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에서 이 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피해온 질문과 다시 마주친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 번역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정(情)". "우리". "한(恨)". "눈치". "체면". "흥". 이 단어들을 영어로 옮기려 할 때마다 —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영어의 번역어들이 대부분 부분적이다. "정" 을 "affection" 이라 번역하면 절반이 사라진다. "우리" 를 "we" 라 번역하면 구조가 사라진다. "한" 을 "resentment" 라 번역하면 —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이 번역 불가능성이 단순한 언어의 문제인가. 아니면 — 다른 세계관의 흔적인가.
이 질문이 이 장의 출발점이다.
15장에서 나는 페리코레시스라는 비잔틴 신학 개념을 펼쳤다. 8세기 다메섹의 요한이 정립한, 서로 안에 거하면서도 자기로 남는 관계의 구조. 그 개념이 20세기 물리학(봄), 심리학(아들러), 정치 신학(몰트만, 볼프)에서 재발견되고 있다는 이야기. 이것이 Wetiko의 대척점이라는 주장.
그런데 — 페리코레시스는 서양의 개념이다. 기독교 신학의 산물. 그리고 그 신학 자체가 로마 제국의 문화적 유산 위에 서 있다. 이 개념이 전 세계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 다른 문명의 지혜 전통과 대화해야 한다. 각 문명이 자기 언어로 이 동일한 진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들어봐야 한다.
이 장은 동양의 응답이다. 특히 한국 전통. 원효의 화쟁(和諍), 퇴계의 경(敬),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한의학의 음양 교합. 그리고 일상 한국어의 — 번역되지 않는 — 정과 우리.
이 전통들이 페리코레시스와 공명한다. 그러나 단순히 같지는 않다. 다른 길로 비슷한 지점에 도달했고, 그 과정에서 서양 전통이 놓친 것을 보존하고 있다. 동시에 — 서양 전통에 없는 그림자도 있다. 특히 위계적 유교 전통이 "관계성" 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역사. 이 그림자까지 포함해서 정직하게 본다.
그리고 — 한국인으로 태어나 북미 원주민 공동체와 17년 가까이 동행한 나의 자리에서 볼 때 — 동양의 지혜 전통과 북미 원주민의 지혜 전통이 서로 낯설지 않다. 두 전통이 서로 다른 방언으로 비슷한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장은 그 공명을 추적하는 시도다.
원효(元曉, 617~686). 신라 승려. 한국 불교 사상의 정점 중 하나. 그의 생애는 — 독특하다. 엘리트 승려였다가 파계한 승려. 왕실 공주와 결혼한 스님(그래서 설총의 아버지가 됨). 거리를 돌아다니며 춤추며 불법을 전한 파격적 인물. 그리고 — 한반도 사상사의 가장 심오한 저술가 중 하나.¹
원효가 제시한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화쟁(和諍). "화해의 논쟁" 또는 "조화를 이루는 논쟁" 이라는 뜻.
이 개념의 맥락을 보자. 7세기 한국 불교는 여러 학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다양한 경전들이 —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정토종 등등. 각 학파가 자기가 옳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치열했다.
이런 상황에서 — 일반적 반응은 두 가지다. 자기 학파를 선택하고 다른 학파를 비판하거나. 아예 종교적 상대주의에 빠지거나 ("모두 나름대로 맞다"). 원효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
화쟁의 핵심: 여러 학파의 서로 다른 주장들이 — 각각 진실의 한 측면이다. 그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 각자 다른 측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진실을 보려면 — 대립하는 주장들을 모두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녹여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각각을 자기로 남게 하면서, 서로를 비추는 관계에 놓아야 한다.²
원효의 화쟁은 세 가지 수준에서 작동한다.
수준 1 — 논리적 화쟁. 서로 대립하는 명제들이 — 같은 실재의 다른 측면을 기술하고 있을 때, 표면적 대립이 해소된다. 예를 들어 "자아는 존재한다" 와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 각각이 다른 관점에서의 자아(경험적 자아 vs. 궁극적 자아)를 가리킨다면, 둘 다 맞을 수 있다.
수준 2 — 해석학적 화쟁. 경전의 여러 구절이 모순되게 보이면, 각 구절이 어떤 청중과 어떤 상황을 전제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부처가 어떤 제자에게는 "자아를 버리라" 고 했고, 다른 제자에게는 "자아를 깨우라" 고 했다. 두 가르침이 모순이 아니다. 각 제자의 상황에 맞춘 것이다.
수준 3 — 존재론적 화쟁. 이것이 가장 깊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분리된 개체는 환상이다. 한 존재의 변화가 다른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의 한 표현이다. 원효는 이것을 체계적으로 펼쳤다.
원효의 대표작 중 하나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인도 논서 『대승기신론』에 대한 주석.³
이 저작에서 원효는 일심(一心), 즉 한 마음의 개념을 정립한다. 모든 존재가 한 마음의 두 측면 — 진여(眞如, 깨달음의 측면) 와 생멸(生滅, 일상의 측면) — 으로 나타난다는 것. 이 두 측면이 대립하면서도 하나다.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서로 안에 있다.
이 구조를 보면 — 페리코레시스와 놀랍게 닮아 있다. 페리코레시스에서 세 위격이 서로 안에 거하면서도 각자로 남듯이 — 일심에서 진여와 생멸이 서로 안에 거하면서도 각자로 남는다. 분리도 융합도 아닌 제3의 관계. 이것이 원효가 7세기 한반도에서 도달한 통찰이다. 다메섹의 요한이 8세기 비잔틴에서 도달한 것과 — 놀랍도록 비슷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 수 있었을까? 아니다. 원효는 686년에 죽었다. 다메섹의 요한은 675년경에 태어났다. 시대가 거의 겹치지 않는다. 지리적으로 — 원효는 한반도에, 다메섹의 요한은 중동에. 직접 접촉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 같은 구조를 발견했다.
이것이 이 책 전체의 중심 주장 중 하나를 확인한다. 관계적 존재론은 한 문명의 특수한 발견이 아니다. 여러 문명이 독립적으로 도달한 보편적 통찰이다. 7세기 신라의 승려, 8세기 비잔틴의 신학자, 20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21세기 한국의 독자 —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 같은 진실에 접근한다.
화쟁이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정치적·사회적 함의가 깊다.
원효가 살던 신라는 — 삼국 통일 직후의 혼란기였다.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신라 사회에 흡수되면서 — 민족적·종교적·문화적 긴장이 컸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 이 긴장을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사상적 자원이 되었다. 대립하는 입장들을 녹이지 않고 포용하는 방식.
이 전통이 한국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조선의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 노·소론 당쟁, 근대의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현대의 보수-진보 갈등. 각 시기마다 — 화쟁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 그 가능성 자체가 한국 사상 전통의 한 축으로 남아 있다.
원효는 1,400년 전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통찰은 — 오늘 Wetiko 비판의 자원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 Debbie 누나의 "형제야, 너의 조상들도 알고 있었다" 는 말이 가리키는 지점 중 하나가 원효다. 크리의 와코토윈이 말하는 것을, 신라의 승려가 — 다른 언어로 — 이미 알고 있었다.
이황(李滉, 1501~1570). 호 퇴계(退溪). 조선 중기 성리학자. 한국 유학사의 정점 중 하나.⁴
퇴계의 시대에 — 조선 성리학은 정점에 이르렀다. 중국의 주자학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조선의 지식인들이 — 세계적 수준의 학문을 이뤘다. 퇴계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에도 시대 일본 유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의 저작이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퇴계 철학의 중심 개념 중 하나가 경(敬). 한자 그대로 "공경" 또는 "존중" 을 뜻한다. 그러나 퇴계가 말한 경은 — 일상 한국어의 "존경" 과 다르다. 훨씬 깊고 넓은 개념이다.
퇴계의 경은 세 가지 방향을 동시에 품는다.
첫 번째 — 자기에 대한 경. 자기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욕망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명상과 비슷하지만, 단순한 "마음 비우기" 가 아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존중하며 지켜보는 자세.
퇴계가 매일 실천한 것 중 하나가 — 정좌(靜坐). 조용히 앉아 자기 마음을 살피는 것. 하루에 여러 번. 이것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 자기를 대하는 철학적 실천이었다.
두 번째 — 타자에 대한 경. 다른 사람에게, 다른 생명에게, 다른 사물에게 — 모두에게 공경의 태도를 가지는 것. 여기서 핵심은 — 공경의 대상이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 동물, 심지어 사물까지도 경의 대상이다.
퇴계의 한 일화. 그가 손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 개미들이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개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손님이 의아해하자 — 퇴계는 "이것들도 생명입니다" 라고 답했다.⁵ 이 몸짓이 경의 실천이다. 작은 생명에도 — 주목하고 존중한다.
세 번째 — 하늘에 대한 경. 여기서 "하늘" 은 단순한 자연의 하늘이 아니다. 우주의 원리, 존재의 근원 에 해당한다. 기독교의 "하느님" 과 닮아 있지만 — 인격적 신보다는 비인격적 원리에 가깝다. 경은 이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이다. 나의 모든 행위가 — 어떤 큰 맥락 안에 있다는 자각.
퇴계의 경이 페리코레시스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은 관계의 태도다. 자기, 타자, 하늘 — 이 세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그리고 이 세 차원이 —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경이 깊어지면 타자에 대한 경도 깊어진다. 타자에 대한 경이 깊어지면 하늘에 대한 경도 깊어진다. 삼중의 관계가 서로 안에 거한다.
이것이 페리코레시스의 일상적 실천이다.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 매일 아침 정좌하는 것, 개미 앞에서 멈추는 것, 손님을 정중히 대하는 것. 이런 작은 몸짓들이 — 관계적 존재론의 몸의 표현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 — 퇴계는 신학자가 아니었다. 비잔틴 신학을 전혀 몰랐다. 그의 지적 자원은 — 중국 주자학, 한반도의 유학 전통, 그리고 자신의 명상적 실천. 그럼에도 — 다메섹의 요한이나 원효가 발견한 것과 유사한 존재론에 도달했다. 지리와 시대를 건너 — 같은 진실이 여러 사람에게 열린다.
그러나 정직하게 — 경에도 그림자가 있다.
조선 유학 전통에서 경은 위계적 질서의 정당화로 사용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경을 표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경을 표해야 한다. 학생이 스승에게 경을 표해야 한다. 신하가 왕에게 경을 표해야 한다. 이 모든 관계가 위계적이었다. 경이 일방향적으로 작동했다.
이것은 퇴계 본인의 사상이 아니다. 퇴계 자신은 — 오히려 상호적 경을 강조했다. 스승도 제자에게, 부모도 자식에게, 왕도 신하에게, 경을 표해야 한다. 그의 편지들을 읽어보면 —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경" 의 태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 후대의 조선 유학이 이 상호성을 잊었다. 경이 위계를 강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여성의 종속, 노비의 예속, 신분 차별 — 이 모든 것이 "경" 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것이 페리코레시스적 개념의 일반적 위험이다. 15장 말미에서 이미 지적한 것. 상호내주의 언어가 — 권력 비대칭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지배의 가면이 된다. 퇴계의 경이 가진 잠재력이 — 조선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왜곡되었다.
이 교훈이 중요하다. 관계적 존재론이 정의 없이 작동할 때 — 그것은 기만이 된다. 페리코레시스가 됐든, 경이 됐든, 와코토윈이 됐든 — 모두 마찬가지다. 구조적 정의가 함께 있어야 — 이 개념들이 해방적으로 작동한다.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조선 말기의 인물. 동학(東學) 의 창시자. 한국 근대 사상사의 가장 극적인 인물 중 하나.⁶
최제우의 시대는 — 조선이 내외적 위기에 처한 시기였다. 외세의 침탈(특히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 내부의 부패와 민중의 고통. 그리고 — 조선 성리학이 이 위기에 대응할 자원을 거의 소진한 상태. 사상적 공백이 있었다.
최제우는 이 공백에서 —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다. 그가 1860년 4월 "깨달음" 의 경험을 했다고 전한다. 이후 그는 "동학(東學)" — 서양에서 온 기독교(西學)에 대응하는 동방의 가르침 — 을 펼쳤다. 그 중심에 한 선언이 있었다.
"시천주(侍天主)". "내 안에 하늘을 모시고 있다".⁷
이 한 문장이 어떻게 혁명적인가. 몇 가지 층위를 보자.
첫째 — 신학적 전환. 전통 유교에서 하늘(天)은 저 위의 원리였다. 인간은 그 원리를 공경할 뿐이었다. 전통 기독교에서도 하느님은 위에 계셨다. 인간은 그 하느님께 기도할 뿐이었다. 최제우는 이 구조를 뒤집었다. 하늘이 내 안에 있다. 인간과 하늘이 분리되지 않는다. 각 인간이 — 단지 인간이 아니라 — 하늘을 모신 존재다.
둘째 — 사회적 함의. 이 선언이 가진 폭발력은 엄청났다. 모든 인간이 하늘을 모셨다면 —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어떻게 의미 있는가.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인간 사이의 위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최제우와 그의 제자들은 — 실제로 이 논리를 사회 실천에 적용했다. 노비를 풀어줬다. 여성을 동등하게 대했다. 이것이 조선 사회에 던진 충격은 — 컸다.
셋째 — 존재론적 전환. 시천주는 — 모든 존재 안에 신성이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범신론(pantheism) 과 다르다. 범신론은 신이 모든 것에 퍼져 있다는 입장. 시천주는 각 존재가 — 구별된 개체로서 — 하늘을 모신다는 것. 즉 페리코레시스 구조와 닮아 있다. 하늘이 각 존재 안에 거한다. 각 존재는 자기로서 남는다. 분리도 융합도 아닌 제3의 관계.
시천주가 — 놀랍게도 — 크리족의 와코토윈과 공명한다.
와코토윈은 "모든 것이 친족으로 연결되어 있다" 는 존재론이라고 14장에서 말했다. 강도, 산도, 버펄로도, 바람도 — 모두 친족이다. 이 관계망 안에서 각 존재는 자기로 남되, 다른 모든 존재와 친족의 유대 속에 있다.
시천주는 같은 것을 다른 언어로 말한다. 모든 존재 안에 하늘이 있다. 따라서 — 모든 존재가 서로 신성한 관계 에 있다. 강도 신성하고, 산도 신성하고, 너도 신성하고, 나도 신성하다. 이 신성함 속에서 — 우리는 서로 연결된다.
두 개념이 —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에서 — 같은 통찰에 도달한다. 원효와 다메섹의 요한이 그랬듯이. 그리고 — 만약 최제우가 Debbie 누나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들은 — 다른 언어로 — 서로를 이해했을 것이다.
최제우의 선언은 — 사회 변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학농민운동(1894). 조선 전역에서 농민들이 일어났다. 목표: "반봉건 반외세". 봉건적 신분 차별을 철폐하고, 외세의 침탈에 맞서는 것.
이 운동이 —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민중 봉기였다.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곳곳에서 관군과 충돌했다. 일시적으로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기도 했다.
그러나 — 일본군이 개입했다. 청일 전쟁(18941895)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이 동학군을 대량 학살했다. 추정 사상자 3050만 명. 조선 정부는 — 일본의 힘을 빌려 자기 국민을 진압했다.⁸
최제우 자신은 — 이 운동 이전인 1864년에 처형되었다. "이단" 과 "반역" 의 죄목으로. 그가 창시한 동학은 — 그의 사후에 살아남았고, 확산했다. 그리고 — 결국 그가 예견했던 대로 — 피의 대가로 소멸에 가까워졌다.
이 역사가 가르치는 것: 시천주 같은 혁명적 사상은 — 억압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존의 권력 구조를 근본부터 흔들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신성하다는 선언은 — 위계에 기반한 사회에 대한 선전포고다.
그리고 이것이 — 페리코레시스와 같은 관계적 존재론이 — 항상 위험한 개념인 이유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 사회를 바꿔야 한다. 사회를 바꾸려 하면 — 억압받는다. 그래서 많은 경우 — 이 개념이 무해한 영적 개념으로 축소된다. "모두가 하늘을 모신다" 는 — 개인 명상의 주제로. 실천적 의미는 사라진다.
그러나 원래 최제우의 시천주는 — 정치적 선언이었다. 혁명적 잠재력을 가졌다. 그리고 — 동학농민운동에서 그 잠재력이 실제로 폭발했다. 억압의 대가를 치렀지만 — 그 폭발이 한반도 근대사의 시작점 중 하나였다. 3·1 운동, 독립 운동,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첫 번째 큰 사건.
동양의학 — 특히 중국과 한국의 전통 의학 — 의 근본에 음양(陰陽)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이 서양에서 단순화되어 "상반되는 두 원리" 로 이해된다. 그러나 — 이것은 부분적 이해다.
음양의 진짜 의미는 — 두 원리가 서로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완전한 음도 완전한 양도 없다. 둘이 끊임없이 순환한다. 이것이 유명한 태극 기호가 표현하는 것. 원 안에 두 반원이 있지만, 각 반원 안에 작은 원(반대색)이 있다. 이것이 음양 교합(交合).⁹
이 구조가 — 페리코레시스의 몸적·생리적 버전이다. 음과 양이 —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 녹아서 하나가 되지도 않는다. 서로 안에서 춤춘다. 다메섹의 요한의 표현을 빌리면 — 두 위격이 "마치 춤추는 자들처럼" 서로 안에 거하듯이.
이 원리가 한의학의 질병 이해를 규정한다.
서양의학(특히 20세기 지배 모델)에서 질병은 — 특정 원인의 결과다. 세균, 바이러스, 유전자 결함, 장기 부전. 치료는 — 원인 제거 또는 결과 교정이다. 항생제로 세균을 죽이거나, 고장난 장기를 대체하거나.
한의학에서 질병은 — 관계의 불균형이다. 음이 지나치거나, 양이 지나치거나. 또는 기의 흐름이 특정 지점에서 막히거나. 치료는 — 균형의 회복이다. 약, 침, 뜸, 부항 — 각 방법이 균형을 조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관점의 깊이는 — 개인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질문에서 드러난다. 한의학에서 — 몸은 환경과 열려 있다. 계절의 변화, 날씨, 음식, 감정, 관계 — 이 모든 것이 몸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몸이 단순한 해부학적 경계 안의 공간이 아니다. 몸은 —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 맺는 열린 시스템이다.
이것이 — 15장에서 본 현대 시스템 생물학과 놀랍게 수렴한다. 장-뇌 축, 미생물총, 정신신경면역학 — 모두가 몸을 열린 관계적 시스템으로 본다. 현대 과학이 재발견하는 것을 — 한의학은 2000년 이상 실천해왔다.
의학자로서 나는 — 두 의학 체계 사이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정규 훈련은 서양의학 기반. 그러나 한의학적 관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운동의학을 공부하면서 — 몸을 통합적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점점 다가왔다.
한 예를 들자. 만성 요통 환자들. 서양의학적 접근: 디스크 검사, 신경 차단, 수술, 진통제. 이것들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 많은 만성 요통이 구조적 원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디스크 상태를 가진 환자들이 — 어떤 이는 심한 통증을, 어떤 이는 통증 없이 산다.
왜일까. 스트레스, 자세, 근육 불균형, 수면의 질, 영양 상태, 감정적 긴장 — 이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친다. 즉 — 몸의 관계 구조 전체가 관여한다. 한의학적 접근이 여기서 상당히 유효하다. 침 치료, 추나, 한약, 기공 체조 — 이 방법들이 — 몸의 관계망을 재조정함으로써 통증을 완화한다.
내가 하버드에서 연구학기를 보낼 때, 다나파버 암센터에서 —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 클리닉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암 환자들이 — 표준 항암 치료와 함께 — 침, 명상, 요가, 약초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과학적이지 않다" 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 이런 통합 접근이 환자의 삶의 질을 명백히 개선시켰다.¹⁰
이것이 — 한의학의 근본에 있는 음양 교합의 지혜가 21세기 의학에 돌아오는 방식이다.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 치유의 구체적 기술로.
이 주제는 다음 장(17장)의 살루토제네시스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여기서는 다만 — 한의학의 음양이 단순한 동양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 페리코레시스의 의학적 구현이라는 것을 짚어둔다.
이제 이 장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 일상 한국어의 관계적 개념들.
정(情). 한국어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 사전적으로는 "affection", "feeling", "love" 등으로 번역되지만 — 어느 것도 맞지 않는다.
정의 특별한 점은 — 시간과 함께 쌓인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정이 없다. 오래 함께 지낸 사람에게 — 정이 든다. "정이 들다" 라는 표현 자체가 흥미롭다. 정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이 아니다. 나와 상대방 사이의 시간과 상호작용 속에서 — 정이 발생한다.
이것이 정의 페리코레시스적 구조다. 정은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다. 관계 자체의 성격이다. 두 사람(또는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 함께 머문 시간, 함께 겪은 일, 함께 나눈 음식 — 이 모든 것이 쌓여 — 정이 된다.¹¹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정 들었다" 는 말은 — 단순한 감정의 진술이 아니다. 관계의 사실의 진술이다. 한 장소에 오래 살면 — 그 장소와 정이 든다. 한 일을 오래 하면 — 그 일과 정이 든다. 한 사람과 오래 만나면 — 그 사람과 정이 든다. 정은 관계 속에 축적되는 뭔가다.
이것이 Debbie 누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1997년 처음 만났을 때 — 우리 사이에 정이 없었다. 16년간 매년 10일씩 함께 지내면서 — 정이 쌓였다. 이 정이 — 우리를 "형제" 로 만들었다. 피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문서도 아니다. 정.
그리고 — 한국어의 "우리".
"우리" 는 영어 "we" 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번역이 — 전혀 맞지 않는다. 한국어의 우리는 훨씬 이상한 단어다.
영어에서 "my mother" 라고 말한다.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가. "내 어머니" 가 아니라 — "우리 어머니". 왜? 어머니는 나 혼자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의 것이다. 가족, 더 넓게는 공동체의 어머니.¹²
영어에서 "my country" 라고 말한다. 한국어로 — "우리나라". 영어에서 "my house" — 한국어로 "우리 집" (혼자 사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에서 "my school" — 한국어로 "우리 학교".
이 문법적 특성이 — 무엇을 말하는가. 개체가 먼저가 아니다. 관계가 먼저다. 어머니는 — 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 관계망 안의 한 존재다. 학교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부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 한국어 화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매일 표현하는 존재론이다. 언어 구조 자체에 박힌 관계적 사유. 서양 언어의 소유대명사 문법과 정반대다.
"정" 과 "우리" 가 합쳐지면 — 한국적 페리코레시스가 된다.
각 개인이 자기로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 관계망 속에 녹아 있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지만, 동시에 우리 어머니다. 집은 내 집이지만, 동시에 우리 집이다. 나는 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부다.
이 구조가 — 한국 사회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강점: 공동체적 유대. 한국 사회의 회복력 — 6·25 전쟁 후 재건, IMF 위기 극복, COVID 대응 — 많은 부분이 이 공동체적 유대에서 왔다. 서로를 "우리" 로 묶는 감각.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는 능력.
약점: 개인의 경계가 흐려질 위험. "우리" 가 너무 강하면 — 개인이 사라진다. 공동체의 요구 앞에서 개인의 자유가 짓눌린다. 강요된 우리가 된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이 장의 균형을 위해 — 한국의 관계적 전통이 왜곡되어 작동할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 봐야 한다.
강요된 집단주의. 이것이 한국 사회의 오랜 문제다. "우리" 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차이를 억압하는 것. "화합" 의 이름으로 정당한 비판을 봉쇄하는 것. "체면" 의 이름으로 진실을 감추는 것. "효(孝)" 의 이름으로 자녀의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 "눈치" 라는 기술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
이 모든 것이 — 한국 전통의 관계적 지혜의 그림자다. 페리코레시스의 "서로 안에 거함" 이 — "자기를 잃어야 함" 으로 왜곡된다. 정의 "쌓임" 이 — "떠날 수 없음" 으로 왜곡된다. 우리의 "공동체" 가 — "개인성 부정" 으로 왜곡된다.
한 구체적 예: 한국의 직장 문화. "우리 회사", "가족 같은 분위기" — 이런 표현이 종종 쓰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 야근 강요, 갑질, 회식 참여 압박이 일상이다. "우리" 의 언어가 — 노동 착취의 가면이 된다. 회사가 "가족" 이라는 말은 — 정당한 임금 협상을 포기하게 만드는 수사적 도구가 된다.
이것은 15장에서 본 페리코레시스의 위험의 한국적 버전이다. 관계적 언어가 — 권력 구조를 은폐하는 데 쓰이는 것.
그래서 한국어에 또 하나의 특별한 단어가 있다. 한(恨). 이것도 번역 불가능한 단어다. 영어의 "resentment", "grudge", "sorrow" 모두 부분적이다.
한은 — 정의롭지 못한 고통이 해결되지 않고 쌓인 상태다. 분노가 아니다. 분노는 표출된다. 한은 — 표출되지 못한 분노 다. 억눌리고, 삭이고,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 깊은 슬픔.¹³
한이 — 한국 민족의 집단적 감정이라고 여러 문학가·사상가들이 말해왔다. 임진왜란의 한, 식민지의 한, 분단의 한, 독재의 한. 수백 년간 쌓인 해결되지 못한 고통.
그리고 — 한이 많이 쌓인 이유 중 하나가 —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가 개인의 목소리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부당함을 당해도 — "참아라", "화합해라", "우리 안에서 해결해라" 는 압력. 이 압력이 — 표출을 막았다. 그래서 한이 쌓였다.
한의 존재가 증명하는 것: 한국의 관계적 전통이 완벽하지 않다.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를 인정해야 — 전통의 진짜 가치를 구할 수 있다.
21세기에 이 그림자가 — 극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과 출산율 통계.
OECD 국가 중 자살률 최고.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¹⁴ 세계 최저 출산율. 2023년 기준 합계 출산율 0.72명. 한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의 3분의 1 수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의 인구 감소가 예상된다.
이 통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제적 압박, 주거 비용, 교육 경쟁, 성 역할 갈등. 그러나 — 한 가지 차원을 무시할 수 없다. 공동체적 유대의 붕괴.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었다. 농촌이 비어졌다. 확장 가족이 핵가족으로 줄어들었다. 핵가족마저 1인 가구로 분해되고 있다. 과거의 "우리" 가 —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 새로운 관계 방식은 찾지 못했다. 과거의 강요된 집단주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정당하게도). 그러나 서구식 개인주의도 — 한국 사회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 두 모델 모두 부족하다.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그것이 — 이 장의 궁극적 메시지다. 페리코레시스, 화쟁, 시천주, 정, 우리 — 이 다양한 언어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관계적 존재의 방식. 강요되지 않되 풍부한. 개인이 존중되되 고립되지 않는. 공동체가 작동하되 압도하지 않는.
이 제3의 길이 — 21세기 한국이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 전 세계가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장에서 본 여러 동양 개념들 — 원효의 화쟁, 퇴계의 경, 시천주, 한의학의 음양, 정, 우리 — 이 페리코레시스와 공명하면서도 같지 않다.
서양 페리코레시스 전통의 장점:
동양 관계 전통의 장점:
이 두 전통이 — 서로 배울 것이 많다. 서양이 체계를 주고, 동양이 실천을 준다. 서양이 정의 언어를 주고, 동양이 조화의 감각을 준다. 서양이 개인의 존엄을 지키고, 동양이 관계의 풍부함을 보존한다.
이 동서의 페리코레시스가 — 21세기에 가능한 치유의 한 방향이다. 한 문명의 자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전통이 서로 안에 거하면서 각자로 남는 관계. 이것이 — 이 책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이 장을 마치며 — 한 가지 개인적 고백을 해야 한다.
내가 한국인이면서 크리의 일원이라는 것 — 이 이중 정체성 — 이 처음에는 혼란이었다. 어느 쪽이 진짜 나인가. 어떻게 둘 다일 수 있는가. 양쪽에서 "충분히" 속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
그러나 — 페리코레시스의 렌즈로 이것을 보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이중 정체성 자체가 페리코레시스의 살아 있는 실례다. 한국인으로 남고, 크리의 일원으로 살고, 두 정체성이 — 분리되지 않되 녹아들지 않는다. 서로 안에 거한다.
Debbie 누나가 — 본능적으로 — 이것을 이해한다. 그녀는 나에게 "한국인을 그만둬" 라고 말한 적이 없다. "크리가 되기 위해 한국인을 버려라" 도 아니다. 오히려 —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 크리의 친족이 될 수 있다고 그녀는 본다. 내 이중성이 — 관계의 풍부함이다.
이것이 — 이 책 전체의 조용한 고백이다. 내가 쿠스코에 와서 잉카의 돌 앞에 서고, 티폰의 물에 손을 담그고, 삭사이와만의 거석을 만지면서 — 이 모든 것을 한국인으로서, 크리의 일원으로서, 의학자로서,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로서 — 여러 렌즈로 보았다. 어느 하나의 렌즈가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렌즈가 서로 안에 거하면서 — 새로운 봄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페리코레시스의 실천이다. 그리고 — 여러 문명의 지혜가 만나는 방식이다. 단 하나의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여러 전통이 서로 안에서 춤추게 하는 것.
이 장을 마치며 — 하나의 감각이 남는다. 한국의 조상들도 알고 있었다.
원효, 퇴계, 최제우 같은 이름으로 알려진 이들. 그리고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할머니, 농부, 어머니들. 그들이 — 알고 있었다. 관계가 존재에 선행한다는 것. 서로 안에 거하면서도 자기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정이 시간과 함께 쌓인다는 것. "나" 가 "우리" 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
이 지혜가 — 근대화 과정에서 많이 잃어졌다. 서양식 개인주의가 밀려왔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공동체를 해체했다. 식민지와 전쟁이 집단적 상처를 남겼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관계적 전통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어의 "우리" 라는 단어가 여전히 쓰인다. "정이 들었다" 는 표현이 여전히 쓰인다. 명절이면 흩어진 가족이 여전히 모인다. 동네 할머니가 여전히 이웃 아이에게 간식을 준다. 이런 작은 몸짓들이 — 전통의 지속이다.
그리고 — 다시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Debbie 누나가 크리 전통에서 고향을 찾았듯이 — 한국인은 한국 전통에서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 비판적으로. 그림자를 인정하면서. 강요된 집단주의를 거부하면서. 페리코레시스의 진정한 구조를 — 다시 배우면서.
이 장에서 관계적 존재론의 철학적·종교적 표현들을 보았다. 그러나 — 이것이 추상에 머물 수는 없다.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가장 구체적인 실천의 장 중 하나가 — 의학이다. 우리의 몸. 우리의 건강. 우리의 질병. 우리가 살고 죽는 방식.
다음 장에서 우리는 — 살루토제네시스(Salutogenesis) 라는 의학적 개념을 만난다. 20세기 후반 아론 안토노브스키가 정립한 — 건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묻는 관점. 이것이 페리코레시스의 의학적 구현이다. 그리고 이것이 — 이 장에서 살짝 언급한 한의학의 지혜와 — 놀랍게 수렴한다.
몸이 페리코레시스적으로 작동한다. 건강이 페리코레시스적으로 생성된다. 치유가 페리코레시스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17장의 주제다.
¹ 원효의 생애와 사상에 관하여는 고영섭, 《원효탐색》 (서울: 연기사, 2001); 이기영, 《원효사상》 (서울: 홍법원, 1967).
² 화쟁 사상에 관하여는 박성배, 《한국사상과 불교》 (서울: 혜안, 2009), 특히 제3장.
³ 원효, 《대승기신론소》. 현대 한국어 번역본: 은정희 역해,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서울: 일지사, 1991).
⁴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에 관하여는 이상은, 《퇴계의 생애와 학문》 (서울: 예문서원, 1999); 금장태, 《퇴계 학파의 사상》 (서울: 집문당, 1998).
⁵ 퇴계의 개미 일화는 여러 전기적 자료에 나타난다. 전형적 예로 이덕홍, 《계산기선록》 인용.
⁶ 최제우의 생애와 동학에 관하여는 윤석산,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서울: 모시는사람들, 2004); 오문환, 《동학의 정치철학》 (서울: 모시는사람들, 2003).
⁷ 시천주 개념에 관하여는 최제우, 《동경대전》 중 "포덕문" 과 "논학문" 에 기초한다. 번역본: 김용휘 역주, 《동경대전》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0).
⁸ 동학농민운동의 희생자 규모 추정은 박맹수,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⁹ 음양 개념의 의학적 적용에 관하여는 Paul U. Unschuld, Medicine in China: A History of Idea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¹⁰ 통합의학의 근거에 관하여는 David S. Rosenthal et al., Integrative Medicine at Dana-Farber Cancer Institute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연구 리뷰).
¹¹ 한국어 "정" 의 개념 분석에 관하여는 Choi Sang-Chin, Cultural Psychology of Koreans (Seoul: Jisigsanup Publishing, 2011).
¹² 한국어 "우리" 의 문법적·사회적 의미에 관하여는 이규호, 《말의 힘》 (서울: 제3기획, 1981).
¹³ "한" 개념의 한국적 특성에 관하여는 김열규, 《한국인의 한》 (서울: 민음사, 1980).
¹⁴ 한국의 자살률 통계는 OECD Health Statistics 최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