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늦게, 나는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작은 카페에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어제 비가 와서 돌바닥이 아직 촉촉하다. 안데스의 햇빛이 부드럽다.
주문한 것은 커피 한 잔이다. 페루는 세계적 커피 생산국이다. 특히 북부 안데스 고원의 원두가 뛰어나다. 산미가 밝고 향이 깨끗하다. 웨이터가 작은 도자기 잔에 에스프레소와 물 한 잔을 함께 내왔다. 그리고 설탕 종지도. 나는 자연스럽게 스푼을 들어, 설탕 한 숟가락을 떠서 커피에 떨어뜨렸다. 휘저었다.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첫 모금을 넘긴 직후, 나도 모르게 스푼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손에 아직 들고 있던 그 작은 쇠 도구. 그 위에 묻은 설탕 몇 알갱이. 그리고 — 이 익숙한 몸짓이 담고 있는 것에 대해, 갑자기 생각이 멈췄다.
설탕.
지난 11장에서 나는 박물관의 은화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 은화 하나가 담고 있는 세계사의 무게에 관해. 포토시의 광부들, 태평양 갤리온, 중국의 세금 개혁, 조선의 연은분리법. 한 동전에 담긴 지구 규모의 이야기.
설탕 한 스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설탕은 은보다 더 기묘한 물건이다. 은은 박물관에서 유리 너머로 본다. 설탕은 매일 먹는다. 한국인 평균이 하루 약 60그램. 커피에, 음료에, 디저트에, 소스에 숨어 들어온다. 한 해 누적하면 1인당 약 22킬로그램. 한국인 5천만 명이면 연간 110만 톤. 이 방대한 양이 —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여기에 오는가. 왜 이것이 이렇게 저렴하고 당연한가.
이 질문들이 이 장의 주제다. 설탕 한 스푼의 역사.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Wetiko가 산업화되는 순간을 본다. 은이 추출의 원형이었다면, 설탕은 생산의 원형이다. 그리고 그 생산의 현장이 — 현대 공장 시스템의 뿌리가 된다.
나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단맛이 혀에 감돌았다. 익숙하고, 위로되고, 무죄한 단맛. 그러나 그 뒤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이 작은 쾌락이 다르게 느껴졌다. 400년의 아프리카인 대륙 이동. 카리브해 섬의 도망친 농부들. 영국 노동자의 긴 근무 시간. 지금도 아이보리 코스트에서 카카오를 따는 어린이들. 이 모든 것이 — 한 스푼의 설탕에 녹아 있다.
작은 쇠 스푼 하나. 설탕 5그램. 역사적 무게는 그보다 훨씬 무겁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사탕수수(Saccharum officinarum)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이 식물이 왜 특별한지.
사탕수수는 열대·아열대에서만 자라는 높이 3~6미터의 억센 풀이다. 원래 뉴기니와 동남아시아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고대 인도를 거쳐 중동으로, 그리고 중세 말 지중해 연안으로 퍼졌다. 1492년 콜럼버스가 2차 항해(1493)에서 카리브해로 사탕수수 묘목을 가져갔다.¹ 열대 아메리카의 기후가 사탕수수에 이상적이었다. 곧 사탕수수 농장이 카리브해 섬 전역에 퍼졌다.
그런데 — 사탕수수 재배는 다른 어떤 작물과도 달랐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사탕수수의 특수성 1: 수확 후 48시간 이내에 압착해서 즙을 짜야 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당분이 발효되어 소실된다. 즉, 기다릴 수 없다. 수확 타이밍과 압착 타이밍이 일치해야 한다.²
사탕수수의 특수성 2: 짠 즙은 수 시간 이내에 끓여 농축하고 결정화해야 한다. 역시 기다릴 수 없다. 즉, 수확, 압착, 끓이기가 연속적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탕수수의 특수성 3: 이 모든 과정이 대규모 현장 시설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개별 농부가 자기 밭에서 작은 규모로 할 수 있는 작물이 아니다. 수백 에이커의 밭, 수백 명의 노동자, 거대한 압착기, 큰 끓임솥, 결정화 시설 — 이 모든 것이 한 장소에 집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탕수수 농업은 본질적으로 공장 산업이다. 밀, 쌀, 옥수수, 감자 같은 작물은 농업이다. 사탕수수는 농업의 외양을 한 공업이다. 밭(field)과 공장(factory)의 구분이 없다. 현장 자체가 통합 생산 시설이다.
이 특수성에 맞는 조직 형태가 플랜테이션(plantation) 이다. 영어 단어 "plant"(심다)에서 유래한 이 말이, 단순한 "농장" 이 아니라 특수한 조직 형태를 가리키게 되었다.
플랜테이션의 요소:
이 마지막 요소가 결정적이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답은 — 자원하는 사람은 없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노동은 극도로 힘들고, 위험하며, 저임금이다. 뜨거운 열대 햇빛 아래 하루 16~18시간의 중노동. 압착기에 손이 끼여 절단되는 사고가 흔했다. 끓는 설탕액에 화상을 입는 일상.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위협.
이런 조건의 노동을 강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플랜테이션은 언제나 강제 노동 시스템과 결합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카리브해 원주민(타이노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질병과 학살로 금세 사라졌다. 다음은 계약 하인(indentured servants) — 유럽 빈민이나 죄수가 몇 년간 일하는 대가로 신대륙 이주를 받는 시스템. 그러나 이들 수가 부족했다.
최종 답은 — 아프리카 노예였다.
이 플랜테이션 구조를 가장 깊이 분석한 학자가 시드니 민츠(Sidney Mintz, 1922~2015) 였다. 미국 인류학자. 그는 1950년대부터 푸에르토리코와 자메이카에서 현장 연구를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 결정적 저작을 출간했다. 제목은 『달콤함과 권력: 근대 역사에서 설탕의 자리(Sweetness and Power: The Place of Sugar in Modern History)』.³
민츠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공장 시스템은 영국 맨체스터가 아니라 카리브해 플랜테이션에서 탄생했다. 시간적으로도 100년 이상 앞서고, 구조적으로도 원형적이다.
그의 근거는 이러했다.
시간 규율. 영국 산업혁명 공장의 상징인 "시계에 맞춘 노동" 이 실제로는 카리브해 사탕수수 공장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수확기에는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교대로 일한다. 작업 속도가 정밀하게 관리된다. 한 사람이 늦으면 전체 공정이 멈춘다. 이 시간의 상품화가 플랜테이션의 핵심이었다. 17~18세기 카리브해에서. 영국 공장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18세기 말.⁴
분업. 한 사람이 전체 과정을 하지 않는다. 각자 한 가지 전문 작업만 한다. 베는 사람은 베기만, 운반하는 사람은 운반만, 압착하는 사람은 압착만, 끓이는 사람은 끓이기만. 이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또한 — 각 노동자가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나중에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이 체계화하는 원리다. 그러나 카리브해에서는 이미 200년 전부터 작동하고 있었다.
기계와 인간의 통합. 플랜테이션의 공장 부분은 실제로 기계가 중심이다. 거대한 압착기, 끓임솥, 파이프 시스템. 노동자는 이 기계들의 보조 장치가 된다. 기계가 요구하는 리듬에 맞추어 인간이 움직인다. 인간이 기계의 부품이 된다. 산업혁명의 악몽 같은 특징이, 이미 카리브해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다만 기계의 동력이 인간 근육과 노예 채찍이었을 뿐이다.
일관된 표준 상품. 플랜테이션은 한 종류의 상품을 대량 생산한다. 원당 또는 정제당. 세계 어느 곳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설탕도 동일한 성질을 가진다(품질 등급 내에서). 이 표준화가 세계적 상품 유통의 기반이 된다. 다시, 이것도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 카리브해가 먼저였다.
민츠의 결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기계 대신 흑인 노예가 부품이었을 뿐, 구조적으로는 현대 공장이다. 산업혁명의 "발명"이란 이 구조를 유럽으로 수입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수입을 가능하게 한 자본도 — 플랜테이션의 설탕 이익에서 왔다.
이 테제가 왜 중요한가. 자본주의의 기원을 유럽 내부가 아니라 식민지와 유럽의 공모 관계로 옮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유럽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대서양 삼각 구조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삼각 구조의 한 꼭짓점이 — 아프리카 노예였다.
대서양 삼각무역(Triangular Trade) 이라 불리는 시스템이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약 350년간 작동했다. 기본 구조는 이러했다.⁵
유럽 → 아프리카: 유럽 상인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제조품을 실어 간다. 주요 품목: 총기와 화약, 브랜디와 럼주, 직물, 금속 도구, 유리구슬. 이 물건들이 아프리카 해안의 노예 거래 항구 에서 거래된다. 대가로 — 사람을 받는다.
아프리카 → 아메리카 (Middle Passage, "중간 항해"): 구매된 사람들이 노예선에 실린다.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나 아메리카 해안으로 운반된다. 항해 기간은 평균 6~8주. 이 과정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강제 이주 중 하나였다. 뒤에 자세히 다룬다.
아메리카 → 유럽: 아메리카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식민지 상품이 유럽으로 운반된다. 주요 품목: 설탕, 담배, 면화, 럼주, 커피, 카카오. 이 상품들이 유럽 시장에서 소비되고, 그 판매 이익이 다음 항차의 자금이 된다.
이 세 발이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각 항차에서 상인들이 이익을 얻는다. 특히 두 번째 항차 — 노예 운송 — 가 가장 수익성이 높았다. 살아남은 노예 한 명이 아메리카에서 팔리는 가격이 아프리카에서 산 가격의 5~10배였다.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인이 이 삼각무역에 끌려갔는가.
에모리 대학교의 "Slave Voyages" 데이터베이스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모든 항해를 종합한 연구 프로젝트다. 2023년 현재, 이 데이터베이스는 약 36,000건의 노예 항해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종합 추정:⁶
이 숫자는 사회학적 통계지만, 그 뒤의 인간 경험을 생각해야 한다. 1,250만 명. 1,250만 개의 가족 분리. 1,250만 번의 강제 이별. 1,250만 번의 공포와 절망.
그리고 이것은 Middle Passage에서 사망한 사람들만 계산한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해안까지의 행군에서 죽은 사람 (수십만~수백만 추정). 해안 노예 감옥에서 대기하다 죽은 사람 (수십만). 아메리카 도착 후 처음 몇 년간 적응 실패로 죽은 사람 (수백만). 이 모든 것을 합치면, 노예 무역 시스템으로 인한 총 아프리카인 사망이 2,000만 명을 훨씬 넘는다는 추정이 있다.⁷
노예선은 어떤 곳이었는가.
적재 방식이 가장 충격적이다. 노예들은 선창에 "상자 넣기(tight-packing)"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한 사람당 할당된 공간은 성인 남성: 길이 약 183cm × 폭 약 40cm × 높이 약 76cm.⁸ 관(棺)보다 약간 큰 크기. 이 공간에서 6~8주를 보내야 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쪼그린 자세로. 옆 사람의 체취와 배설물 속에서.
항해 중 사망률이 평균 **15%**였다.⁹ 질병 — 특히 이질, 천연두, 괴혈병 — 이 주된 원인. 그러나 자살도 많았다. 일부 노예들은 음식 거부로 굶어 죽으려 했다. 선장들은 강제 급식 장치(speculum oris) 를 써서 입을 벌려 음식을 부었다. 다른 노예들은 투신을 시도했다. 바다로 뛰어들어 상어에게 잡히는 것이 더 나았다고. 선장들은 그물을 배 주위에 쳐서 막았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노예선 선장들이 항해 일지를 남겼고, 그 일지들이 영국과 포르투갈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모르는 것은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읽지 않아서다.
아프리카 해안에는 수십 개의 노예 거래 요새가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가나의 엘미나 성(Elmina Castle) 과 케이프 코스트 성(Cape Coast Castle). 이 요새들에는 지하 감옥이 있었다. "남성 감옥" 과 "여성 감옥" 이 분리. 각 감옥에 수백 명이 수용되었다. 창문이 없고, 환기가 되지 않으며, 바닥에 배설물이 쌓이는.
노예 후보들은 여기서 몇 주에서 몇 달 대기했다. 다음 노예선이 도착할 때까지. 일부는 미치고, 일부는 죽고, 대부분은 살아남아 배에 실렸다. 배로 나가는 문의 이름이 — "돌아오지 않는 문(Door of No Return)" 이었다.¹⁰ 이 문을 통과한 자는 아프리카 땅을 다시 밟지 못한다.
오늘 엘미나 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방문해 연설했다. 그러나 — 수백 년간 이 문을 통과한 이름들은 여전히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살아서 카리브해나 남미 해안에 도착한 노예들은 경매에 부쳐졌다. 건강한 성인은 비싸고, 어린이와 노인은 쌌다. 가족이 있어도 각자 다른 주인에게 팔렸다. 아프리카에서의 모든 인연이 이 순간 끊겼다.
플랜테이션에서의 삶의 기대 수명은 — 카리브해 브라질 지역에서 7~10년 정도였다.¹¹ 이것은 "정상적" 수명의 1/7 수준. 플랜테이션 주인의 계산은 잔혹할 만큼 단순했다. "노예를 오래 살리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싸다." 그래서 최대한 혹사시키고, 죽으면 또 사들인다.
이 논리가 350년간 작동했다.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수입해야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스템이 얼마나 사람을 소모시켰는지 보여준다. 1,25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는데, 남북 전쟁 직전 미국 남부의 노예 인구는 약 400만 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 먹혀버렸다.
이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Wetiko가 산업화되었다. 생명력을 추출하는 것이 자동화된 시스템이 되었다. 포토시의 수은 아말감 공정과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공장은 같은 구조의 두 얼굴이다. 다른 것은 피해자의 지리적 출신뿐이다.
이 장의 또 다른 축이 유럽의 소비자다. 특히 영국의 노동자 계층.
민츠의 통찰 중 가장 날카로운 것이 이것이다. 영국 산업혁명의 공장 노동자가 카리브해 설탕을 대량 소비함으로써 삼각 구조가 완성되었다.
언뜻 보면 이상하다. 왜 노동자인가?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라. 초기에 설탕은 사치품이었다. 15~16세기 유럽에서 설탕은 약재로 약국에서 팔렸다. 또는 왕실 만찬의 과시 장식물로 쓰였다. 이 시기의 설탕은 거의 금처럼 귀했다.
17세기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카리브해 플랜테이션이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면서 가격이 떨어졌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영국 중산층도 설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차와 함께. 또는 과일 잼에. 19세기에 이르면 — 노동자 계층도 설탕을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의 공장 노동자에게 설탕과 차가 기본 식품이 된 것이다.¹² 특히 설탕 탄 차 + 잼 바른 빵 의 조합이 영국 노동자 가정의 일상적 아침·점심 식사가 되었다.
왜? 세 가지 이유.
공장 노동은 극도로 힘들었다. 하루 12~16시간의 기계 앞 노동. 이런 노동을 유지하려면 고열량 식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19세기 영국 노동자 임금으로는 고기나 신선한 채소를 매일 먹기 어려웠다. 설탕은 — 놀랍도록 싼 열량원이었다.
1파운드(약 454그램)의 설탕은 약 1,750 칼로리. 당시 영국에서 이 설탕의 가격은 노동자 하루 일당의 일부에 불과했다. 같은 가격으로 고기를 사면 훨씬 적은 칼로리를 얻는다. 경제적으로 설탕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빵에 잼을 두껍게 발랐다. 차에 설탕을 많이 넣었다. 간식으로 설탕 과자를 먹었다. 이것이 하루 10시간 이상의 공장 노동을 몸이 버티게 하는 연료였다.
설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졸림을 막아야 했다. 기계 앞에서 졸면 사고가 난다. 감독관의 벌이 떨어진다. 여기서 차(tea) 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차는 카페인을 함유한다. 카페인은 각성제다. 공장 노동자에게 차는 약물이자 음료였다. 매 교대마다 차 한 잔. 오후 브레이크에 차 한 잔. 아침 출근 전 차 한 잔.
그런데 차는 처음에 쓰다. 영국인의 입맛에는 쓴맛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마셨다. 중국식이나 일본식의 녹차 — 설탕 없이 마시는 — 와는 완전히 다른 음용 문화가 생겼다. "영국식 티(English tea)" 는 처음부터 "설탕과 우유를 넣은 차" 였다.¹³
민츠의 정확한 관찰: 이 조합(차 + 설탕)이 산업혁명 공장 노동을 유지하는 화학적 기반이었다. 설탕의 열량과 차의 카페인이 결합해서 — 극한 노동을 가능케 하는 마약적 혼합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적 요소. 18~19세기 영국에서 차-설탕은 귀족 문화의 모방이었다. 상류층이 먼저 시작한 것을 중산층이 따라 했고, 이어 노동자도 따라 했다. 설탕 든 차 한 잔을 예쁜 도자기에 담아 마시는 것이 "문명 생활"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이 식민지 상품 유통의 천재적 전략이기도 했다. 식민지 설탕과 중국 차를 수입하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그 관련 세력들이, 의식적으로 이 문화를 사회 전반에 퍼뜨렸다. 광고, 사교 의식, 예절서 — 모든 것이 "품위 있는 사람은 차를 마신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 결과 19세기 말 영국인은 세계 최대의 차 소비국이자 설탕 소비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소비가 없었다면, 카리브해 플랜테이션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 시장의 설탕 수요가 플랜테이션의 생산을 흡수했기 때문에, 플랜테이션은 성장했고 확장되었다. 더 많은 노예가 필요해졌고, 더 많은 아프리카인이 끌려왔다.
여기서 민츠의 결정적 통찰이 나온다. 영국 공장 노동자와 아프리카 노예, 이 두 집단은 모두 Wetiko의 피해자였다. 다만 형태가 달랐을 뿐.
아프리카 노예는 직접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쇠사슬, 채찍, 강제 노동.
영국 노동자는 간접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공장의 시간 규율.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 환경. 폐질환과 기형화된 몸.
그러나 두 폭력은 같은 시스템의 두 얼굴이었다. 그리고 영국 노동자는 자기도 모르게 아프리카 노예의 착취의 공범이 되었다. 그가 마시는 차의 설탕은 — 지구 반대편에서 채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사실을 그는 몰랐다. 그러나 그의 일상적 소비가 그 시스템을 유지시켰다.
이것이 현대 글로벌 경제의 원형이다. 소비자는 자기 소비의 뒷면을 모른다. 스마트폰의 코발트가 콩고 아동이 채굴한 것임을, 티셔츠가 방글라데시의 13세 소녀가 꿰맨 것임을, 초콜릿이 아이보리 코스트의 농장에서 노예 노동으로 재배된 것임을 — 대부분의 소비자는 모른다. 추상화가 그 뒷면을 지운다(9장).
그러나 이 무지가 공범성을 면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의 공범이다. 이 인식이 불편하다. 그러나 필요하다. Wetiko의 자기 은폐를 깨뜨리는 첫걸음이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이 시작되었다. 퀘이커 교도들이 앞장섰다.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이 합류했다.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 가 의회에서 수십 년간 싸웠다. 결국:
표면적으로 이것은 인류사의 거대한 도덕적 승리다. "문명"이 "야만"을 극복했다는 서사. 영국 교과서는 지금도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한 문명화된 제국 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서사의 뒷면을 보면, 더 복잡한 진실이 있다.
1833년 영국의 노예제 폐지법의 한 조항이 충격적이다. 법은 해방된 노예들에게 보상하지 않았다. 대신 노예주들에게 보상했다.¹⁵
정확히 말하면, 영국 정부는 약 2천만 파운드를 노예주들에게 지급했다. 이것은 당시 영국 연간 예산의 약 40%, GDP의 약 5% 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¹⁶ 논리는 이러했다 —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었고, 재산을 국가가 몰수하려면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 보상금을 받은 노예주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가. 많은 이들이 영국에서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영국 사회의 상류층 중 상당수가 이 보상금 덕분에 유지된 가문이다.
해방된 노예들은 —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수백 년간의 강제 노동에 대한 임금 체불은 보상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 를 얻었지만 자본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옛 주인의 플랜테이션에서 계속 일했다. 이번에는 노예가 아니라 매우 낮은 임금의 노동자로. 착취의 형식만 바뀐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영국 정부가 이 보상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다. 그리고 이 국채를 — 2015년까지 갚았다.¹⁷
즉, 21세기의 영국 납세자들이 19세기 노예주들에 대한 보상금의 이자를 계속 갚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냉전, 유럽 통합, 브렉시트 — 이 모든 것을 거치면서도, 이 빚은 계속 살아남았다. 영국 국민의 세금 중 아주 작은 부분이 계속 이 빚을 갚는 데 쓰였다. 2015년에야 완전히 청산되었다.
이 사실이 2018년 영국 재무부의 트윗으로 공개되자, 전국적 논쟁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 자기가 평생 낸 세금의 일부가 19세기 노예주 가문의 후손들에게 흘러갔다는 것을. 그리고 그 후손들은 여전히 영국 엘리트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¹⁸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는 지속된다. 노예제의 이익을 누린 가문들은 그 자본으로 이후 세대에 영향력을 확대했다. 영국의 여러 대학, 기업, 자선 재단, 정치 권력이 간접적으로 노예제의 자본에서 기원한다.
이것이 구조적 인종 불평등의 경제적 기초다. 오늘의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가 — 과거의 노예제에서 시작되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진 자본 축적의 직접적 결과다.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 자본 이전의 문제다.
그리고 이 구조가 지속되는 한 — 노예제는 법적으로 끝났을 뿐, 구조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노예제의 수혜자가 오늘도 수혜를 누리고, 노예제의 피해자의 후손이 오늘도 피해를 겪는다. 이것이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유명한 말이 의미하는 바다.¹⁹
이 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사라졌는가. 아니면 이름을 바꾸고 계속되고 있는가.
나는 후자라고 주장한다. 증거는 명백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노트북과 같은 방에 있는 스마트폰. 이 두 기기의 배터리에 코발트(cobalt) 가 들어간다. 코발트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세계 코발트의 약 70%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채굴된다.²⁰ 그리고 그 채굴의 상당 부분이 — "수공업적 채굴(artisanal mining)" 이라 불리는 비공식 광산에서 이루어진다. 이 광산의 작업 조건은:
콩고의 아동 코발트 광부 수는 약 40,000명 으로 추정된다.²¹ 많은 아이들이 6~7세부터 일한다. 유엔 아동 권리 위원회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반복적으로 고발해왔다. 그러나 시스템은 계속된다. 왜? 애플, 구글, 테슬라, 삼성, 현대 가 이 코발트를 구매해 스마트폰과 전기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 로펌이 이들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16명의 콩고 어린이(또는 그 유가족)를 대표해서. 부상과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 법원의 판결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나 소송 자체가 —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²²
초콜릿은 설탕보다 더 극적인 예다. 세계 카카오의 약 70%가 서아프리카(코트디부아르, 가나)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아동 노동에 의존한다.
시카고 대학교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5~17세 아동 수는 약 150만 명.²³ 이들 중 상당수가:
이 아동 노동의 혜택은 누가 받는가. 서양의 초콜릿 대기업들 — Mars, Hershey, Nestlé, Cargill, Barry Callebaut. 이들은 수십 년간 "아동 노동을 제거하겠다" 고 약속했지만, 실제 진전은 더디다. 현재 체계에서는 저렴한 코코아 가 높은 이익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공정 거래 코코아는 더 비싸고, 따라서 이윤이 적다.
결국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초콜릿 한 조각에 — 서아프리카 아동 노동의 그림자가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이 패턴은 다른 상품에도 적용된다.
팜유(palm oil) —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팜유 농장. 원시림 파괴, 오랑우탄 서식지 손실, 이주 노동자 착취, 일부 지역에서 노예 노동.²⁴ 이 팜유가 우리의 라면, 과자, 비누, 화장품에 들어간다.
의류(fast fashion) —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의 의류 공장. 하루 14~16시간 노동. 낮은 임금. 위험한 건물(2013년 라나 플라자 붕괴로 1,134명 사망). H&M, Zara, Uniqlo 등 글로벌 브랜드의 옷.²⁵
커피 —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브라질, 베트남의 커피 농장. 많은 곳에서 아동 노동, 빚에 묶인 계약 노동, 극도의 저임금.²⁶
농산물 — 미국의 딸기, 토마토, 양파.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수확.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인한 취약성 — 고발도 못 하고 혹사 당함.
이 모든 것이 현대의 플랜테이션이다. 사탕수수와 쇠사슬은 사라졌다. 그러나 구조는 — 먼 곳의 저임금 노동이 가까운 곳의 값싼 상품으로 전환되는 구조 — 는 계속된다.
1988년, 네덜란드의 한 비영리 단체가 공정 무역(Fair Trade) 인증 시스템을 시작했다.²⁷ 원리는 간단했다. 소비자가 조금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그 추가 금액이 생산자에게 직접 돌아가게 한다. 중간 상인의 마진을 제한하고, 생산 조건에 대한 기준을 부과한다.
이 시스템은 실제로 일부 효과가 있었다. 일부 협동조합이 공정 무역 인증을 받아 개선된 가격을 얻었다. 일부 상품(커피, 초콜릿, 바나나)에서 의미 있는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공정 무역은 전체 세계 무역의 1% 미만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여전히 가장 싼 상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공정 무역 인증 자체도 — 일부 경우 형식적이어서 실제 농민에게 큰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 공정 무역이 시장 논리 안에서의 개선이라는 점이다. 시장 논리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 Wetiko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피해를 완화할 뿐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 소비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개별 소비자의 선택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제도적,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글로벌 노동 기준. 공급망 투명성 법. 강제적 인권 실사.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들이 Wetiko 시스템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런 규제를 막기 위해 수조 원의 로비를 한다. 그래서 변화가 느리다.
커피를 다 마셨다. 잔 바닥에 커피 가루가 조금 남아 있다. 설탕은 모두 녹았다. 스푼에 묻어 있던 몇 알갱이도 사라졌다.
그러나 이 장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 머리 속에 남는다.
한 스푼의 설탕. 5그램. 그 뒤에:
이 모든 것이 한 스푼에 녹아 있다.
중요한 점을 마지막에 말해야 한다. 이 장이 도덕적 설교가 되면 안 된다. 내가 독자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 고 하거나 "스마트폰을 버리라" 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개별 선택으로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에게 죄책감을 지우고,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해버린다. 이것도 Wetiko의 한 전략이다 —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
그러나 보는 것 은 다른 이야기다. 의식 없이 먹는 설탕과 의식하며 먹는 설탕은 — 같지 않다. 내가 이 스푼을 들 때, 그 뒤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떠오르면, 나는 그 시스템의 자기 은폐를 작은 틈에서 깨뜨리는 것이다. Wetiko의 가장 큰 방어가 무지와 습관이기 때문에, 인식 자체가 저항이 된다.
그리고 인식이 쌓이면 — 정치가 바뀐다. 법이 바뀐다. 시스템이 바뀐다. 이것이 역사가 바뀌는 방식이다. 천천히, 그러나 실제로.
이 장과 11장을 합치면, 첫 세계화의 두 기둥이 보인다. 포토시의 은 (추출의 원형)과 카리브해의 설탕 (생산의 원형). 이 둘이 함께 작동하며 1571년 이후의 세계 경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세계화는 대서양에만 머물지 않았다. 태평양을 건넜다. 일본에 도달했다. 조총과 기독교로 무장해 조선의 해안에 부딪혔다. 1492년에서 1592년 사이 정확히 100년. 같은 파도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반도에 도달한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파도의 한국적 접촉을 본다. 임진왜란이 무엇이었는지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다시 읽는다. 그 전쟁은 단순한 한일 전쟁이 아니었다. 첫 세계화의 한반도 타격이었다.
한국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¹ 콜럼버스의 카리브해 사탕수수 도입에 관하여는 Alfred W. Crosby, The Columbian Exchange: Biological and Cultural Consequences of 1492 (Westport, CT: Greenwood Press, 1972).
² 사탕수수의 시간적 제약에 관한 기술적 설명은 Sidney W. Mintz, Sweetness and Power: The Place of Sugar in Modern History (New York: Viking, 1985), 제1장.
³ 위의 책 전체. 한국어 번역본: 《설탕과 권력》, 김문호 역, 지호, 1998.
⁴ 카리브해 플랜테이션의 시간 규율에 관하여는 위의 책 제2장.
⁵ 대서양 삼각무역의 기본 구조에 관하여는 Hugh Thomas, The Slave Trade: The Story of the Atlantic Slave Trade 1440-1870 (New York: Simon & Schuster, 1997).
⁶ Slave Voyages Database, Emory University (slavevoyages.org). 2023년 기준 통계.
⁷ 노예 무역으로 인한 전체 아프리카인 사망 추정치에 관하여는 Patrick Manning, Slavery and African Life: Occidental, Oriental, and African Slave Trad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⁸ 노예선의 공간 할당에 관하여는 Marcus Rediker, The Slave Ship: A Human History (New York: Viking, 2007), 제3장.
⁹ Middle Passage 사망률 평균 15%에 관하여는 Herbert S. Klein, The Atlantic Slave Trad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제5장.
¹⁰ 엘미나 성의 "돌아오지 않는 문" 에 관하여는 Saidiya Hartman, Lose Your Mother: A Journey Along the Atlantic Slave Rout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07).
¹¹ 카리브해 노예의 평균 수명에 관하여는 Stuart B. Schwartz, Slaves, Peasants, and Rebels: Reconsidering Brazilian Slavery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2).
¹² 영국 노동자의 설탕-차 소비 증가에 관하여는 Mintz (1985), 제3장.
¹³ 영국 차 문화의 역사에 관하여는 Erika Rappaport, A Thirst for Empire: How Tea Shaped the Modern Worl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
¹⁴ 대서양 노예제 폐지의 주요 날짜에 관하여는 Seymour Drescher, Abolition: A History of Slavery and Antislave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¹⁵ 영국 1833년 노예제 폐지법의 보상 조항에 관하여는 Catherine Hall et al., Legacies of British Slave-ownership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¹⁶ 보상금 규모에 관한 통계는 위의 책 서장.
¹⁷ 2015년 채무 완납에 관하여는 2018년 영국 재무부 트윗과 관련 기사: Guardian, "Britain's colonial shame: slave-owners given huge payouts after abolition," 12 February 2018.
¹⁸ 현재 영국 엘리트와 노예주 후손의 연관성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Legacies of British Slavery 프로젝트 (University College London).
¹⁹ William Faulkner, Requiem for a Nun (New York: Random House, 1951), 제1부 제3막: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
²⁰ 콩고 코발트 생산 비율에 관하여는 U.S. Geological Survey,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3.
²¹ 콩고 아동 광부 수 추정은 UNICEF, Children in the Cobalt Supply Chain (2020).
²² John Doe et al. v. Apple, Google, Tesla, Microsoft, Dell,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 지방법원, 2019 (사건 번호 1:19-cv-03737).
²³ Luc Christiaensen and Alexandre Fleury, NORC Final Report: Assessing Progress in Reducing Child Labor in Cocoa Production in Cocoa Growing Areas of Côte d'Ivoire and Ghana (Chicago: NORC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2020).
²⁴ 팜유 산업의 노동 조건에 관하여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여러 보고서. 예: The Great Palm Oil Scandal (2016).
²⁵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노동 조건에 관하여는 ILO Bangladesh Better Work 프로그램 보고서들.
²⁶ 커피 산업의 노동 조건에 관하여는 Oxfam, Mugged: Poverty in Your Coffee Cup (Washington, D.C.: Oxfam America, 2002).
²⁷ 공정 무역 운동의 역사에 관하여는 Laura T. Raynolds, Douglas L. Murray, and John Wilkinson, eds., Fair Trade: The Challenges of Transforming Globalization (London: Routledg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