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물 위에 세운 문명 — 잉카의 핵심 철학

도입: 피삭을 내려오다

아침 일찍, 어제 삭사이와만에서 만난 가이드의 차에 탔다. 그가 운전했다. 쿠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30킬로미터.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입구의 작은 마을 피삭(Písac). 한 시간 남짓의 거리.

"보통 관광객은 어떻게 옵니까?" 내가 물었다. "콜렉티보로 마을까지 와서 걸어 올라갑니다. 수직으로 600미터를요. 힘들죠." 그가 웃었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갑시다. 택시로 유적지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걸어 내려오는 겁니다. 그래야 피삭 전체를 제대로 봅니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 현지 택시 한 대를 잡았다. 산 뒤쪽으로 굽이치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정상 근처까지 올라갔다. 20분의 드라이브.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내 앞에 피삭 유적지 전체가 펼쳐졌다. 그리고 —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것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 유적을 지나갈 뿐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 산 능선을 따라 잉카 트레일을 몸으로 밟으며 유적의 구조가 서서히 드러난다. 고대 잉카 순례자가 이 길을 걸었을 방식으로.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 능선에서 능선으로, 테라스에서 테라스로, 마을 쪽 아래로 내려간다.

가이드가 앞서 걸었다. 중요한 지점마다 멈춰서 설명했다. 그의 페루 스페인어와 내 불완전한 케추아어·영어가 섞여, 구조를 이해하는 언어가 생겼다.

위에서 본 피삭

정상 근처에서 뒤를 돌아보면 성스러운 계곡 전체가 발아래 있다. 우루밤바 강이 계곡 중앙을 지나가고, 양쪽으로 작은 마을들이 점점이 박혀 있으며, 그 뒤로는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설산들이 지평선을 채운다. 찬란한 풍경.

그런데 이 풍경에서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산도 강도 마을도 아니었다. 물줄기였다. 계곡을 지나는 우루밤바 강. 산에서 내려오는 여러 지류. 그리고 특히 — 피삭 유적 자체를 관통하는 여러 가닥의 수로. 물이 산 위쪽 샘에서 나와, 각 테라스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 내려와 계곡에 합류한다. 이 수로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피삭이 왜 이 자리에 세워졌는지 갑자기 이해되었다.

피삭은 계단식 도시가 아니다. 피삭은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도록 설계된 건축이다.

가이드가 확인해주었다. "이 산에는 위쪽에 샘이 여러 개 있습니다. 물이 거기서 시작해서 유적 전체를 통과합니다. 그리고 —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양이 흐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오얀타이탐보에서 들은 설명과 같았다. 성스러운 물이 유적 전체를 관통한다는.

내려오며 보는 것

내려오면서 테라스를 하나씩 통과한다. 각 테라스는 — 폭이 좁은 것은 5미터, 넓은 것은 15미터. 높이는 위로 갈수록 한 단이 2미터, 3미터로 올라간다. 수직 벽은 잉카 석조 기법으로 다듬어졌다. 이음새가 깔끔하다. 각 테라스의 땅은 살짝 기울어져 있어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만 고이지는 않는다. 500년이 지나도 흙이 씻겨 내려가지 않는 구조다.

계단식 농경지의 규모가 놀랍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하학 패턴이다. 곡선과 직선이 섞여 있고, 구역마다 모양이 다르다. 어떤 구역은 원형, 어떤 구역은 부채꼴, 어떤 구역은 긴 띠. 왜 이렇게 형태가 다를까. 각 구역이 서로 다른 미기후 를 가지기 때문이다. 고도가 다르면 온도가 다르고, 태양 각도가 다르면 일조 시간이 다르며, 바람 방향이 다르면 증발 속도가 다르다. 잉카 농부는 이 모든 차이를 인식하고, 각 구역에 맞는 작물을 재배했다. 2장에서 본 모라이의 원리와 같다. 피삭은 모라이의 실용 버전이다.

이 장은 이 하강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1부의 앞선 세 장이 잉카 문명의 여러 얼굴을 보았다면 — 건축과 기술, 지적 성취, 수력 공학 — 이 장은 그 모든 얼굴을 꿰는 하나의 철학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철학의 중심에, 언제나, 이 있다.

야쿠 — 존재로서의 물

대명사의 문제

케추아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 대명사 체계다. 케추아어에는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의 구분이 영어처럼 뚜렷하지 않다.¹ 더 정확히 말하면, 많은 대상이 사람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산, 강, 호수, 돌, 나무, 태양, 달. 이들을 지칭할 때 쓰이는 문법적 형태가 사람에게 쓰이는 것과 가깝다.

영어를 쓰는 여행자가 케추아 할머니에게 "저 강이 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그 분이 어디서 온다"는 식으로 답한다. 강이 "그것(it)"이 아니라 "그 분(she/he)"이다. 이것은 할머니의 영어 서투름이 아니다. 할머니의 세계관이다. 강은 살아있는 존재다. 이름이 있고, 성격이 있고, 기분이 있다. 오늘은 잔잔하고 내일은 사납다. 어느 해에는 풍성하고 어느 해에는 야위다. 사람과 같다.

이 중심에 야쿠(yaku) 가 있다.

야쿠는 보통 "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번역은 정확하지 않다. 야쿠는 물이 되기 이전의 원리다. 또는 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 솟아나는 물, 비로 내리는 물, 증발해 구름이 되는 물, 그리고 — 몸 안을 도는 체액 까지 — 이 모든 것이 야쿠다. 각각 다른 모습이지만, 본질은 하나의 존재의 여러 얼굴이다.

이 개념을 정확히 옮길 영어 단어가 없다. 어떤 연구자들은 "living water" 라고 번역한다. 다른 이들은 "water-being" 또는 "water-person" 이라고 한다. 모두 부분적이다. 야쿠는 "물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인 무언가" 이다.²

야쿠와 마마코차

야쿠의 어머니는 마마코차(Mamaqucha) 다. "바다의 어머니" 라는 뜻. 모든 물은 바다에서 왔고, 바다로 돌아간다. 그 사이의 긴 여정 — 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로 내리고, 빗물이 산 개울이 되고, 개울이 강이 되고, 강이 바다에 도달하는 — 이 야쿠의 생애다.

이 순환 인식은 매우 정확한 기상학적·수문학적 모델이다. 현대 지구과학이 발견한 물의 순환(hydrological cycle)을 잉카인들은 신화적 언어로 알고 있었다. 마마코차는 증발이고, 야쿠는 비와 강이며, 다시 마마코차로의 귀환이 바다로의 유입이다.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물을 가둘 필요가 없었다. 물은 떠나도 돌아온다. 우리 몸을 통과해도, 우리 도시를 통과해도, 결국 돌아온다. 모든 물은 잠시 빌리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 철학이 5장에서 본 대비의 잉카 쪽 반을 구성한다. 로마가 도미니움(소유)의 언어로 물을 대했다면, 잉카는 야쿠(존재)의 언어로 물을 대했다. 하수도가 있을 수 없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물은 버릴 수 없다. 버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야쿠의 본성과 모순된다.

아푸와 마이유

물 주변에는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도 있다. 산은 아푸(Apu) 다. 강은 마이유(Mayu) 다. 호수는 코차(Qucha) . 샘은 푸키오(puquio) 또는 파카리나(paqarina) .

각각이 고유명을 가진다. 쿠스코 근처의 아푸 아우상가테(Ausangate), 아푸 살칸타이(Salkantay), 아푸 피추(Picchu). 이 산들은 지형의 일부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매년 제물이 바쳐지고, 특정한 날에는 의식이 열린다. 크리스천들이 성인에게 기도하듯, 안데스 주민들은 자기 "아푸의 자녀" 임을 선언하며 산신에게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이 잉카 이전부터 있었고, 스페인 정복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7장에서 쿠스코 화파의 성모 마리아가 파차마마와 겹쳐진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을 보았다. 성 이시도르(Saint Isidore, 농민의 성인)가 안데스에서는 아푸와 혼합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여러 지역적 화신(예: 코파카바나의 성모, 카라바요의 성모 등)이 실은 지역 파차마마의 교회적 형태다. 카톨릭의 외피 아래 잉카의 살아있는 세계가 지속되고 있다.

의학자의 이상한 공명

이 야쿠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의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이상한 공명을 느낀다.

현대 의학이 인체를 이해하는 방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용히 변화해왔다. 20세기 의학은 기관을 분리된 시스템으로 보았다. 심장, 폐, 간, 신장, 뇌. 각각이 독립적으로 기능한다는 모델. 의사들은 전문의로 나뉘어 각자의 기관을 다룬다.

그런데 21세기 의학은 점점 시스템 생물학으로 옮겨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장-뇌 축(gut-brain axis). 만성 염증이 거의 모든 질병의 공통 기반이라는 발견. 수면-각성 리듬이 면역계와 결합한다는 것. 몸 전체가 하나의 순환적 유기체라는 시각이 서서히 주류가 되고 있다.

이 전환의 언어는 어디서 오는가. 서양 의학 전통 안에는 이 언어가 부족하다. 그것은 동양 의학(기의 순환), 원주민 전통(몸과 땅의 상호성), 생태학(생명계의 순환) 같은 전통에서 빌려와야 한다.

그리고 — 잉카의 야쿠 개념은 이 언어에 놀랍도록 가깝다. 물이 단일하지만 다양한 얼굴로 존재한다는 개념. 한 얼굴의 변화가 다른 얼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전체가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 몸 안의 체액과 몸 밖의 강이 같은 원리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17장 살루토제네시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이 연결은 우연이 아니다. 같은 지혜가 여러 전통에서 독립적으로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계의 실제 구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세케 시스템 — 보이지 않는 성스러운 선

41개의 선

피삭에서 내려온 다음 날, 나는 쿠스코 시내의 서점에서 한 책을 발견했다. 제넷 셔본디(Jeanette Sherbondy) 의 박사학위 논문에 기반한 책.³ 제목은 『한난 쿠스코의 수로 시스템(The Canal Systems of Hanan Cuzco)』. 셔본디는 20세기 후반 미국 인류학자로, 20년 넘게 쿠스코 지역 수로의 문화적 의미를 연구했다. 그녀의 책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 쿠스코는 그 자체가 거대한 야쿠의 도시라는 사실이었다.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은 잉카 쿠스코에 "세케(ceque) 시스템" 이라 불리는 기묘한 종교적 지리 체계가 있었다고 기록했다.⁴ 세케는 케추아어로 "선(line)" 이라는 뜻이다. 이 시스템은 이렇게 작동했다.

쿠스코 중심의 코리칸차(태양의 신전)를 중심으로 41개의 보이지 않는 선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각 선은 쿠스코 근처의 성스러운 지점들, 즉 와카(huaca) 를 연결한다. 와카는 샘, 바위, 언덕, 동굴, 나무, 또는 특정한 지점 — 잉카 종교에서 영적 의미를 가진 모든 장소. 41개의 선을 따라 총 328개의 와카가 기록되어 있다.⁵

연대기 작가들은 이것을 복잡한 점성 체계로 보았다. 각 선은 특정 귀족 가문(파나카)에 속하고, 가문들은 매일 순서대로 자기들의 와카에 제물을 바친다. 이것이 하나의 의례 달력으로 기능했다.

20세기 학자들은 이 체계의 의미를 풀려고 노력했다. 천문학적 정렬이라는 주장, 족보적 기호라는 주장, 사회 계급 체계의 반영이라는 주장. 모두 부분적이었다.

셔본디의 통찰은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328개 와카 중 압도적 다수가 샘·수로·물과 관련된 장소라는 것을 발견했다. 328개 중 약 3분의 2 이상이다. 즉 세케 시스템은 의례 달력이자 족보 체계이자 동시에 쿠스코의 수자원 관리 지도였다.⁶

쿠스코 주변의 모든 주요 샘과 수로가 세케 선 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코리칸차에서 각 샘까지의 경로가 공식적 의미를 가진 "선"이었다. 그 선을 따라 매일 의식이 이루어졌다. 의식에 참여한 가문들이 그 샘들의 관리 책임을 졌다. 즉 세케는 종교와 수문학의 통합이었다.

파카리나 — 조상의 샘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세케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와카들 — 코리칸차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성스럽고, 가장 많은 제물을 받은 와카들 — 은 파카리나(paqarina) 였다.

파카리나는 특정 귀족 가문의 기원 신화와 연결된 샘이다.⁷ 잉카 신앙에서, 한 가문은 특정 샘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신화적 의미에서. 첫 조상이 그 샘에서 나왔다. 따라서 가문의 혈통은 그 샘과 생물학적 결합 상태에 있다. 그 샘이 마르면 가문이 쇠락한다. 그 샘이 더러워지면 가문이 병든다. 그 샘을 보호하는 것이 가문의 생존 자체다.

셔본디는 이것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생태학적 지혜의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았다. 잉카 귀족 가문들이 특정 샘에 감정적·법적·종교적 유대를 가지게 만드는 이 체계는, 실제로 수자원의 장기 보전을 가능케 했다. 샘을 훼손하는 것이 조상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샘은 보호되었다. 신성함이 환경 윤리로 작동한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현대의 환경 보호 정책이 실패하는 지점 중 하나가 정서적·영적 유대의 부재다. 법으로 숲을 보호해도, 사람들이 그 숲에 아무런 정서적 관계가 없으면 법은 쉽게 무너진다. 반면 한 가문의 조상이 나온 샘이라면 — 법이 없어도 보호된다. 신성함이 합법성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세케의 현대적 공명

세케 시스템은 스페인 정복 후 공식적으로 파괴되었다. 1570년대 톨레도 총독의 우상 근절 운동에서 주요 와카들이 체계적으로 제거되었다. 파카리나 샘들이 교회로 덮였다. 선들을 따라 이루어진 의식들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지리는 남았다. 쿠스코 주변의 샘들은 여전히 거기 있다. 강들도 거기 있다. 그리고 안데스 농민 공동체의 기억 속에 — 일부 가문 구성원들의 개인적 기억 속에 — 어느 샘이 어느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는지의 단편적 기억이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페루의 일부 농촌 지역에서 세케 부활 운동이 있었다. 잊혀진 파카리나를 되찾고, 그것을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하려는 노력.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실패했다. 그러나 잉카의 영적 지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돌과 샘은 500년이 지나도 남아 있다.

이 장의 앞 장(3장)에서 나는 티폰의 물이 500년째 흐른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본다. 잉카 수력 공학이 500년을 견딘 것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아래에 영적 지리가 있었다. 셔본디의 세케 연구가 드러낸 것은 이것이다. 물리적 수로와 영적 지도가 동일한 시스템의 두 얼굴이었다는 것.

피삭 — 물 위의 도시

이제 피삭으로 돌아온다.

네 구역

피삭 유적은 네 개의 주요 구역으로 나뉜다.⁸ 각 구역이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했고, 모두 하나의 물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티와타나(Intihuatana) 구역. 정상 부근, 종교의 중심. "태양을 묶는 돌"이 있는 곳. 마추픽추의 인티와타나와 기능은 같지만, 피삭의 것은 훨씬 정교한 배치를 가지고 있다. 주변에 반원형의 석조 건축물이 둘러싸고, 그 안에 다양한 의식 공간이 있다. 여기서 의식용 물이 시작된다. 산 위쪽의 샘에서 끌어온 물이 첫 번째로 이 의식 공간을 거친다.

퀴차 라키(Q'allaqasa) 구역. 군사 요새. 절벽 위에 지어져 성스러운 계곡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여기는 실용적 물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사실 이곳의 돌 하나하나에도 정교한 빗물 배수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다. 비가 와도 요새가 침식되지 않는다.

피삭아(P'isaqa) 구역. 주거 지역. 잉카 귀족과 종교 관리자가 살던 곳. 여기서 물은 일상적 사용 을 위해 분배되었다. 취사, 씻기, 마시기. 그런데 이 일상 사용조차 의식용 물의 하류에 위치한다. 즉 먼저 신에게 바쳐진 물이, 그 다음 사람에게 쓰인다.

칸치스라카이(Kanchis Racay) 구역. 행정과 창고. 그리고 물의 분배 지점. 여기서 수로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아래쪽 농경 테라스들로 흘러간다. 위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에서 계산된 비율로 각 테라스에 나눠지며, 건기에도 모든 밭이 일정량의 물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네 구역 전체가 하나의 수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은 산에서 내려와, 신전을 거치고, 귀족 주거를 지나며, 일반 주거를 통과한 뒤, 분배 지점에서 갈라져 농경지로 흐른다. 각 단계마다 물은 다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농지에서 흡수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하수도는 어디에도 없다.

공주의 목욕탕

특히 주목할 한 지점이 있다. 퀴차 라키와 피삭아 사이, 주요 수로가 공주의 목욕탕(baño de la ñusta) 이라 불리는 작은 석조 구조물을 지난다.⁹

이것은 오얀타이탐보에도 있는 형태다. 두 개의 작은 석조 통 위로 수로가 흐른다. 물이 돌로 된 좁은 홈을 지나며 떨어지는 형태. 통 안에 담긴 물이 완벽한 고요를 유지한다. 한 사람이 그 안에서 앉아서 씻을 수 있는 크기다.

이것이 "공주의 목욕탕"이라 불리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낭만화 때문이다. 실제로는 의식용 정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귀족이나 사제가 중요한 의식 전에 몸을 정화하는 자리. 중요한 것은 — 기능만이 아니다. 이 구조물의 정밀함이다.

물줄기가 떨어지는 각도, 통의 크기, 배수구의 위치. 이 모든 것이 물이 튀지 않도록, 소리가 부드럽게 나도록, 사람이 앉았을 때 정확히 어깨에 물이 닿도록 설계되어 있다. 500년 된 구조물인데 오늘 내가 손을 대어봐도 그 정밀함이 생생하다.

이 작은 목욕탕 하나가 잉카 문명의 정신을 압축한다. 일상의 물조차 의식이다. 몸을 씻는 것이 기계적 위생이 아니라 신성한 행위다. 물은 우리 몸을 통과하면서 우리를 정화하고, 우리도 물에 감사를 돌려보낸다. 이것이 아이니(ayni)의 원리 — 3장에서 본 상호성의 철학 — 가 일상 행위에 녹아든 형태다.

잉카 트레일로 내려오며

오후가 깊어지고 있었다. 가이드와 함께 피삭 유적을 내려가는 길. 관광 버스가 닿지 않는 반대편 능선. 산 정상에서 마을까지, 순수하게 옛 잉카 트레일을 따라.

이 트레일이 놀랍다. 500년 된 돌계단이 아직도 완벽하게 남아 있다. 주요 지점마다 벽감(niche)이 있어 거기에 제물을 놓았던 것이 보인다. 일정한 간격마다 작은 수로가 길을 가로지르고, 그 아래로 물이 흐른다. 길과 물이 나란히 내려오는 구조. 길을 걷는 사람과 물이 흐르는 수로가 끊임없이 만난다.

이 경험이 특별했다. 내가 물의 흐름과 같은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물은 자기 속도로 내려간다 — 가파른 곳에서 빠르고, 평평한 곳에서 천천히. 나도 몸의 피로에 따라 속도를 맞춘다. 가끔 수로가 길 위를 지나갈 때 나는 멈추어 물을 바라본다. 물도 잠시 내 발밑을 지나간다. 그리고 각자의 방향으로 간다.

이 리듬이 잉카 트레일의 영적 차원이다. 트레일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맞추는 명상 의 형식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수로의 오르내림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이 리듬 속에서 몸과 산과 물이 하나의 흐름이 된다.

원주민 전통과의 공명

여기서 한 단락을 할애하고 싶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원주민 공동체와 교류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물과 함께 걷는 법이다.

북미 대평원의 할머니들은 강가에 가면 먼저 손을 씻는다. 단순한 위생이 아니다. 인사다. 강이 할머니를 알아보고, 할머니도 강을 알아본다는 확인. 그리고 몸에 필요한 양만큼만 가져간다. 가져갈 때도 고맙다고 말한다. 이 관계는 크리어로 와코토윈(wahkohtowin) 에 가깝다. "모든 것이 친족으로 연결되어 있음." 강은 친족이다. 친족에게는 인사해야 한다.

이 관습은 미신이 아니다. 실제적 효과가 있다. 물을 친족으로 보는 사람은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친족을 독살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친족이 어려움에 처하면(가뭄, 오염, 막힘) 즉시 알아차리고 행동한다. 친족의 건강이 나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적 시각이 수천 년간 안데스와 북미 대평원의 물 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위에서 본 파카리나 시스템의 심층 논리도 같다.

오늘 우리는 "물 부족"과 "수질 오염"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실 관계의 부족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더 이상 물을 친족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물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늦는다. 늦게 알아차리고 늦게 반응한다.

잉카의 야쿠 철학은, 그리고 그 형제 격인 북미 원주민의 강 철학은 — 다시 배울 가치가 있다. 이것이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미래의 지혜다.

하난과 우린 — 이원성의 철학

두 개의 반

잉카 도시는 보통 두 개의 반으로 나뉜다.¹⁰ 하난(Hanan)우린(Urin). "위쪽"과 "아래쪽". 쿠스코도, 피삭도, 오얀타이탐보도, 심지어 마추픽추도 이 구조를 가진다. 한 강이나 한 길을 경계로 해서 도시가 반반으로 나뉜다. 각 반에 고유한 귀족 가문, 고유한 신전, 고유한 수로 시스템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구분이 아니다. 우주론적 구조다. 하난은 , 남성성, 태양, 상승과 관련된다. 우린은 , 여성성, , 하강과 관련된다. 이 두 원리가 대립이 아니라 상보로 이해되었다. 우주 전체가 두 원리의 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음양 사상과 놀랍게 가깝다. 상반되는 것들이 서로 안에 있고, 서로를 낳고, 서로로 변한다. 하난 없이 우린 없고, 우린 없이 하난 없다. 두 반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전체의 호흡이다.

티누이 — 만남의 자리

그리고 하난과 우린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티누이(tinkuy). "만남" 또는 "교환" 이라는 뜻.¹¹ 두 강이 만나는 지점, 두 길이 교차하는 지점, 두 가문이 혼인하는 자리. 티누이는 물리적 지점이면서 동시에 의식적 시간이다.

쿠스코의 도시 구조 자체가 거대한 티누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두 강 — 투쿠마요(Tullumayu)와 사피(Saphi) — 이 합류하는 지점에 코리칸차가 있다.¹² 즉 태양의 신전은 두 물이 만나는 자리에 세워졌다. 이것이 쿠스코의 영적 중심인 이유. 이곳이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이유("쿠스코"라는 이름이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티누이의 개념은 의식 생활에서도 중요했다. 특정 축제일에는 하난 가문과 우린 가문이 의식적 싸움을 벌였다. 돌을 던지고 밀치고 뒤섞였다. 이것이 폭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갈등의 의례화다. 두 반이 매년 공공연히 부딪힘으로써, 그 긴장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부딪힌 후에는 함께 치차를 마시고 춤을 춘다. 긴장이 해소된다.

이 지혜를 현대 사회가 완전히 잃었다. 우리는 갈등을 감추거나 제거하려 한다. 결과는 갈등의 은밀한 지속폭발적 표출이다. 잉카는 달랐다. 정기적으로 마찰이 생기는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마찰이 생산적이 되었다.

이것이 잉카의 이원성 철학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완전한 조화는 환상이다. 갈등은 존재의 조건이다. 문제는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만나게 하는 것이다. 티누이의 지혜.

태양 숭배는 프레임이었다

스페인의 구성

이 장을 쓰면서 계속 마주치는 문제가 있다. 잉카 종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은 잉카를 "태양 숭배 문명" 으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이 500년간 우리의 이해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 장에서 본 모든 것 — 야쿠의 철학, 파차마마의 여성성, 세케 시스템의 수로 지리, 아푸와 마이유와 파카리나, 하난과 우린의 이원성 — 을 합쳐 보면, 태양은 잉카 종교의 일부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일부도 아니다.

태양(인티, Inti)은 잉카 황실의 공식 수호신이었다. 황제는 "태양의 아들(Inti Churin)" 로 불렸고, 코리칸차는 공식적으로 "태양의 신전" 이었다. 스페인이 이것만 보았다. 왜냐하면 스페인의 기독교 틀에서는 "최고신"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잉카의 "최고신"이 누구인지 물었고, 답은 "태양"이었다. 그래서 "잉카 = 태양 숭배" 라는 도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잉카인들의 일상 종교 생활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신성은 태양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차마마(대지), 야쿠(물), 아푸(산)였다. 매일 아침 여자들이 치차를 대지에 뿌리며 파차마마에게 바쳤다. 남자들이 농기구를 들기 전에 아푸에게 기도했다. 아이가 아프면 샘에 가서 야쿠에게 물었다. 이 일상 속 종교가 잉카 신앙의 실체였다.

태양은 황제의 신이었다. 파차마마와 야쿠와 아푸는 민중의 신이었다.

제국의 멸망과 민중의 생존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잉카 제국이 멸망한 후 무엇이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1533년 스페인 정복 후 태양 숭배 체계는 즉시 해체되었다. 코리칸차의 황금 태양이 녹여졌다. 태양 신전들이 해체되거나 교회로 전환되었다. 황제가 없어졌으니 "태양의 아들" 이라는 신학도 사라졌다. 공식 잉카 종교는 빠르게 붕괴했다.

그러나 파차마마와 야쿠와 아푸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국가의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의 종교였다. 어머니가 딸에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가르쳐 온 것들. 스페인이 마을 하나하나에 사제를 파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파견된 사제조차 많은 경우 이 전통을 가톨릭 어휘로 번역하는 것을 허용했다. 쿠스코 화파의 성모 마리아가 파차마마와 겹쳐진 것처럼.

그 결과 오늘날까지 안데스 농민 공동체는 두 종교를 동시에 믿는다. 일요일에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8월 1일에는 파차마마 의식을 치른다.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실은 파차마마에게 말한다. 이중 신앙이 아니라 통합 신앙이다. 그리고 이 통합의 핵심에 — 잉카의 민중 종교, 즉 물과 땅과 산의 신성 — 이 살아 있다.

이것이 이 장의 마지막 통찰이다. 잉카 문명의 심장은 황제가 아니라 민중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민중의 심장에 물의 철학이 있었다. 국가는 무너져도 민중은 남는다. 황제는 사라져도 샘은 흐른다. 태양 숭배는 깨져도 파차마마는 대지에 남는다.

500년이 지나도 이 구조가 지속된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민중 철학의 본질적 회복력이다. 엘리트 문화는 국가와 함께 무너진다. 민중 문화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오래 산다. 잉카 제국의 진정한 유산은 황금이 아니라 — 오늘도 안데스 농민이 아침에 치차를 땅에 뿌리는 그 작은 몸짓 에 있다.

결론: 피삭 마을에 도착해서

피삭 유적을 내려와 마을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다. 광장에는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케추아 여성들이 형형색색의 직물을 펼쳐놓고, 감자 여러 종류를 쌓아두고, 치차(옥수수 발효 음료)를 큰 사발에 담아 팔고 있었다. 한 할머니 앞에서 멈추어, 치차 한 잔을 샀다.

할머니가 잔을 건네기 전에 작은 동작을 했다. 잔을 살짝 기울여, 몇 방울의 치차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이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했다. 일상의 몸짓. 그리고 잔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받으며 물었다. "그건 파차마마에게 바친 것이죠?"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영어를 몰랐지만, 질문의 뜻은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파차마마" 라고 말했다. 그다음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케추아어였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냥 의식이 아니다. 이것은 내 몸 안의 무엇이 땅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나는 치차를 마셨다. 뻣뻣한 고원의 바람 아래, 안데스의 저녁 빛 아래, 500년 된 마을 광장에서. 한 잔의 발효된 옥수수물이 내 몸을 통과했다. 그 물은 언젠가 야쿠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오늘 밤 산속 작은 샘에 돌려줄 수도 있고, 먼 훗날 내 몸이 흙이 되어 대지로 돌아가며 돌려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돌아갈 것이다.

야쿠는 잠시 빌린 것이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잠시의 빌림을 고맙게 여기고, 흐르는 대로 흘리고, 때가 되면 감사를 담아 돌려보낸다. 이것이 잉카의 물 철학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우리가 가장 필요한 지혜다.

1부를 마치며

이 장으로 1부가 끝난다. 나는 쿠스코에 도착해 삭사이와만의 거석 앞에서 첫 질문을 품었다 — 95년 만에 어떻게? 그 질문을 따라 잉카 문명의 여러 얼굴을 보았다. 건축의 정밀, 농업의 정교, 천문의 섬세, 의학의 놀라움, 행정의 체계, 수력 공학의 경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물의 철학.

지금 나는 처음의 질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어떤 사회였기에 이것이 가능했는가"가 되었고, 이제는 "어떤 세계관이었기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놀랍도록 철학적이며, 놀랍도록 — 현대적이다. 21세기 생태 위기 앞에서 우리가 재발견하려고 애쓰는 지혜의 많은 부분을, 잉카는 이미 5백 년 전에 체계화해두었다.

그리고 — 바로 그 세계관을 가진 문명이 5백 년 전 다른 세계관과 만났다. 그 만남의 결과가 이후 5백 년의 세계를 만들었다.

다음 장(2부)부터, 우리는 그 만남을 직시한다. 1532년 11월 16일, 카하마르카에서 시작된 40년의 학살. 그리고 그 학살이 법과 신학의 언어로 정식화되는 과정. 은과 설탕과 노예제로 전 지구화되는 과정. 아시아로 건너와 한반도의 해안에 부딪히는 과정.

충돌의 역사로 들어간다.


각주

¹ 케추아어의 대명사 체계와 애니미즘적 문법에 관하여는 Bruce Mannheim, The Language of the Inka since the European Invasion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1), 제3장.

² 야쿠 개념의 번역 불가능성에 관하여는 Catherine Allen, The Hold Life Has: Coca and Cultural Identity in an Andean Community, 2nd ed. (Washington, D.C.: Smithsonian, 2002), 특히 서론과 제2장.

³ Jeanette E. Sherbondy, "The Canal Systems of Hanan Cuzco" (Ph.D. diss.,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1982). 이 논문은 상업 출판되지 않았으나, 그녀의 후속 논문들이 주요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⁴ 세케 시스템에 관한 가장 상세한 1차 자료는 Bernabé Cobo, Historia del Nuevo Mundo (c. 1653), 특히 제13권. 현대 연구서로는 R. Tom Zuidema, The Ceque System of Cuzco (Leiden: E. J. Brill, 1964).

⁵ 41개 선과 328개 와카의 목록에 관하여는 위의 Zuidema 저서와 Brian S. Bauer, The Sacred Landscape of the Inca: The Cusco Ceque System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8).

⁶ Jeanette Sherbondy, "Water and Power: The Role of Irrigation Districts in the Transition from Inca to Spanish Cuzco," in Irrigation at High Altitudes: The Social Organization of Water Control Systems in the Andes, ed. William P. Mitchell and David Guillet (Washington, D.C.: 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1994).

⁷ 파카리나 개념에 관하여는 Frank Salomon, The Huarochirí Manuscript: A Testament of Ancient and Colonial Andean Religion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1).

⁸ 피삭 유적의 네 구역에 관하여는 Ann Kendall,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of Late Intermediate Period and Late Horizon Period in Cusichaca, Peru, BAR International Series (Oxford: BAR, 1985).

⁹ 공주의 목욕탕(baño de la ñusta) 구조물에 관하여는 Kenneth R. Wright, Ruth M. Wright, Alfredo Valencia Zegarra, and Gordon F. McEwan, Moray: Inca Engineering Mystery (Reston, VA: ASCE Press, 2011), 제5장의 관련 논의 참조.

¹⁰ 하난/우린 이원성에 관하여는 R. Tom Zuidema, Inca Civilization in Cuzco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0).

¹¹ 티누이 개념에 관하여는 Peter Gose, Deathly Waters and Hungry Mountains: Agrarian Ritual and Class Formation in an Andean Town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4), 제6장.

¹² 쿠스코의 두 강 합류 구조에 관하여는 Brian S. Bauer, Ancient Cuzco: Heartland of the Inka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2004), 제4장.

『페루-쿠스코-마추피추 여행기』 집필 중 · 생성: 2026. 4. 20. PM 8:2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