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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학회장에 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암 학회 중 하나인 유럽종양학회. 하얀 가운을 벗고 정장을 차려입은 종양내과 의사 수천 명 사이에서, 나는 거의 유일한 체육학과 교수였다. 그 방에서 내 명찰에 적힌 소속 한 줄은 늘 설명이 필요했다. 나는 그 학회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이방인도 아니었다. 단상에 올라 발표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그 학문의 식구는 아니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 경계에 서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함민복 시인의 시 한 편을 자주 떠올렸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 함민복, 「꽃」
경계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나는 이 첫 줄을 가장 오래 생각했다. 왜 꽃은 하필 경계에서 피는가. 담장은 집의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이다. 그런데 시인은 바로 그 선 위에서 피어 있는 국화를 보았다. 가르는 자리가 곧 피어나는 자리라는 것. 문득 나는, 내가 늘 그런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체육학자다. 평생 몸을 연구했다. 그런데 내가 일해 온 자리는 언제나 경계였다. 체육 분야에서 나는 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단아였고, 의학 분야에서 보기에 나는 체육과 교수였다. 체육과 의학 사이, 운동과 종양학 사이, 어느 쪽의 온전한 식구도 아닌 자리. 혹시 여러분도 그런 자리에 서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해 외로웠던 자리, "나는 여기 사람인가, 저기 사람인가"를 자꾸 되묻게 되는 자리 말이다. 그 사이에 오래 서 있으면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경계는 단지 선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를 가장 많이 자라게 한 것은 안전한 안쪽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라, 늘 그 불안한 경계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이 글의 제목은 내가 만든 말이 아니다. 김주환 교수에게서 얻었다. 그는 명상을 경계에 서서 경계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안도 밖도 아닌 자리에 서서, 자기가 딛고 선 그 선을 바라보는 것.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내가 오래 서 있던 자리에 누군가 이름을 붙여 준 것 같았다.
다만 나는 그 뒤를 조금 다르게 걷는다. 그는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경계가 흐려지고 넓어져 끝내 나와 세계의 구별이 사라지는 데까지 간다고 말한다. 내가 본 것은 달랐다. 끝까지 가 본 사람에게 경계는 분명히 허물어진다. 그런데 허물어진 자리에 다음 경계가 다시 선다. 깨지고 넓어지고, 다시 깨지고 또 넓어진다. 몸이 그렇게 자라고 사람도 그렇게 자란다.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시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경계가 없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경계가 살아 있는 자리를 향해 간다.
이 책은 건강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나는 건강을 몸 안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오랫동안 병상 옆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건강은 안에 있지도, 밖에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안과 밖이 만나는 자리에서,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우리 몸의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는 막이라는 경계로 살아가고,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경계에서 뛰며, 숨은 들이쉼과 내쉼의 경계에서 생명을 잇는다. 건강이란 가만히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경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한 문장으로 모인다. 건강은 경계에서, 리듬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삶을 너무 빨리 채점한다. 성과가 있으면 성공, 없으면 실패. 통과하면 잘 산 해, 떨어지면 잘못 산 해. 여러분은 지난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편리한 이분법이지만, 삶을 너무 좁게 줄인다. 나는 우리 삶이 네 개의 자리를 천천히 지난다고 생각한다. 생존, 성공, 성장, 그리고 성숙. 생존은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건너는 일이고, 성공은 사회 속에 내 자리를 만드는 일이며, 성장은 안에서 자라나 내 경계를 넓히는 일이다. 그리고 성숙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아는 일이다. 이것은 위로 오르는 사다리가 아니다. 무게중심이 바깥에서 안으로, 속도에서 리듬으로 천천히 옮겨 가는 이동에 가깝다. 그리고 성숙에는 자리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내가 얻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다. 이 책은 결국 거기까지 간다.
그런데 이 이동에는 그림자가 하나 따라붙는다. 성장인 척하지만 성장이 아닌 것, 곧 팽창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시대는 이 그림자를 성장이라 부르며 떠받든다.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성과사회라 불렀다. 예전에는 누군가 밖에서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를 눌렀다면, 이제는 아무도 우리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명령처럼 되뇌며, 자유롭다고 믿는 채로 자기 자신을 태운다. 번아웃이 가장 성실한 사람의 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까지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텅 비어 주저앉는다.
평생 운동과 건강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병이 가장 깊이 파고든 자리로 건강을 들고 싶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지고 싶어 한다. 측정하고 기록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몸을 좇는다. 그런데 "왜 건강해지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의외로 대답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건강이 또 하나의 성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충분함이 없으니 멈출 수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건강에 가장 집착하는 사람이 정작 건강에서 가장 멀리 있곤 한다. 정말 건강한 사람은 자기 몸을 잊고 산다. 우리가 몸을 또렷이 의식하는 건 대개 어딘가 아플 때가 아니던가.
팽창과 성장은 겉으로 참 닮았다. 둘 다 커지니까. 그러나 나무가 자랄 때 안쪽에 나이테를 하나 더 새기는 것과, 풍선이 커지며 고무막이 얇아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풍선은 가장 커진 순간에 가장 약하다. 팽창의 가장 깊은 병은 회복을 죄악처럼 여기는 데 있다. 근육이 운동으로 찢기고 쉼으로 자라듯, 자라는 것은 애쓰는 동안이 아니라 쉬는 동안인데도 말이다. 들이쉬기만 하고 내쉴 줄 모르는 숨은,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터진다.
이 네 자리는 한 번 지나면 끝나는 계단이 아니다. 경계는 한 번 넘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달라진 나로 같은 경계를 다시 만나게 한다. 나선형이다. 중학교 시절 열등생으로 분류되어 느꼈던 그 열등감과, 오늘 연구비 심사에서 떨어지며 느끼는 감정은 놀랍게도 똑같다. "나는 이쪽인가, 저쪽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 물음 자체가 경계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것 없다. 아직 그 물음 앞에 서 있다는 건, 아직 우리가 길 위에 있다는 뜻이니까.
이 책은 그 경계를 따라가는 여정이고, 다섯 번의 걸음으로 되어 있다. 먼저 부풀기만 하는 이 시대를 진단하고(1부), 경계란 대체 무엇인지 읽는 눈을 얻는다(2부). 그다음 그 경계가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리듬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3부), 그 리듬 위에서 새것이 태어나는 자리를 본다(4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얻은 경계를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건네는지를 묻는다(5부). 진단에서 원리로, 원리에서 리듬으로, 리듬에서 생성으로, 생성에서 계승으로. 부풀지 말고 자라기를, 홀로 타 버리지 말고 관계 안에서 쉬기를, 그리고 다 자란 뒤에는 물려주기를 바라면서.
한 철학자가 이 시대의 병을 정확히 이름 지었다면, 나는 그 곁에서 몸의 언어로 답해 보고 싶다. 병상 옆에서, 건강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건강은 경계에서, 리듬으로 태어난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이 문장을 풀어낸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경계를 넓히고 싶다. 다만 이제는 속도보다 정렬을, 성과보다 지속을, 증명보다 의미를 더 자주 묻는다. 그래서 오늘은 잠시 멈춘다. 인디언들이 그랬다던가,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니 잠시 멈춰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자, 이제 경계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이 장의 참고
함민복, 「꽃」(『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한병철, 『피로사회』 · 김주환의 경계 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