를 늘 밖에 둔다—남이 어떻게 볼까. 성숙한 사람은 그 잣대가 안으로 들어와, 자기 마음의 감각으로 판단한다. 역사가와 심리학자가 각자 자리에서, 내가 본 것과 같은 진실에 이른 것이다. 성숙이란, 삶의 무게가 마침내 밖에서 안으로 옮겨와 자리 잡은 상태다.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이 가장 오래 미뤄 둔 물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1장에서 본 부풀기를 떠올려 보자. 부풀기만 하던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하기를 두려워했다. 진짜 실패가 무서워, 최선을 아껴 두고 부풀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를 어떻게 부풀기에서 자라기로 돌려세울까? 답은 뜻밖에도 역설적이다. 최선을 다해 봐야, 비로소 자신의 경계를 알 수 있다.
경계란 내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경계를 끝내 모른다. "했으면 잘했을 텐데"라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 자신을 두기에, 자기가 실제로 어디까지인지를 영영 알 수 없다. 경계를 모르니 자랄 방향도 모른다. 그저 사방으로 부풀 뿐이다. 팽창은 자기 경계를 모르는 자의 성장 흉내다. 반대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자기 경계에 닿는다. 여기까지가 나구나. 이 벽이 지금의 나구나. 그 벽에 부딪혀 본 사람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5장에서 근육이 자극받은 자리에서 굵어졌듯, 사람은 자기 경계에 부딪힌 자리에서 자란다.
검증된 유한한 실패가, 검증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보다 언제나 더 살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놓아야 할 것은 단 한 문장이다. "만약 내가 그때 최선을 다했더라면……." 이 알리바이를 내려놓는 순간, 진짜 문장이 찾아온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성숙의 도착점이고, 우리가 10장에서 만난 安息의 다른 이름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비로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 息하는 자리 말이다.
나는 이제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더 크게 부풀라는 격려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자기 경계에 닿아 보라는 초대다. 그 경계에서 다치고, 그 상처로 자라고, 그 자람을 나누고, 다한 뒤에는 쉬라는 것. 부풀지 말고 자라라는 것. 홀로 서지 말고 관계 안에서 태어나라는 것. 그것이 내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경계다.
이 장의 참고
아널드 토인비(에테르화) · 칼 로저스(내적 평가) · 칼 융(개성화) · 프리드리히 니체(최후의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