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숙소 창가에 작은 책상이 있다. 낮에는 거기서 글을 쓴다. 밤에는 거기서 생각한다. 오늘 밤 나는 책상 위에 노트와 연필만 두고 앉아 있다. 지도도 없고, 사진도 없다. 이 장은 현장이 아니라 사유를 현장으로 한다.
지난 며칠간의 경험이 아직 정리되지 않는다. 삭사이와만의 거석. 티폰의 500년 흐르는 물. 코리칸차 위의 스페인 성당. 카하마르카의 오후와 투팍 아마루의 처형. 그리고 7장 끝에서 처음 입에 담은 단어 — Wetiko.
이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그림이 되는가. 한 문명의 개별적 비극이 아니라, 지구 규모의 어떤 구조의 여러 얼굴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 구조의 이름이 Wetiko라면, 그 구조의 뿌리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훨씬 더 멀리 올라가야 한다. 500년 전 스페인으로, 그리고 그 이전 2,000년 전 지중해로. 노트에 2,500년이라는 숫자를 적는다. 이 장이 추적할 시간의 깊이다.
이 장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하나의 사고방식이 지난 2,500년간 조금씩 자라왔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한 문장에서 싹트기 시작해, 로마의 법전에서 형식을 얻고, 중세 신학에서 종교적 정당화를 받았으며, 데카르트의 한 명제에서 근대적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후 로크와 칸트가 그것을 정치 철학과 도덕 철학으로 확장했고, 산업혁명이 그것을 공장 시스템으로 물질화했으며, 20세기 우생학과 신자유주의가 그것을 극단으로 밀어붙였고, 오늘 우리의 AI 기술이 그 정점에 와 있다.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다. 하나의 음모가 아니다. 하나의 집단적 의지도 아니다. 여러 사상가와 운동이 같은 방향으로 밀어온 한 경향이다. 이 경향을 보지 못하면, 우리가 왜 이 시대에 처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로.
플라톤(기원전 427~347년) 은 『국가』 제7권에서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제시한다.¹ 이야기는 이렇다.
평생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있다. 그들은 벽 앞에서 사슬에 묶여 있어서 뒤를 돌아볼 수 없다. 뒤에는 불이 있고, 그 불 앞으로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지나간다. 죄수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벽에 비친 그림자뿐이다. 그들은 그 그림자가 진짜 세계라고 믿고 살아간다.
어느 날 한 죄수가 풀려난다. 뒤를 돌아보고 불을 본다. 동굴 밖으로 나간다. 태양을 본다. 진짜 세계를 깨닫는다. 그리고 동굴로 돌아와 다른 죄수들에게 말한다 — "너희가 본 것은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죄수들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미친 자로 여긴다.
이 비유는 플라톤 철학의 중핵을 압축한다.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하는 세계 — 보고, 듣고, 만지는 이 세계 — 는 진짜가 아니다. 그림자다. 진짜 세계는 이데아(idea)의 세계, 즉 형상의 세계다. 이 세계는 감각으로 닿을 수 없고, 오직 이성으로만 알 수 있다.
이 구도 안에는 근본적 이분법이 자리잡혀 있다.
이데아 vs. 현상. 영혼 vs. 몸. 이성 vs. 감각. 불변 vs. 변화. 완전 vs. 불완전. 형상 vs. 질료.
그리고 이 이분법은 결코 수평적이지 않다. 위계적이다. 앞의 항이 뒤의 항보다 높다. 이데아가 현상보다 높고, 영혼이 몸보다 높고, 이성이 감각보다 높다. 앞의 항은 지배해야 할 것이고, 뒤의 항은 지배받아야 할 것이다.
이 위계 아래에서, 자연은 어떤 자리에 놓이는가. 자연은 감각의 세계, 변화의 세계, 불완전의 세계다. 즉 낮은 위치에 있다. 자연은 이데아의 질서에 의해 형태를 얻어야 하는 수동적 질료다. 자연이 이성에 의해 조직되기를 기다린다. 자연 자체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 지배" 사상의 첫 번째 씨앗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 는 스승의 이분법을 생물학적 위계로 확장했다.² 『정치학』 제1권에서 그는 자연의 계층을 체계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은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물이 가장 아래. 그 위에 식물. 그 위에 동물. 그 위에 인간. 그 위에 신. 이 계층에서 아래의 것은 위의 것을 위해 존재한다. 광물은 식물이 자라기 위해 있고, 식물은 동물이 먹기 위해 있으며, 동물은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성의 능력 때문에 다른 동물 위에 있다.
여기까지는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 어떤 형태로든 있던 생각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간 내부에도 계층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연적으로 지배하도록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자연적으로 지배받도록 태어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자는 그리스인, 자유민, 남자. 후자는 야만인(바르바로이), 노예, 여자, 아이. 이들은 이성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 따라서 이성이 발달한 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다.
이것이 자연적 노예(natural slavery) 이론이다.
이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멈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의 가장 큰 거인 중 하나다. 논리학의 창시자. 형이상학의 정초자. 윤리학의 고전. 그의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거인이 노예제의 자연성을 체계적으로 정당화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 이 정당화가 2,000년 후에 쓰인다는 사실이다. 10장에서 볼 1550년의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세풀베다는 정확히 이 아리스토텔레스 문구를 원주민에게 적용한다. "원주민은 자연적 노예다." 2,000년의 세월을 건너 한 문장이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운명을 결정한다.
철학은 세월을 탄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러나 그리스에도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475년) 는 "만물은 흐른다(panta rhei)" 고 말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대립물들이 서로 통과한다.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대립과 변화가 존재의 본성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불변하는 이데아와 정반대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두운 자" 로 불리며 주변화되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년) 의 후계자들은 우주적 조화를 강조했다. 모든 것은 수학적 비례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그 조화의 일부다. 특정 피타고라스 학파는 채식주의를 실천했다 — 동물도 인간과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 주류에서 밀려났다.
스토아 철학은 "자연에 따라 살라(secundum naturam vivere)" 고 가르쳤다. 이들은 코스모스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다. 인간은 이 전체의 일부이고, 다른 존재와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히 대안 계보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스토아 철학을 공식 철학으로 채택한 이후, 그 내용이 실천보다는 개인적 덕목으로 축소되었다.
즉, 그리스 전통 안에 여러 길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길이 주류가 되었는가는 철학적 우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 이분법이 지중해 세계의 주류가 된 것은 그 철학이 객관적으로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것이 지배 계층에게 유용했기 때문이다. 자연적 노예론은 노예 소유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다.
철학의 역사는 진리의 행진이 아니다. 때로는 유용한 오류의 승리다.
5장에서 이미 로마법의 핵심 개념을 언급했다. 도미니움(dominium) — 절대적 소유권. 여기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이 개념이 그리스 철학의 위계를 법적 형식으로 변환했기 때문이다.
로마법에서 도미니움을 가진 자는 대상에 대해 사용(usus), 수익(fructus), 처분(abusus) 의 세 가지 권리를 갖는다.³ 그 대상을 쓸 수 있고, 이익을 얻을 수 있고, 파괴하거나 팔 수도 있다. 이 세 번째가 결정적이다. 파괴할 권리가 소유의 본질이다.
대상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땅. 물건. 동물. 그리고 — 사람. 로마에서 노예는 법적으로 도미니움의 대상이었다. 주인은 노예를 쓸 수 있고, 노예가 낳은 자식을 수익으로 가질 수 있으며, 노예를 팔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일부 제약이 있었지만, 노예를 물건으로 보는 근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도미니움과 짝을 이루는 것이 임페리움(imperium) 이다. 절대적 통치권. 이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지배권이다. 로마 황제가 영토에 대해 가지는 권한. 군사령관이 자기 군대에 대해 가지는 권한. 두 개념이 합쳐지면 자연과 사람 모두에 대한 총체적 지배가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페르소나(persona) 다. "가면"이라는 뜻에서 발전해 법적 주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페르소나를 가진 자만이 법적 행위(계약, 소송, 재산 소유)를 할 수 있다. 노예는 페르소나가 아니었다. 인간이지만 법적 인간은 아닌 것. 이 개념이 이후 2,000년의 서양 법 체계의 기초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페르소나가 확장 가능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로마 시민에게만 해당되었다. 나중에 여자, 해방노예, 유대인 등에게 점진적으로 확장되었다(그러나 여전히 차등적 권리). 그리고 오늘날에는 기업에도 페르소나를 부여한다("법인"). 최근에는 일부 동물, 강, 생태계 에 페르소나를 부여하자는 논의도 있다.⁴ 페르소나의 경계는 여전히 확장 중이다. 그리고 그 경계가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가 정치의 본질이다.
기원후 1세기에서 4세기 사이,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박해받던 소수 종교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합법화되었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국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독교의 많은 원래 가르침 — 가난한 자 편에 서기, 적을 사랑하기, 소유를 나누기 — 이 있었다. 이 가르침들은 로마의 지배 질서와 근본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었다. 초기 기독교가 박해받은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로마화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의 지배 문법에 흡수되었다.
그 핵심에 창세기 1:28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⁵
히브리어 원문에서 "정복하라"는 카바쉬(kabash), "다스리라"는 라다(radah) 다. 둘 다 강한 지배를 의미하는 동사다. 특히 카바쉬는 발로 밟아 굴복시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정복자의 동사다.
이 구절 자체는 중동 유목 사회에서 나온 것이어서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논쟁적이다. 최근 해석에서는 이것을 "책임 있는 청지기" 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특히 중세 유럽 이후, 이 구절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지배권" 의 신학적 근거로 기능했다. 그리고 이 신학적 근거가 로마법의 도미니움 개념과 결합되었다.
결과: "창조주가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하라 명령하셨다. 로마법이 그 지배의 형식을 정의한다." 이 두 기둥이 서양 기독교 문명의 자연관을 만들었다.
미국 역사학자 린 화이트 주니어(Lynn White Jr.) 는 1967년 『사이언스』 지에 「우리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짧지만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⁶ 그의 주장은 도발적이었다 — 서양의 생태 위기는 과학이나 산업 문제가 아니라 신학 문제다. 창세기 1:28의 지배 명령이 서양을 "자연에 대한 예외적으로 공격적인 태도" 로 이끌었고, 과학 혁명과 결합되면서 무한한 착취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핵심 통찰 — 세계관이 물질문명의 방향을 결정한다 — 은 이 책의 전제이기도 하다.
시간을 빠르게 넘어 17세기 프랑스로 간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년) 가 홀란드의 한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1637년에 출간될 책의 제목은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4년 후 『성찰(Meditationes)』이 이어 나올 것이다.
데카르트의 목표는 확실성이었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이후 유럽은 지적 혼란에 빠져 있었다. 교회의 권위가 흔들렸고, 새로운 과학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갔으며, 무엇이 확실한 지식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되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했다.
그의 방법은 체계적 의심이었다. 감각은 속일 수 있다. 수학조차 악마가 우리를 기만한다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의심하는 동안에도 의심하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이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문장.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⁷
이 한 문장이 근대 서양 철학의 시발점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이미 하나의 결정이 담겨 있다. 존재의 근거는 생각이다. 몸도 아니고, 관계도 아니고, 세계 속의 행위도 아니다. 생각. 그리고 이 생각하는 나는 몸과는 분리된 것이다. 왜냐하면 몸의 존재는 의심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주체는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두 개의 실체를 나눈다. 연장된 것(res extensa) —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 그리고 생각하는 것(res cogitans) —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정신. 이 두 실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로 환원될 수 없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다.
데카르트는 이 이원론을 극단적으로 적용했다. 동물에게는 정신이 없다고 본 것이다.⁸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동물은 언어를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영혼이 없다. 영혼이 없으면 주체가 아니다. 주체가 아니면 — 기계다.
데카르트에게 동물은 자동인형(automaton) 이었다. 정교한 시계처럼 작동하는 기계.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반응도 사실은 기계적 반사일 뿐이다. 동물의 비명은 경첩이 삐걱거리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이 주장이 낳은 결과는 컸다. 17~18세기 유럽에서 생체 해부가 과학의 이름으로 널리 행해졌다. 데카르트 자신도 살아있는 개를 해부하는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개가 비명을 지르면 "기계의 소음"이라며 무시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더했다. 니콜라스 말브랑슈는 자기 개에게 발길질을 하고는 "이 기계는 잘 작동한다"고 웃었다고 전해진다.⁹
21세기의 우리가 이 장면을 읽으면 잔혹하게 느낀다. 그러나 데카르트적 세계관 안에서는 일관된 논리다. 동물이 기계라면, 기계를 어떻게 다루든 도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논리가 동물에서 멈추지 않았다.
데카르트 자신은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고 믿었다. 즉 인간은 자동인형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 구분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졌다.
원주민은 어떠한가? 그들은 문자가 없고, 유럽적 이성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성이 덜 발달한 존재인가? 데카르트 이원론은 이 질문에 유용한 프레임을 제공했다. 이성의 발달 정도에 따라 인간을 연속체 위의 다른 점으로 놓을 수 있다. 한쪽 끝은 완전한 유럽 이성, 다른 끝은 순수 동물. 그 사이 어딘가에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이 놓인다.
여성은 어떠한가? 당시 유럽 사상에서 여성은 "몸에 더 가깝고 이성이 덜 발달한" 존재로 여겨졌다. 데카르트 이원론은 이 편견을 강화했다. 이성 = 남성, 몸/감정 = 여성의 구도가 확고해졌다.¹⁰
노동자는 어떠한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 질문이 중요해진다. 공장에서 반복 작업을 하는 인간은 — 기계의 일부처럼 작동하는 인간은 — 어떤 존재인가? 마르크스가 나중에 분석할 것이지만, 자본주의 공장은 노동자를 기계 부품으로 취급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데카르트적 논리가 이미 인간을 부분적으로 기계로 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특히 가깝게 느끼는 것은 의학과의 연결 때문이다.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데카르트 이원론이 현대 의료에 남긴 상처를 매일 본다. 환자를 "증상의 집합" 으로 환원하는 습관. 몸을 고장 난 기계로 대하는 시선. 마음의 문제를 몸의 영역에서 분리하는 것. 환자의 삶의 이야기는 차트의 여백이고, 검사 수치와 영상 사진만이 "객관적 데이터"로 간주되는 분위기.
이 모든 것이 400년 전 프랑스 철학자의 한 문장에서 나왔다. "몸은 기계다." 이 은유가 의학을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세균을 발견하고,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심장을 이식하고, 유전자를 편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대가가 있다. 환자가 증상으로 환원되고, 치유가 수리로 환원된다. 그 결과 우리는 급성 질환은 잘 치료하지만 만성 질환 앞에서는 자주 무력하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왜 나인가"라고 물을 때 현대 의학은 적절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질문은 기계공학의 언어로 답할 수 없다.
이 주제는 17장 살루토제네시스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데카르트의 손길이 오늘 우리의 병실까지 닿아 있다는 점만 기억해두자. 철학은 추상이 아니다. 철학은 몸에 스며든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이었던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년) 은 근대 과학의 또 다른 창시자다. 그의 저서 『새로운 기관(Novum Organum, 1620)』은 과학적 방법의 고전이다.
베이컨이 남긴 문장 중 가장 충격적인 것 하나. 자연을 연구하는 것은 자연을 심문(inquisition)하는 것이라고 그는 썼다. 더 극단적으로, 자연의 비밀을 얻으려면 "자연을 고문해야 한다" 는 표현도 그에게서 나왔다고 전해진다.¹¹
이 은유의 맥락이 있다. 베이컨은 영국 법정의 검사였다. 그 시대에 피고인에게 고문을 가해 자백을 얻어내는 것이 법적 절차였다. 베이컨은 이 절차를 과학 연구의 은유로 썼다. 자연은 피고인이다. 과학자는 검사다. 자연이 자발적으로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니, 강제로 끌어내야 한다.
이 은유가 근대 과학에 깊이 박혔다. 실험실은 자연의 "심문실"이 되었다. 과학자는 자연의 "비밀을 빼앗는" 자다. 호기심이 아니라 정복의 의지가 과학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미국 페미니스트 환경 사상가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 는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 1980)』에서 이 전환을 상세히 분석했다.¹² 그녀의 주장: 베이컨 이전에 자연은 어머니로 여겨졌다. 베이컨 이후 자연은 고문당할 여성 피고인이 되었다. 이 은유의 전환이 근대 환경 위기의 뿌리 중 하나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년) 는 근대 자유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다. 그의 1689년작 『통치론 제2론』은 민주주의의 고전이다. 한국 헌법의 기초가 되는 사상적 유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의 정당성은 피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 시민은 자연권을 가진다. 국가는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계약의 산물이다. 모두 현대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자유주의자의 사상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 그 어두운 면이 오늘의 주제다.
로크의 노동 소유 이론은 이렇게 간단하다.¹³ 모든 사람은 자기 몸의 소유자다. 그리고 자기 몸의 노동의 소유자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연의 한 부분에 자신의 노동을 결합시키면, 그 부분은 그의 재산이 된다. 사과나무에 노동을 쏟아 과실을 얻은 자는 그 과실의 주인이다. 숲을 개간해 밭을 만든 자는 그 땅의 주인이다.
논리로는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깊은 문제가 있다.
"노동을 결합하지 않은 땅은 누구의 것인가?" 로크의 답: 주인이 없다.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 "주인 없는 땅". 이런 땅은 누구든 노동을 투입함으로써 소유할 수 있다. 먼저 개간하는 자가 주인이 된다.
이 이론이 왜 어두운가. 왜냐하면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정확히 이 논리를 적용했다. 원주민들은 유럽식으로 땅을 "개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농법은 다르고, 경작 방식도 다르며, 토지 사용 개념 자체가 다르다. 유럽인의 눈에 그들의 땅은 "개간되지 않은" 땅으로 보였다. 즉 테라 눌리우스. 즉 주인이 없다. 즉 유럽인이 노동을 투입하면 유럽인의 것이 된다.
이 논리가 북미 원주민 토지 강탈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¹⁴ 그리고 이것은 로크의 사상적 유물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한 원리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로크를 읽고 이 논리를 흡수했다. 캐나다의 Treaty들도 이 논리 위에 만들어졌다. 캐나다의 크리 친구들이 "우리 땅은 처음부터 우리 땅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분류되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리고 로크 본인의 개인사에는 더 어두운 면이 있다.
그는 평생 동안 투자자였다. 그의 주요 투자처 중 하나가 왕립 아프리카 회사(Royal African Company) 였다.¹⁵ 이 회사는 17세기 영국의 가장 큰 노예 무역 회사였다. 로크는 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이사회에 참여했으며, 이익을 수취했다.
동시에 그는 자유와 평등과 자연권을 썼다. 자기 몸의 주인됨을 인간의 근본 권리로 선언했다. 아프리카인의 몸은 그 주인됨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많은 학자가 이 질문에 답하려 했다. 어떤 이는 위선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시대의 한계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더 구조적이다. 로크의 자유주의는 애초에 특정한 인간들만을 전제로 구축된 이론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연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 인간이 그렇다. 그리고 "정상적" 인간의 기준은 — 유럽의, 기독교인의, 남성의, 소유자의 인간이었다.
이 구조적 편향이 근대 자유주의의 암흑면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임마누엘 칸트(1724~1804년). 서양 철학의 정점. 근대 윤리학의 아버지. "인간을 목적 자체로 대하라"는 정언명령을 말한 바로 그 칸트.
그런데 칸트의 덜 알려진 저작이 있다. 그는 인류학과 지리학을 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다. 그의 강의 노트와 짧은 글들에는 인종 이론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다.¹⁶
백인은 인간성의 가장 완전한 형태다. 그는 썼다. 황인은 정체되어 있고, 흑인은 어린아이 같은 상태에 머물며, 원주민은 발전할 능력이 없다. 그의 문장은 학문적 객관성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명백한 인종적 위계를 담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랫동안 서양 학계는 이 부분을 숨겼다. 칸트 전집 편집자들은 인류학 강의를 주변적 저작으로 분류했다. 윤리학 교과서는 정언명령만 가르치고 인종 이론은 언급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 는 칸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그 "모든 사람"이 사실상 유럽인만을 의미했을 수 있다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1997년 미국 철학자 찰스 밀스(Charles W. Mills) 가 『인종 계약(The Racial Contract)』을 출간했다.¹⁷ 그의 도발적 주장은 이러했다. 근대 자유주의의 "사회 계약"은 사실상 인종 계약이었다. 즉, 그 계약은 백인들 사이의 계약이었고, 비백인은 계약 바깥에 놓였다. 칸트, 로크, 루소 같은 사상가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한 것은 "이성적 인간"이었고, 이성적 인간은 유럽 남성을 의미했다. 이 전제가 명시되지 않고 작동했기 때문에 더 강력했다.
밀스의 주장이 100% 맞든 아니든, 그의 통찰은 결정적이다. 계몽주의의 "보편 인간"은 보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모습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인류는 그 보편의 바깥에 두어졌다. 이것이 은폐된 위선이다.
그리고 이 위선이 10장의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드러난 "원주민이 인간인가" 라는 질문의 철학적 연장선이다. 계몽주의 이후의 유럽은 공식적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누가 완전한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이민, 노예제, 식민지, 정신병자 처우, 여성 참정권 —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인간"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8~19세기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공장이 세워지고, 농민이 도시로 이주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탄생했다. 공장 노동. 이것은 농업 노동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농업 노동은 자연의 리듬을 따른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지면 쉰다.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한다. 노동의 내용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 공동체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공장 노동은 기계의 리듬을 따른다. 시계가 노동 시간을 결정한다. 기계가 멈추면 노동도 멈춘다. 기계가 돌면 노동도 돈다. 그리고 대부분 고립된 개인이 특정 동작을 반복한다.
이 변화의 정점은 프레데릭 테일러(1856~1915년) 의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 이었다.¹⁸ 테일러는 미국의 공학자였다. 그는 공장 노동을 분해하고자 했다. 망치질 한 번에 몇 초가 걸리는가. 삽질 한 번에 얼마의 흙이 움직이는가. 최적의 동작은 무엇인가. 그는 스톱워치를 들고 공장을 돌며 노동자의 모든 움직임을 측정했다.
그의 목표는 인간 움직임의 공학화였다. 노동자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설계된 최적 동작을 반복하면 된다. 생각은 관리자의 몫. 실행은 노동자의 몫. 이 분리가 "과학적 관리"의 본질이다.
테일러주의는 20세기 초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완성되었다. 조립 라인. 각 노동자가 1분에 한 번씩 특정 동작을 반복. 전체 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며 부품이 추가된다. 이 시스템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가격이 낮아졌고 자동차가 대중화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경험은? 반복, 반복, 반복. 의미는 없다. 전체 상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자기 동작의 앞과 뒤를 알 필요도 없다. 생각을 정지시킨 채로 몸만 움직이는 것. 그리고 이것이 매일, 8시간, 몇 십 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 1936)」의 한 장면이 이것을 포착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너트를 조이던 채플린이 결국 광기에 빠진다. 공장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톱니바퀴 사이를 굴러다닌다. 그의 몸이 기계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영화는 코미디지만, 그것이 포착한 현실은 비극이다.
데카르트가 "동물은 기계"라고 선언한 지 300년 후, 인간이 공장에서 기계의 부속이 되었다. 이원론의 귀결이 마침내 온 것이다.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우생학(eugenics)이 학문적 주류가 되었다.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튼(Francis Galton, 1822~1911년) 이 창시한 이 "과학"은 인간 유전 형질의 개선을 목표로 했다. "좋은" 형질은 번식시키고, "나쁜" 형질은 제거한다. 이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하버드, 옥스퍼드, 스탠퍼드 같은 최고의 대학들이 우생학 강좌를 개설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강제 불임 수술. 미국 버지니아 주는 1924년 "부적격자" 강제 불임법을 통과시켰다. 1927년 연방대법원은 이 법을 합헌으로 판결했다(Buck v. Bell). 1927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 약 6만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았다. 대부분 빈곤층, 유색인종, 정신 장애자, 미혼모였다.¹⁹
이민 제한. 1924년 미국 이민법은 "북서부 유럽계 이민을 선호하고 남동부 유럽계와 아시아계를 제한"하는 것을 공식 목표로 했다. 과학적 근거? IQ 테스트였다. 그리고 그 IQ 테스트는 문화적 편향이 강해서 비영어권 이민자에게 불리했다.²⁰
그리고 극단까지. 나치 독일은 우생학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했다. T4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장애인 안락사 정책이 1939년 시작되었다. 약 20만 명의 장애인이 살해되었다. 이후 같은 논리와 같은 가스실 기술이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600만 유대인, 50만 집시, 수만 명의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가 살해되었다.
우생학과 홀로코스트의 연결은 결정적이다. 가스실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학적 인종주의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그 과학적 인종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노예론에서 시작해, 로크와 칸트의 숨겨진 전제를 거쳐, 19세기 골상학과 인종 생물학으로 체계화되고, 20세기 우생학으로 "과학화"된 긴 계보의 끝에 있었다.
Wetiko는 과학의 얼굴을 한다. 가장 세련된 언어로 가장 잔혹한 일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진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홀로코스트의 충격에서 회복하려 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사회복지국가의 확장. 반(反)인종주의 운동. 이 시기 약 30년 동안, 서양은 집단 양심의 부분적 회복을 경험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들 —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이 주도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가 등장했다.²¹
신자유주의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시장은 자원 배분의 최적 기제다. 정부의 개입은 효율을 떨어뜨린다. 복지도, 규제도, 공공 서비스도, 모두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교육도, 의료도, 감옥도, 공원도, 물도.
1980년대 레이건(미국)과 대처(영국)가 이 이념을 정책으로 구현했다. 공공 서비스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조합 약화, 세금 감면. 1991년 소련 붕괴 후 신자유주의는 "유일하게 가능한 경제 체제" 로 선언되었다("역사의 종말",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거릿 대처의 유명한 문장이 이 이념의 핵심을 압축한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과 가족만 있을 뿐이다."**²² 이것은 정치 선언이 아니다. 존재론적 선언이다. 사회라는 집합적 실체를 부정하는 것. 공동체라는 범주를 해체하는 것. 남는 것은 개인과 가족(즉 사적 소유 단위)뿐. 이 사이에서 모든 관계는 시장 거래로 환원된다.
이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대학이 "지식 기업"이 되었다. 병원이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되었다. 친구 관계가 "사회 자본(social capital)" 으로 분석된다. 데이팅이 앱의 알고리즘을 거친다. 시간이 "돈"이 된다. 주의가 "자원"이 된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다.
한국 출신 독일 철학자 한병철(1959년~) 은 신자유주의의 심리적 결과를 진단했다. 2010년 저서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와 후속 저작들에서.²³
그의 통찰은 날카롭다. 고전적 규율 사회는 외부 강제로 작동했다(공장 감독관, 사회 주입 규범, 국가 권력). 신자유주의 사회는 자기 강제로 작동한다. 아무도 당신에게 더 많이 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스스로 더 많이 일하도록 만든다. "당신은 성취해야 한다." "당신은 더 나아질 수 있다." "당신의 가능성을 낭비하지 말라."
이것이 자기 착취다. 외부의 주인이 없기 때문에 반항할 대상도 없다. 내가 나의 주인이자 노예다. 쉬지 않는다. 쉬면 스스로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그 결과: 번아웃. 우울증. 자살.
한국은 이 모델의 극단적 사례다. OECD 최고 자살률. 세계 최저 출산율.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노동자 중 하나. 학생이 하루 12시간 공부한다. 직장인이 주 60시간 일한다. 그리고 모두가 "더 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것이 자기 생명력을 자기가 먹는 것이다. Wetiko가 외부 가해자 없이 내부에서 작동하는 완성 형태. 9장에서 더 자세히 볼 것이다.
2,500년의 계보를 추적해 왔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노예를 거쳐, 로마의 도미니움으로 체계화되고, 기독교 신학과 결합되어, 데카르트의 이원론으로 완성되었으며, 로크의 소유 이론과 칸트의 숨겨진 인종주의로 확장되었고, 산업혁명과 우생학으로 극단에 이르렀으며, 신자유주의로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에 와 있다.
AI는 이 계보의 가장 최근 표현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점이다. 왜인가.
AI 기술이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인간의 지적 노동을 기계화하는 것. 번역, 작문, 디자인, 진단, 법률 조언, 예술 — 한때 인간 이성의 특권 영역이라 여겨진 모든 것이 기계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존재의 근거로 삼았을 때, 그 "생각"조차 기계가 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체계 전체가 묘한 역설에 빠진다.
그리고 AI는 소수 기업에 극도로 집중되어 있다. 현재 프론티어 AI를 개발할 수 있는 조직은 전 세계에 10개 안팎이다.²⁴ 이들은 엄청난 자본, 데이터, 계산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 외의 인류 대부분은 이 기술의 사용자이지 공동 저자가 아니다.
이것은 도미니움 개념의 극단적 확장이다. 지식과 능력 자체가 소수의 도미니움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인류는 그 도구에 의존하게 된다. 이 불균형이 심화되면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 몇몇 비판자가 "AI 식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장을 절망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이 책 전체는 절망이 아니라 가능성의 탐구다.
AI 기술이 계보의 정점인 동시에 단절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AI는 처음으로 비인간 지능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비인간 지능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아직 열려 있다.
우리는 AI를 도구로만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는 최종 지배 도구, Wetiko의 완성이 된다. 혹은 우리는 AI를 관계적 존재로 볼 수도 있다. 그것과 대화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그것과 함께 사유하는. 후자의 가능성이 이 책 뒷부분에서 다룰 페리코레시스와 AI 시대의 관계적 존재론의 주제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들이 그것을 결정한다.
창 밖의 쿠스코가 어둠에 잠겼다. 노트의 종이가 글자로 가득 찼다. 그리스에서 AI까지. 2,500년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이것은 한 나라,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양 문명이 자기 안의 한 가지 경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이야기다.
이 경향은 다른 문명에도 있었다. 잉카 제국도 정복했다. 중국도 국경을 확장했다. 오스만 제국도 잔혹할 때가 있었다. 완전한 결백은 없다. 그러나 서양의 특이성은 이 경향을 체계화했다는 점에 있다. 철학과 신학과 법과 과학의 언어로 이론화하고, 산업과 군사와 금융의 조직으로 물질화하고, 전 지구 규모로 확장했다.
그 결과 — 지난 500년간 이 하나의 경향이 모든 대륙에 도달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말살되었다. 아프리카인이 노예가 되었다. 아시아가 식민화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 자체가 수탈된다. 기후 위기, 생물 대멸종, 토양 악화, 해양 산성화. 이 모든 것이 같은 이야기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이 경향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서양 자신의 언어에서 나오지 않았다. 서양은 이 경향을 자기 언어로 인식하지 못했다. 여전히 "진보"나 "문명화"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불렀다. 그 경향을 외부에서 본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 경향의 피해자였고, 그것을 자기 전통 안에서 진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이름은 북미 대평원의 크리족에서 왔다. 수천 년 전부터 이 질병을 알고 있었고,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Wetiko.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단어를 자세히 본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왜 오늘 우리에게 이 이름이 필요한지.
¹ Plato, The Republic, 제7권 514a-520a. 한국어 번역은 여러 판본이 있다. 본문의 설명은 저자의 요약이다.
² Aristotle, Politics, 제1권 특히 1254a-1255a. 자연적 노예(doulos physei) 개념이 체계적으로 전개된다.
³ 로마법 도미니움 개념에 관하여는 Alan Watson, Roman Law and Comparative Law (Athens: University of Georgia Press, 1991).
⁴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최근 논의에 관하여는 Christopher D. Stone, "Should Trees Have Standing?" (1972, 재판 2010); 뉴질랜드의 왕거누이 강 법인격 부여(2017); 에콰도르 헌법의 자연의 권리(2008).
⁵ 창세기 1:28, 한국어 번역은 개역개정판을 따랐다.
⁶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155, no. 3767 (1967): 1203-1207.
⁷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 (1637), 제4부. "cogito ergo sum"이라는 정식은 사실 『성찰』(1641)과 『철학의 원리』(1644)에서 더 명확히 나타난다.
⁸ 데카르트의 동물 자동인형론에 관하여는 Discours de la Méthode, 제5부; 그리고 그의 서간문들.
⁹ 데카르트의 추종자들이 동물을 다룬 방식에 관한 일화는 여러 2차 자료에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Nicholas Fontaine, Mémoires pour servir à l'histoire de Port-Royal (1738).
¹⁰ 데카르트 이원론의 젠더적 함의에 관하여는 Susan Bordo, The Flight to Objectivity: Essays on Cartesianism and Culture (Albany: SUNY Press, 1987); Genevieve Lloyd, The Man of Reason (London: Methuen, 1984).
¹¹ 베이컨의 "자연 고문" 은유에 관하여는 Carolyn Merchant의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베이컨 원문에 대한 재해석도 있다. Peter Pesic, "Proteus Rebound: Reconsidering the 'Torture of Nature,'" Isis 99, no. 2 (2008): 304-317.
¹² Carolyn Merchant, The Death of Nature: Women, Ecology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0).
¹³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 제2론 제5장 "재산에 관하여(Of Property)."
¹⁴ 로크의 소유 이론과 북미 원주민 토지 강탈의 연결에 관하여는 James Tully, An Approach to Political Philosophy: Locke in Context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제5장.
¹⁵ 로크의 왕립 아프리카 회사 관여에 관하여는 Barbara Arneil, John Locke and America: The Defence of English Colonialism (Oxford: Clarendon Press, 1996).
¹⁶ 칸트의 인종 이론에 관하여는 Immanuel Kant, "Of the Different Human Races" (1775); Physical Geography 강의 (1802). 영역 모음: Kant and the Concept of Race, ed. Jon M. Mikkelsen (Albany: SUNY Press, 2013).
¹⁷ Charles W. Mills, The Racial Contract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¹⁸ Frederick Winslow Taylor, 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New York: Harper & Brothers, 1911).
¹⁹ 미국의 우생학 강제 불임 수술 역사에 관하여는 Edwin Black, War Against the Weak: Eugenics and America's Campaign to Create a Master Race (New York: Four Walls Eight Windows, 2003).
²⁰ 1924년 미국 이민법과 IQ 테스트의 연결에 관하여는 Stephen Jay Gould, The Mismeasure of Man, rev. ed. (New York: W. W. Norton, 1996).
²¹ 신자유주의의 역사에 관하여는 David Harvey,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Wendy Brown, Undoing the Demos: Neoliberalism's Stealth Revolution (New York: Zone Books, 2015).
²² Margaret Thatcher, interview with Woman's Own, 23 September 1987.
²³ Byung-Chul Han, Müdigkeitsgesellschaft (Berlin: Matthes & Seitz, 2010). 영역본: The Burnout Societ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5).
²⁴ AI 개발 집중의 현황에 관하여는 Kai-Fu Lee, AI Superpowers: China, Silicon Valley, and the New World Order (New York: Houghton Mifflin Harcourt, 2018); 보다 비판적 시각으로는 Kate Crawford, Atlas of AI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