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Salutogenesis — 건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다

도입: 환자들이 던지는 질문

나는 운동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 암 환자들의 재활과 회복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 연세대에서, 그리고 여러 차례의 해외 연구학기에서,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 연구의 일부였다. 특히 한 번의 연구학기를 하버드 의대 계열의 다나파버 암센터(Dana-Farber Cancer Institute) 에서 보냈다. 운동이 암 환자의 치료 결과와 삶의 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면서.

그 과정에서 — 그리고 한국에서의 여러 만남 속에서 — 반복적으로 만나는 질문이 있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가족들이, 때로는 의사 본인도 — 던지는 질문.

"왜 이 병이 생겼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의학적 답은 존재한다. 유전적 요인, 호르몬 요인, 환경 요인, 생활 방식. 구체적 위험 인자들을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 이 나열은 보통 질문한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묻는 것은 — 그런 기계적 인과관계의 목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묻는 것은 — 자신의 삶 전체의 맥락 안에서 이 병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지난 10년의 스트레스. 관계의 상처. 가족의 죽음. 직장에서의 번아웃. 수년간 억눌러온 슬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쌓였는지. 자신의 삶과 자신의 병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현대 의학은 이 질문에 답할 언어를 잘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를 처방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 전체의 맥락 안에서 질병을 이해하는 것은 — 의학 교육에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심리사회적 요인" 이라는 주변적 범주로 밀려난다. 본론이 아니라 각주. 객관적 의학의 주변부.

그러나 — 환자들이 그 각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본질은 각주에 있다. 한 사람의 삶의 맥락이 — 그의 병의 맥락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 우리는 어떤 치료를 해도 부족한 것을 남긴다.

이 장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이 병이 생겼는가?" 뒤집어 물으면 — "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가?" 이 질문이 — 20세기 후반 한 의료사회학자가 열었다. 살루토제네시스(Salutogenesis).

그리고 이 질문이 — 지난 3부에서 진단한 Wetiko의 의학적 대안을 여는 문이다. 그리고 — 4부에서 탐구한 페리코레시스가 몸과 건강의 영역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보여주는 렌즈다.

두 의학의 분기점 — 파스퇴르와 베샹

19세기의 결정적 논쟁

이 장의 뿌리는 19세기 프랑스의 한 논쟁에 있다. 의학사에서 거의 잊혀졌지만 — 아마도 잘못 잊혀진 논쟁.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앙투안 베샹(Antoine Béchamp, 1816~1908) 의 대립.¹

이 두 인물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파스퇴르는 영웅이다. 세균론의 창시자. 백신의 아버지. 광견병, 탄저병, 콜레라 연구의 선구자. 그의 이름이 파스퇴르 연구소로, 파스퇴라이제이션(저온살균법) 이라는 단어로 남아 있다. 프랑스 국민 영웅. 의학사의 기둥.

베샹은 거의 잊혀졌다. 그의 이름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의학사 교과서에서도 짧게만 언급된다. 파스퇴르와의 우선순위 논쟁에서 — 역사적으로 진 사람. 그러나 — 실제로 진 것인가. 이 질문이 최근 다시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 둘 다 19세기 프랑스 과학자. 둘 다 미생물의 존재와 역할을 연구했다. 그러나 — 그들이 도달한 결론이 매우 달랐다.

파스퇴르의 세균론

파스퇴르의 핵심 주장: 질병은 외부에서 침입한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 세균, 바이러스 같은 특정 병원체가 몸 안에 들어와 병을 일으킨다. 이것이 "세균론(germ theory of disease)" 이다.²

이 주장의 함의는 컸다. 만약 질병이 특정 병원체에 의한 것이라면 — 치료법은 명확해진다. 그 병원체를 죽이면 된다. 항생제가 이 논리에서 나왔다. 소독이 이 논리에서 나왔다. 백신도 이 논리의 연장이다.

20세기 의학의 대부분이 이 기반 위에 세워졌다. 결핵, 페스트, 콜레라, 말라리아 — 이들이 모두 세균론적 접근으로 극복되었다. 평균 수명이 두 배가 되었다. 영유아 사망률이 급락했다. 이 성취는 부인할 수 없다.

파스퇴르 자신은 — 말년에 이 모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가 임종을 앞두고 한 말로 전해지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세균은 아무것도 아니다. 토양이 전부다(Le microbe n'est rien, le terrain est tout)."**³ 이 인용의 정확성은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그러나 — 맥락상 있을 법한 발언이다. 파스퇴르는 말년에 — 세균이 침입하는 것 자체보다 몸의 상태(토양) 가 결정적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 파스퇴르가 이 통찰을 가졌어도, 의학의 주류는 단순화된 세균론을 채택했다. 이유가 있었다. 단순 모델이 작동하기 쉬웠다. 제약 산업이 그것을 채택하기 쉬웠다. 병원 조직이 그것을 운영하기 쉬웠다. 복잡성은 — 제도화에 방해였다.

베샹의 토양론

베샹의 주장은 — 파스퇴르의 반대에 가까웠다. 정확히 말하면, 상호 보완적이지만 강조점이 달랐다.

베샹의 핵심 통찰: 미생물은 고정된 종이 아니다. 몸의 내부 환경(토양)에 따라 변한다.⁴

그는 마이크로자이마(microzymas)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몸의 모든 세포와 조직에 존재하는 기본 생명 단위. 이것들이 — 몸의 환경이 건강할 때는 — 몸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몸의 환경이 나빠지면 — 병원성 미생물로 "변한다". 외부 침입이 아니라 — 내부의 변이. 이것이 베샹의 주장.

이 이론은 — 당대 기술로는 증명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파스퇴르의 단순 모델이 — 보다 직관적이고 작동 가능했다. 그래서 베샹이 잊혀졌다.

그러나 — 베샹의 통찰의 핵심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중요한 것을 강조했다. "토양이 중요하다". 즉 몸의 상태, 몸의 내부 환경, 사람의 전체적 조건이 — 질병의 발생과 진행에 결정적이라는 것. 이 통찰이 —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 다양한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놀랍도록.

두 모델의 편향과 보완

두 모델의 차이를 명확히 하자.

파스퇴르 모델 (세균론):

베샹 모델 (토양론):

어느 쪽이 맞는가. 둘 다 맞다. 부분적으로. 특정 감염병 — 결핵, 말라리아, HIV 같은 것 — 에서는 파스퇴르 모델이 결정적이다. 특정 병원체를 타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적 건강 문제 — 만성 질환, 자가면역, 대사 질환, 암, 우울증, 치매 — 에서는 베샹 모델이 더 유효하다. 이 질병들은 특정 외부 침입자가 없다. 몸 전체의 상태가 — 서서히 — 병적으로 변한다. 파스퇴르 모델의 "무엇을 죽이는가" 논리로는 — 충분히 이해되지도 충분히 치료되지도 않는다.

안토노브스키와 살루토제네시스의 탄생

홀로코스트 생존자 연구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아론 안토노브스키(Aaron Antonovsky, 1923~1994) 다. 미국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의료사회학자. 그가 살루토제네시스 개념을 만들었다.⁵

안토노브스키의 결정적 연구는 — 1970년대 초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건강을 조사했다. 이 집단은 — 인류사에서 가장 극한의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이다.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많은 연구자들의 예상대로 — 생존자들의 상당수가 만성적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PTSD, 우울증, 심혈관 질환, 조기 노화. 이것은 놀랍지 않았다. 극한 스트레스의 당연한 결과.

그런데 — 안토노브스키가 주목한 것은 다른 지점이었다. 생존자 집단의 상당한 비율이 — 놀랍도록 건강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기대보다 훨씬.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기존 의학 틀에서 이 질문은 — 거의 불가능했다. 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묻는 학문이었다. "왜 아픈가?" 안토노브스키는 반대 질문을 던졌다. "왜 건강한가?" "같은 조건을 겪은 사람들 중에서 — 왜 어떤 이들은 병에 걸리고, 어떤 이들은 건강한가?"

이 질문의 전환이 — 의학사의 작은 혁명이었다.

병인학에서 건강생성학으로

기존 의학의 접근은 병인학(pathogenesis). 그리스어 "pathos"(고통) + "genesis"(생성). "고통이 어떻게 생성되는가". 이것이 현대 의학의 거의 전부다. 병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행하는지 연구한다.

안토노브스키는 새 용어를 만들었다. 살루토제네시스(salutogenesis). 라틴어 "salus"(건강, 안녕) + 그리스어 "genesis"(생성). "건강이 어떻게 생성되는가".⁶

이 두 접근의 차이는 근본적이다.

병인학: 건강-질병을 이분법으로 본다. 건강한 상태가 기본이고, 병이 외부에서 온다. 의학의 역할은 — 병을 제거하고 "건강" 상태로 되돌리는 것. 건강 = 병의 부재.

살루토제네시스: 건강-질병을 연속체로 본다. 완전한 건강도, 완전한 질병도 없다. 모든 사람이 이 연속체 위의 어딘가에 있다. 의학의 역할은 — 건강 쪽으로 움직이도록 돕는 것. 건강 = 적극적 생성의 결과.

이 관점의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학의 질문이 바뀐다. "왜 이 사람이 아픈가" 에서 — "이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건강을 생성하는가" 로. 개입의 성격도 바뀐다. 약 처방, 수술에서 — 생활 전체의 맥락 재조정으로. 그리고 — 환자의 위치도 바뀐다. 수동적 치료 수혜자에서 — 자기 건강의 적극적 저자로.

SOC — 일관성의 감각

안토노브스키는 건강한 생존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 그가 발견한 것이 "일관성의 감각(Sense of Coherence, SOC)" 이다.⁷

SOC는 세 가지 하위 요소로 구성된다.

1. 이해가능성(Comprehensibility).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 이해 가능하다는 느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맥락 안에서 위치를 잡을 수 있다는 감각. 무작위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 어떤 패턴이 있다는 느낌.

2. 관리가능성(Manageability). 자기가 직면한 도전이 — 다룰 수 있는 것이라는 느낌. 혼자서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든,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감각. 완전한 통제가 아니다 — 다만 자원이 있다는 믿음.

3. 의미(Meaningfulness). 자기 삶이 — 의미가 있다는 느낌. 고통조차 — 어떤 의미의 맥락 안에 있다는 감각. 이것이 아마도 세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이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경험에서 도달한 통찰과 유사하다. 의미가 있으면 — 거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⁸

안토노브스키의 연구가 보여준 것: SOC가 높은 사람은 — 같은 조건에서도 더 건강하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 효과는 통계적으로 강력했다. 그리고 — 이후 여러 국가의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반복 확인되었다.⁹

살루토제네시스의 확장

안토노브스키 이후 살루토제네시스 개념은 —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학교 건강. 학생들의 SOC를 높이는 교육 환경.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 의미 있는 배움, 도전 가능한 과제, 이해 가능한 평가 체계. 이런 요소들이 학생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직장 건강. 노동자의 SOC에 기여하는 직장 문화. 무의미한 반복 노동, 통제 불가능한 요구, 이해 불가능한 조직 — 이들이 번아웃과 신체 질환을 만든다. 반대로 의미 있는 일, 자율성, 투명한 구조가 — 건강을 생성한다.

사회 정책.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의료 서비스 제공이 아니다. 시민들의 SOC를 높이는 사회 조건을 만드는 것이 — 공공 보건의 핵심. 이것이 소위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논의로 발전했다.¹⁰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 — 학문적 작업의 한 갈래

나는 운동의학자로서 오랫동안 한 개념을 정립해 왔다.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Perichoretic Salutogenesis). 안토노브스키의 살루토제네시스를 뼈대로 하되, 8세기 비잔틴 신학의 페리코레시스(서로 안에 거함) 를 존재론적 틀로 접붙인 개념이다. 한국어로는 여러 번역이 가능하다 — "서로 안에 거하는 건강생성", "상호 내주적 살루토제네시스", "관계적 건강생성". 이 책에서는 맥락에 따라 바꿔 쓰되, 원어는 Perichoretic Salutogenesis 로 통일한다.

내가 이 두 개념을 결합하게 된 이유는 임상에서 비롯되었다. 환자의 몸을 여러 시스템이 서로 안에서 작동하는 장(場) 으로 볼 때, 살루토제네시스의 "건강 생성" 이 훨씬 풍부한 설명력을 얻는다.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환경, 생리와 의미 — 이 차원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안에 거한다는 존재론이 전제되어야, 한 차원의 개입이 다른 차원을 회복시키는 임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구조를 나란히 놓으면:

페리코레시스: 여러 존재가 서로 안에 거하면서도 자기로 남는다. 분리도 융합도 아닌 관계의 춤.

살루토제네시스: 건강은 생성되는 것. 상태가 아니라 과정. 사회적·심리적·생리적 자원들이 모여 SOC(이해가능성·관리가능성·의미) 를 만들 때 건강이 생성된다.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 이 둘을 결합하면, 건강은 여러 시스템이 서로 안에서 거하면서 함께 생성하는 것이 된다. 한 차원의 변화가 다른 차원으로 스며든다. 운동이 미토콘드리아 생합성을 촉진할 때 그것이 뇌의 BDNF 농도를 바꾸고 그것이 기분을 바꾸고 그것이 사회적 관계 능력을 바꾸고 그것이 다시 운동 지속 가능성을 바꾼다. 이 순환이 페리코레시스적이다. 그리고 그 순환 자체가 건강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살루토제네시스적이다.

반대 방향은 분리다. 몸을 환경에서 분리, 생리를 마음에서 분리, 개인을 공동체에서 분리, 증상을 삶의 의미에서 분리. 분리가 많아질수록 병이 늘어난다. 실제로.

외로움이 면역력을 낮춘다. 무의미감이 우울을 부른다. 환경과의 단절이 대사를 망가뜨린다. 공동체의 붕괴가 자살률을 높인다.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가 말하는 것은 — 관계의 회복이 건강의 회복과 동일하다는 것. 이것은 은유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생물학적 효과다.

마이크로바이옴 혁명 —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몸 안의 다른 생명

살루토제네시스의 통찰을 가장 극적으로 확인한 현대 과학의 분야가 — 미생물총(microbiome) 연구다.

20세기 후반까지 — 의학은 몸의 미생물을 주로 으로 봤다. 파스퇴르 모델의 연장. 세균은 병을 일으킨다. 죽여야 한다. 항생제가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 21세기 초부터 연구가 급격히 달라졌다. DNA 시퀀싱 기술의 발전으로 — 과학자들이 몸 안의 모든 미생물을 체계적으로 목록화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몸 안에는 인간 세포 수만큼 많은 미생물 세포가 있다. 약 39조 개의 미생물 세포 대 30조 개의 인간 세포.¹¹ 종 수로는 — 수천 종의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고세균이 우리 몸에 산다. 장에, 피부에, 입에, 폐에, 생식기에.

이 모든 존재들이 — 우리의 건강에 깊이 관여한다.

장내 미생물은 — 소화뿐 아니라 면역, 신경전달, 호르몬 조절에 관여한다.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우울증과 장 건강의 연결이 이것이다.¹²

피부 미생물은 — 피부 장벽을 유지하고, 병원성 침입을 막고,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 현대의 과도한 위생이 피부 미생물총을 교란해 — 아토피, 건선, 여드름을 늘린다는 연구가 있다.

구강 미생물은 — 심혈관 건강에 깊이 관련된다. 구강 위생이 나쁘면 심혈관 질환 위험이 증가한다.

항생제의 그림자

이 발견들이 — 20세기 의학의 주력 무기였던 항생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수많은 생명이 항생제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 항생제는 표적이 없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 병원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유익균까지 죽는다. 항생제 한 번의 복용이 장내 미생물총을 수개월 동안 교란시킨다. 반복적 복용이 — 장기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최근 연구의 주제다.

아이들에게 항생제를 많이 사용한 세대가 — 성인이 되어 비만, 당뇨,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의 비율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¹³ 인과관계가 완전히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20세기 의학의 승리가 — 21세기의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었을 가능성.

이것이 — 파스퇴르 모델의 무비판적 적용의 한계다. "병원균을 죽이면 해결된다" 는 논리가 — 너무 단순했다. 몸은 복잡한 생태계다. 그 생태계를 교란하면 —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긴다.

베샹의 귀환

이 모든 발견이 — 19세기 베샹의 "토양론" 을 — 새로운 방식으로 확인한다. 베샹이 말한 "마이크로자이마" 는 현대 미생물학의 개념과 정확히 같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핵심 통찰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몸은 고정된 경계를 가진 주체가 아니다. 몸은 수조 마리의 다른 존재들과의 공동체다. 건강은 이 공동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침입자를 죽이는 것" 이 아니라 — 관계를 돌보는 것.

이것이 — 21세기 의학의 조용한 혁명이다. 주류 의학에서도 이제 "holobiont" 라는 개념이 쓰인다. 한 개체가 —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 — 여러 종이 공생하는 복합체라는 의미.¹⁴ 인간은 걸어 다니는 생태계다.

이 관점이 — 페리코레시스와 직접적으로 공명한다. 우리 자신이 이미 — 여러 존재가 서로 안에 거하는 공동체다. 미생물과 인간 세포가 —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서로 안에 있다. 그러나 — 각자로 남는다. 이것이 건강한 상태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지배하면 — 병이다. 균형의 춤.

생활양식 의학 — 일상의 페리코레시스

만성 질환의 역학

21세기 초, 세계 보건의 가장 큰 도전은 — 만성 질환이다. 심혈관 질환, 당뇨, 암, 치매, 우울증. 이들이 — 전 세계 사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¹⁵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 단일 원인이 없다는 것. 유전, 환경, 생활 방식, 사회적 조건 —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 이 요인들이 장기간 축적되어 병으로 나타난다.

이런 병에 대한 파스퇴르 모델의 접근은 — 제한적이다. 병원균을 죽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전자 편집도 대부분의 경우 실용적이지 않다. 개별 장기 이식은 — 말기 단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 다른 접근이 등장했다. 생활양식 의학(Lifestyle Medicine). 이것은 단순히 "운동과 식이요법이 중요하다" 는 수준의 조언이 아니다. 체계적 의학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¹⁶

생활양식 의학의 6대 축:

  1. 영양 — 식물성 중심, 가공 식품 최소화, 장내 미생물 건강.
  2. 신체 활동 — 규칙적 운동, 움직이는 일상.
  3. 수면 — 충분한 질 좋은 수면.
  4. 스트레스 관리 — 명상, 이완 기법, 삶의 맥락 조정.
  5. 사회적 연결 — 의미 있는 관계, 공동체 소속.
  6. 해로운 물질 회피 — 담배, 과도한 음주, 중독성 물질.

이 여섯 가지가 — 페리코레시스적 삶의 구체적 표현이다. 음식을 통해 다른 생명과 관계 맺는다(영양). 몸을 통해 자신과 관계 맺는다(신체 활동). 잠을 통해 자연의 리듬과 관계 맺는다(수면). 마음을 통해 자기 내면과 관계 맺는다(스트레스 관리). 사람을 통해 공동체와 관계 맺는다(사회적 연결). 그리고 자기 파괴적 습관을 멀리함으로써 자기와 관계 맺는다(해로운 물질 회피).

이 여섯 축에서 — 균형 잡힌 삶을 살면 — 많은 만성 질환이 예방되거나 개선된다. 이것이 현대 의학 연구의 강력한 합의다.

운동의학자의 증언

여기서 나는 개인적 경험을 덧붙여야 한다. 나는 30년 가까이 운동의학을 연구해왔다. 캐나다 알버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에서 박사후 연구를 하고, 한국 연세대에서 교수로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주로 — 암과 운동의 관계, 만성 질환과 신체 활동.

내가 이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것:

운동은 약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규칙적 운동이 — 많은 약보다 효과적이다. 우울증, 당뇨, 고혈압, 일부 암의 재발 방지 — 이 모든 분야에서 운동의 효과가 대규모 임상 연구로 입증되었다.¹⁷

그러나 — 운동은 왜 이렇게 효과적인가? 답이 흥미롭다. 운동이 한 가지 기전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은 수많은 시스템을 동시에 조절한다.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염증 지표, 장내 미생물, 유전자 발현,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 모든 차원에 — 운동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즉 운동은 페리코레시스적 개입이다. 한 지점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다. 몸 전체의 관계망을 건강한 방향으로 조정한다. 그래서 효과가 전방위적이다.

이것이 "운동이 왜 특효약인가" 의 진짜 답이다. 특정 질병을 직접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다. 몸을 건강한 페리코레시스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연구 현장에서의 교훈

암 환자 운동 중재 연구들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다. 화학요법 기간에 규칙적으로 운동한 환자들이 — 더 잘 치료에 반응한다. 더 적은 부작용을 경험한다. 재발률이 낮아진다. 생존 기간이 길어진다.¹⁸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 근육량 유지가 화학요법 독성을 완충한다. 운동이 항암 면역을 강화한다. 염증을 조절한다.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수면을 개선한다. 식욕과 소화를 돕는다. 사회적 연결(운동 그룹)이 심리적 지지를 제공한다. 이 모든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다.

즉 — 운동은 단순히 "추가 치료" 가 아니다. 운동은 환자의 전체 시스템을 건강 쪽으로 움직이는 개입이다. 살루토제네시스의 가장 구체적 형태.

그리고 — 이 장을 시작할 때 던진 질문 — "왜 이 병이 생겼는가" — 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 환자의 삶 전체가 병의 맥락이다. 스트레스, 관계 단절, 수면 부족, 앉아 있는 직장 생활, 외로움. 이 모든 것이 쌓여 — 몸을 건강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밀어 온다. 단일 "원인" 이 아니다. 관계망 전체의 편향.

그리고 — 치유의 길도 마찬가지다. 화학요법이 필요하다(파스퇴르 모델의 자리).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 전체가 — 건강을 생성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살루토제네시스 모델). 운동, 영양, 수면, 관계, 의미 — 이 모든 차원에서.

이 접근이 —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 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나파버도, 존스홉킨스도,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 모두 통합의학 센터를 운영한다. 20년 전에는 "주변적 대체의학" 으로 치부되었던 것이 — 이제 주류의 일부다.

이것이 조용한 혁명이다.

동양의학의 재평가

이 혁명의 한 부분이 — 동양의학의 재평가다.

침, 한약, 명상

1970년대까지 서양 주류 의학은 동양의학을 대체로 무시했다. "비과학적" 이라는 이유. 그러나 — 과학적 연구가 쌓이면서 — 일부 동양의학 기술의 효과가 체계적으로 입증되었다.

침(acupuncture). 수백 편의 임상 연구가 — 만성 통증, 편두통, 오심, 일부 알레르기 등에서 침의 효과를 확인했다. 정확한 기전은 여전히 연구 중이지만 — 효과는 부인할 수 없다.¹⁹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침을 의료 기기로 인정했고, 많은 의료보험이 침 치료를 보장한다.

한약(traditional herbal medicine). 여러 한약재가 — 현대 약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 — 중국 한약 청호에서 분리된 말라리아 치료제. 이 발견으로 2015년 투유유(屠呦呦) 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²⁰

명상(meditation). 수천 편의 연구가 — 명상이 스트레스, 우울, 불안, 심지어 면역 기능과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확인했다.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같은 프로그램이 주류 의료 시스템에 통합되었다.²¹

다른 세계관의 자원

이것들이 단순히 대체의학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더 깊은 수준에서 — 이것들은 서양 의학이 잃어버린 어떤 지혜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지혜는 — 페리코레시스적이고 살루토제네시스적이다.

침의 이론적 기반은 기(氣)의 흐름이다. 몸에 흐르는 에너지. 서양 해부학의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러나 — 침 치료의 효과는 실재한다. 정확히 기의 관점에서 설명되지 않더라도 — 몸의 네트워크 수준의 어떤 조절이 일어난다. 이것이 현대 신경생리학적 연구의 과제다.²²

한약의 효과는 — 단일 분자의 효과가 아니다. 한약재 한 가지에 수백 가지 화합물이 들어 있다. 여러 재료를 조합한 처방에는 더 많은 화합물이 있다. 이 복합물이 — 몸의 여러 시스템에 동시에 작용한다. "하나의 약 하나의 표적" 이라는 서양 제약의 논리와 정반대.

명상의 기전은 — 하나가 아니다. 자율신경계 조절.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뇌 구조 변화(신경 가소성). 면역 기능 조절. 유전자 발현 변화. 모두 동시에 일어난다.

즉 — 동양 의학의 여러 접근은 — 한 지점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조율하는 방식이다. 페리코레시스적 개입. 이것이 — 21세기 과학이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페리코레시스

그렇다면 — 두 의학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

한쪽만 맞다는 접근은 잘못이다. 둘 다 각자의 자리가 있다. 급성 심근경색에 침을 놓는 것은 어리석다(파스퇴르 모델이 명확히 더 유효). 만성 스트레스성 두통에 강한 진통제만 쓰는 것도 어리석다(살루토제네시스적 접근이 필요).

서로 안에 거하는 의학 체계가 이상적이다. 각자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보완한다. 이것이 통합의학의 비전이다. 그리고 이 비전 자체가 — 페리코레시스의 의학적 구현이다.

한국은 — 흥미롭게도 — 이 통합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한국에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공존한다. 국민 건강보험이 양쪽을 모두 포괄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상황이다. 이 공존의 경험이 — 세계 의학에 기여할 수 있다. 두 체계가 진정으로 페리코레시스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아직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 가능성은 열려 있다.

살루토제네시스의 사회적 함의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살루토제네시스의 가장 도전적 함의 중 하나는 — 건강이 주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세기의 주류 담론은 — 건강을 개인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자기 관리를 잘 하면 건강하다." "나쁜 습관이 병을 만든다." 이 관점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 절반만 맞다.

살루토제네시스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준 것: 사회 구조가 건강의 최대 결정 요인 중 하나라는 것. 사회적 불평등 이 건강 불평등을 직접 만든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평균 10~15년 짧게 산다. 저소득 지역 거주자가 고소득 지역 거주자보다 더 많은 만성 질환을 앓는다. 이 격차는 —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구조적 조건이 결정한다.²³

영국 의학자 마이클 마멋(Michael Marmot)화이트홀 연구(Whitehall Study) 가 고전적이다. 영국 공무원 집단을 수십 년간 추적한 연구. 결과: 직급이 낮을수록 건강 결과가 나쁘다. 흡연, 비만 같은 전통적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 이 격차는 남았다. 결정적 요인은 — 자기 일에 대한 통제감의미감. 즉 SOC의 핵심 요소들.²⁴

챈들러-라론드 연구 — 문화가 의학이다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의 사회적 함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연구가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Michael J. ChandlerChristopher E. Lalonde가 캐나다 원주민 청년 자살률을 수십 년간 추적한 연구다.²⁴ᵃ

그들이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캐나다 전체 원주민 청년 자살률은 비원주민 청년의 여러 배. 그러나 — 이 평균 수치 아래에는 극단적 편차가 숨어 있었다. 어떤 공동체는 자살이 거의 없었고, 어떤 공동체는 국가 평균의 수십에서 수백 배였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챈들러와 라론드는 문화적 연속성(cultural continuity) 이라는 여섯 가지 지표를 식별했다:

  1. 자치권(self-government) 확보
  2. 토지 주장(land claims) 의 법적 추진
  3. 교육 통제(education control) 공동체화
  4. 건강 서비스 통제(health services control) 공동체화
  5. 문화 시설(cultural facilities) 보유
  6. 여성의 지도적 참여 (전통적 성 평등 구조 복원)

결과는 명확했다. 이 여섯 요인을 네 개 이상 가진 공동체는 청년 자살률이 거의 0에 가까웠다. 하나도 없는 공동체는 국가 평균의 약 137배. 같은 나라, 같은 시대, 같은 언어권, 같은 "원주민" 범주 — 그러나 공동체가 자기 문화의 연속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137배의 생사 차이가 발생했다.

이 연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문화가 의학이다. 페리코레시스적 살루토제네시스의 관점에서 이 결과는 자연스럽다. 한 공동체가 자기 존재의 의미와 연속성을 잃으면 — SOC의 세 요소(이해가능성·관리가능성·의미) 가 동시에 붕괴된다. 반대로 공동체가 언어·의례·자치·토지·세대 간 연결을 유지하면 — 개별 청년의 몸은 그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남을 자원을 얻는다.

이 발견은 의학을 넘어선다. 이것은 정치 문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 개인에게 운동을 권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불평등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 공동체를 복원하고, 삶의 통제감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공공 보건의 진짜 영역이다.

신자유주의와 건강

이 관점에서 보면 — 신자유주의가 건강의 적이다. 신자유주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 모든 요인이 — 살루토제네시스의 조건을 파괴한다. SOC의 세 요소 — 이해가능성, 관리가능성, 의미 — 가 모두 약해진다. 결과: 만성 질환 증가, 정신 건강 악화, 자살률 상승.

이것이 — 신자유주의가 의학적 차원에서 어떻게 몸을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몸을 병들게 한다. 이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역학적 사실이다.

한국이 이 현상의 극한 사례다. 세계 최고 자살률. 세계 최저 출산율. OECD 최장 노동 시간. 청년 정신 건강 위기. 이 모든 것이 — 살루토제네시스의 조건이 사회적으로 파괴된 결과다.

치유의 정치성

따라서 — 진정한 의료 개혁은 정치 개혁과 분리되지 않는다. 의사 한 사람, 병원 하나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건강을 복원하려면 — 사회를 복원해야 한다.

이것이 — 의학의 정치적 차원이다. 오랫동안 의학은 이 차원에서 물러나 있었다. "정치는 우리 영역이 아니다" 라는 태도. 그러나 — 살루토제네시스의 관점에서는 — 의학이 정치에서 물러날 수 없다.

이것이 —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 —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의학자이자 정치가 — 가 말한 것이다. "의학은 사회 과학이고, 정치는 큰 규모의 의학이다."²⁵ 150년이 지난 지금도 — 이 통찰은 유효하다.

결론: 건강이란 무엇인가

이 장을 시작할 때 — 환자들이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을 이야기했다. "왜 이 병이 생겼는가?"

이 장을 마치며 — 이 질문에 대한 의학자로서의 답을 정리한다.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 지금 줄 수 있는 답.

병에 걸리는 것은 — 하나의 원인 때문이 아니다. 유전도, 호르몬도, 환경도, 생활 습관도, 스트레스도 — 각각이 부분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그 병의 맥락이다. 관계들, 일, 상처, 꿈 — 이 모든 것이 몸에 쌓여 있다.

그리고 — 치유도 마찬가지다. 화학요법이 도움이 된다.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 전체를 — 건강을 생성하는 방향으로 — 조금씩 조정해야 한다. 움직이고, 잘 먹고, 자고, 관계를 돌보고, 의미를 찾고. 그리고 — 이것은 한 사람 혼자의 일이 아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공동체가, 사회가 —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살루토제네시스의 답이다.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 병인학의 답보다는 진실에 가깝다고 나는 믿는다.

잉카의 치유 전통과의 공명

마지막으로 — 이 장이 이 책 전체의 맥락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짚어둔다.

1부에서 나는 잉카 문명의 관계적 존재론을 보았다. 티폰의 물. 야쿠. 아이니. 우주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감각.

지금 — 이 장에서 본 살루토제네시스가 — 의학의 언어로 그 존재론을 되찾는 과정이다. 몸을 분리된 기계로 보는 대신 — 관계의 네트워크로 본다. 질병을 외부 침입으로 보는 대신 — 관계의 교란으로 본다. 치유를 침입자 제거로 보는 대신 — 관계의 회복으로 본다.

우리는 — 잉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 다른 언어로. 다른 맥락에서.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리고 — 이 재발견이 희망의 근거다. 서양 의학이 지금 새로 발견하는 것들은 — 인류가 이미 알고 있었던 지혜의 복원이다. 우리가 잃은 것을 —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돌아갈 수 있다. 다른 경로로. 더 풍부하게.

다음 장 — AI 시대의 페리코레시스

이 장에서 우리는 — 의학과 건강에서 페리코레시스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보았다. 그러나 — 21세기의 가장 긴급한 도전이 남아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 인간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 500년째 흐르고 있는 티폰의 물소리와 함께 듣는다. AI가 우리의 삶, 일, 관계,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이 시대에 — Wetiko는 어떤 새로운 형태를 취하는가. 그리고 — 페리코레시스의 가능성은 어떻게 열리는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열어둘 것이다. 그러나 — 이 책의 결론에 이르기 전에 —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물음이다.


각주

¹ 파스퇴르와 베샹의 논쟁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Gerald L. Geison, The Private Science of Louis Pasteur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Ethel Douglas Hume, Béchamp or Pasteur? A Lost Chapter in the History of Biology (London: The C.W. Daniel Company, 1923).

² 세균론의 역사에 관하여는 Nancy Tomes, The Gospel of Germs: Men, Women, and the Microbe in American Lif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³ 파스퇴르의 임종 발언으로 전해지는 "le microbe n'est rien, le terrain est tout" 은 역사적 출처가 불분명하다. 여러 자료에서 인용되지만 직접적 문서 증거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의 후기 사유와 일관된다는 평가가 많다.

⁴ 베샹의 이론에 관하여는 Hume (1923), 앞의 책. 보다 학술적 재평가는 Kendall Pearson, Pasteur: Plagiarist, Imposter (Pomeroy, WA: Health Research, 1942, 재판).

⁵ 아론 안토노브스키의 생애와 업적에 관하여는 Aaron Antonovsky, Health, Stress, and Coping (San Francisco: Jossey-Bass, 1979); Aaron Antonovsky, Unraveling the Mystery of Health: How People Manage Stress and Stay Well (San Francisco: Jossey-Bass, 1987).

⁶ "Salutogenesis" 용어의 원저는 Antonovsky (1979), 앞의 책, 특히 서장.

⁷ Sense of Coherence의 개념과 측정에 관하여는 Antonovsky (1987), 앞의 책.

⁸ 의미의 건강 효과에 관한 고전적 저작은 Viktor E. Frankl, Man's Search for Meaning (Boston: Beacon Press, 1959/1992). 한국어 번역본: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2005.

⁹ SOC 척도의 교차문화적 타당성에 관하여는 B. Lindström and M. Eriksson, "Salutogenesis," 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 59 (2005): 440-442.

¹⁰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 관하여는 Michael Marmot,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New York: Bloomsbury, 2015).

¹¹ 인체 세포 수와 미생물 세포 수의 비교에 관하여는 Ron Sender, Shai Fuchs, and Ron Milo, "Revised Estimates for the Number of Human and Bacteria Cells in the Body," PLoS Biology 14, no. 8 (2016): e1002533.

¹² 장내 미생물과 신경전달물질의 관계에 관하여는 Emeran Mayer, The Mind-Gut Connection (New York: Harper Wave, 2016).

¹³ 항생제 조기 노출과 만성 질환의 상관관계에 관하여는 Martin J. Blaser, Missing Microbes: How the Overuse of Antibiotics Is Fueling Our Modern Plagues (New York: Henry Holt, 2014).

¹⁴ Holobiont 개념에 관하여는 Scott F. Gilbert, Jan Sapp, and Alfred I. Tauber, "A Symbiotic View of Life: We Have Never Been Individuals,"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87, no. 4 (2012): 325-341.

¹⁵ 만성 질환의 세계 역학에 관하여는 World Health Organization, Noncommunicable Diseases Country Profiles 2018 (Geneva: WHO, 2018).

¹⁶ 생활양식 의학의 체계화에 관하여는 James M. Rippe, ed., Lifestyle Medicine, 3rd ed. (Boca Raton: CRC Press, 2019).

¹⁷ 운동이 만성 질환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대규모 연구 종합: Darren E.R. Warburton, Crystal Whitney Nicol, and Shannon S.D. Bredin, "Health Benefits of Physical Activity: The Evidence,"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174 (2006): 801-809.

¹⁸ 암 환자의 운동에 관한 근거 종합: Kathryn H. Schmitz et al., "Exercise is Medicine in Oncology: Engaging Clinicians to Help Patients Move Through Cancer," CA: A Cancer Journal for Clinicians 69 (2019): 468-484.

¹⁹ 침의 과학적 근거에 관한 체계적 리뷰는 Andrew J. Vickers et al., "Acupuncture for Chronic Pain: Individual Patient Data Meta-analysis,"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 172 (2012): 1444-1453.

²⁰ 아르테미시닌의 발견에 관하여는 Tu Youyou, "Artemisinin—A Gift fro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o the World" (Nobel Lecture, 2015).

²¹ 명상의 건강 효과에 관한 종합: Madhav Goyal et al., "Meditation Programs for Psychological Stress and Well-being," JAMA Internal Medicine 174 (2014): 357-368.

²² 침의 신경생리학적 기전 연구에 관하여는 Maiken Nedergaard 등의 최근 연구들. 예: Longhui Chen et al., "A vagal-brainstem-insular cortex pathway mediates the development of visceral hypersensitivity induced by colonic inflammation in mice," Gut (2023).

²³ 건강 불평등의 역학에 관하여는 Richard Wilkinson and Kate Pickett,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Always Do Better (London: Allen Lane, 2009).

²⁴ 화이트홀 연구에 관하여는 Michael Marmot, The Status Syndrome: How Social Standing Affects Our Health and Longevity (New York: Henry Holt, 2004).

²⁴ᵃ Michael J. Chandler and Christopher E. Lalonde, "Cultural Continuity as a Hedge against Suicide in Canada's First Nations," Transcultural Psychiatry 35, no. 2 (1998): 191-219; Michael J. Chandler and Christopher E. Lalonde, "Cultural Continuity as a Protective Factor against Suicide in First Nations Youth," Horizons 10, no. 1 (2008): 68-72. "137배" 수치는 1998년 논문의 원 데이터에서 문화적 연속성 지표 0개 공동체와 국가 평균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며, 이후 추가 연구에서 패턴이 재확인되었다.

²⁵ 루돌프 피르호의 이 발언은 그의 1848년 논문 "Die Medicinische Reform" 등에서의 주장에 기반한다.

『페루-쿠스코-마추피추 여행기』 집필 중 · 생성: 2026. 4. 20. PM 8:2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