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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N
제 4 부

생성 — 경계에서 태어난 것들

상처, 관계, 그리고 성숙

11 장

상처 입은 치유자

경계의 신학

여러 해 전, 나는 연세대학교 채플 시간에 수천 명의 학생 앞에서 내 오래된 비밀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만점에 2.63이던 성적, 발표만 하려 하면 두근거리던 가슴, 외모와 낮은 자존감. 어릴 적에는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식판을 따로 써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오래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상처들을 꺼내 놓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강당이 조용해지고, 몇몇 학생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 성취가 아니라 내 상처가, 그들에게 가닿은 것이다.

왜 감춘 상처가 아니라 열린 상처가 사람을 살릴까? 얼마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나는 그 답의 한 자락을 몸으로 배웠다. 상주에서 아들의 혼주까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씩씩해야 했다. 그런데 그 억누름의 대가가 있었다.

슬픈 감정을 부인하고 억누르다 보니 모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몸에서 오는 신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2025년, 페이스북

정신의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에서, 감당하지 못한 상처가 마음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고 말한다. 감정을 닫아 버리면, 몸은 그 닫힘을 앓는다. 상처를 감추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몸을 병들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상처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열어야 하는 무엇이다.

가보르 마테는 이 단절을 더 깊은 곳에서 짚는다. 그와의 대담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이 있다. 트라우마의 본질은 나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감정을 닫는 것은 곧 나의 몸과, 나 자신과 끊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상처를 감추는 사람은 남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낯선 사람이 된다. 치유가 상처를 '여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열림은 곧 나 자신과 다시 이어지는 일이니까.

네덜란드의 사제이자 영성 작가 헨리 나우웬은 이것을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는 말로 붙잡았다. 치유자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를 치유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남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자기 상처를 통해 타인의 아픔에 닿는다. 나는 동료인 이지선 교수를 떠올린다. 대학생 시절 음주운전 사고로 전신에 큰 화상을 입고 수십 번의 수술을 견뎌 낸 그는, 지금 이화여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수많은 이들에게 살아갈 힘을 건넨다. 그의 상처가 닫히지 않고 열려, 타인이 드나드는 통로가 된 것이다.

상처 없는 사람은 닫힌 성(城)이다.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다.

왜 그럴까? 상처란 나의 표면이 뚫린 자리이기 때문이다. 매끈한 껍질로 닫혀 있던 내가, 그 자리에서 열린다. 아프다. 그러나 바로 그 열린 자리로만 타인이 들어올 수 있고, 나 또한 타인에게 나갈 수 있다. 상처는 곧 경계다. 안의 나와 밖의 세계가 만나는 자리. 5장의 호르메시스를 기억하는가. 죽이지 않을 만큼의 상처가 몸을 강하게 했다. 여기서 그 원리는 관계의 차원으로 올라온다. 죽이지 않을 만큼의 상처가, 사람을 치유자로 만든다. 우쭈쭈 시대는 상처를 감추고 괜찮은 척하라고 가르치지만, 감춘 상처는 결코 통로가 되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내 상처를 부끄러워했다. 더 많은 성취로 그것을 덮으려 했다. 부풀기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것은 덮은 상처가 아니라 열린 상처였다. 암 환자 앞에 섰을 때 그들의 두려움에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 역시 무너져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치유자는 경계에 서는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라는 경계를 닫지 않고 열어 두어, 그 자리로 타인의 아픔이 드나들게 하는 사람. 그렇게 열린 두 사람 사이에서 무엇이 태어날까? 그것이 이 책이 오래 준비해 온 마지막 이야기다.

이 장의 참고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 · 가보르 마테(트라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