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는 한 점의 목판화를 완성했다. 제목은 "Day and Night." 화면 중앙에서 검은 새들이 왼쪽으로 날아가고, 흰 새들이 오른쪽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검은 새의 윤곽선은 흰 새의 몸이 만들어주고 있고, 흰 새의 윤곽선은 검은 새의 몸이 만들어주고 있다. 어느 한쪽에 시선을 고정하면 그 새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다른 새는 배경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둘 다 항상 거기에 있다. 어느 하나를 지우면 다른 하나도 소멸한다. 에셔 자신은 이 작품을 "대칭적 변환(symmetric transformation)"이라 불렀다 (Escher, 1938; Schattschneider, 2004, M.C. Escher: Visions of Symmetry, Harry N. Abrams, pp. 244-249). 화면 아래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왼쪽 마을은 낮이고, 오른쪽 마을은 밤이다. 들판의 패치워크가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새의 형상으로 변한다. 어디서 들판이 끝나고 새가 시작되는지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에셔는 이렇게 질문했다: 대립하는 두 세계는 정말로 분리되어 있는가? 아니면 하나의 세계가 두 가지 얼굴로 나타나는 것인가?
나는 열일곱 살에 역사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교과서에 없는 역사에 빠졌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세계사는 깔끔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일직선으로, 서쪽에서 서쪽으로, 유럽에서 유럽으로 흘러갔다. 한국사는 한국사대로 따로 있었다. 단군, 삼국, 고려, 조선, 일제, 해방. 두 역사는 만나지 않았다. 같은 지구 위에 살았는데, 같은 하늘 아래서 태어나고 죽었는데, 왜 두 역사는 만나지 않는가? 누가 두 역사를 갈라놓았는가? 그 질문을 안고 40년을 살았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시절, 브리티시컬럼비아 원주민 마을에서 샤먼의 의례를 보았다. 샤먼이 북을 치고 노래하며 트랜스(trance) 상태에 들어갔다. 영혼이 저승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본 굿판이 떠올랐다. 무당이 징과 꽹과리 소리 속에서 몸을 떨며 신을 받았다. 죽은 자의 말을 전했다. 울고, 웃고, 술을 마시고.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의례의 구조가 같았다. 트랜스로의 진입, 3층 우주관(하늘-땅-지하), 동물 영혼과의 교류, 북(drum)이라는 운송 수단. 우연의 일치라 하기에는 너무 체계적이었다.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할슈타트(Hallstatt) 토기 앞에 멈추어 섰다. 기원전 800년경 오스트리아의 소금 광산 마을에서 출토된 토기였다. 켈트 문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유적이다. 토기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보는 순간,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가 떠올랐다. 7,000킬로미터의 거리, 5,000년 이상의 시간 차이. 그런데 수평 띠 안에 지그재그, 셰브런, 사선 해칭을 배치하는 방식 — 개별 문양이 아니라 문양을 배치하는 문법 — 이 같았다.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신라 금관을 보았을 때, 흑해 연안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금관의 사진과 나란히 놓으면 — 출자형(出字形) 나뭇가지, 사슴뿔 장식, 얇은 금판 달개(보요)가 바람에 흔들리도록 매달린 구조 — 이 금관은 초원에서 왔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두 금관이 같은 세계관, 같은 기술 전통에서 태어났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64년 Observations on the Feeling of the Beautiful and Sublime에서 세계 문명을 일직선 위에 세웠다. 아프리카는 맨 아래, 아시아는 그 위의 "어린아이 수준(childish level)"이며, 유럽에 이르러서야 인류가 "성인"이 되었다고 썼다 (Kant, 1764, Section IV; Eze, 1997, "The Color of Reason: The Idea of 'Race' in Kant's Anthropology," in Postcolonial African Philosophy, Blackwell, pp. 103-140). 이것이 지난 250년간 세계사 서술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로마를 거쳐 서유럽으로 흘러가는 직선. 그 직선 위에 없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아직 덜 된 것'이다. 헤겔(Hegel)은 이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세계정신(Weltgeist)은 동에서 서로 이동한다. 아시아는 역사의 어린 시절, 유럽은 역사의 노년이자 완성이다" (Hegel, 1837/1956, The Philosophy of History, Dover, p. 103). 이 직선적 문명관은 대항해시대의 정복, 식민주의의 정당화,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과서의 구조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책은 칸트에게 반론한다. 그러나 — 이 "그러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하다"는 주장도 아니다. 뒤집은 직선도 여전히 직선이다.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를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하다"로 바꾸는 것은 같은 오류의 좌우 반전에 불과하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했을 때, 그가 원한 것은 서양과 동양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Said, 1978, Orientalism, Pantheon Books). 이 책이 추구하는 것도 같다.
에셔의 판화로 돌아가자. 검은 새와 흰 새. 낮과 밤. 어느 하나를 지우면 다른 하나도 소멸한다. 이것이 40년간 내가 보아온 것이었다. 빗살무늬토기가 한반도에서 시베리아를 건너 핀란드까지 간 것. 초원의 금 문화가 흑해에서 알타이를 거쳐 경주까지 온 것. 금속활자가 고려에서 유럽으로 가서 종교를 혁명하고, 그 종교가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 것. 성리학의 합리주의가 유럽 계몽주의를 깨우고, 계몽주의의 후예인 근대 과학이 다시 동아시아를 깨운 것. 음양의 이진법이 라이프니츠를 거쳐 컴퓨터가 되고, 컴퓨터가 다시 동양으로 돌아와 세계를 변환하는 것. 주고 또 받고. 가고 또 돌아오고. 이것이 음양(陰陽)이었다. 이것이 문명이었다.
직선이 아니라 순환. 위계가 아니라 공명. 우열이 아니라 흐름.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음양은 단순한 동양 철학의 개념이 아니다. 에셔의 판화가 수학적으로 증명하듯, 음양은 대칭적 상보성(symmetric complementarity)이라는 보편적 구조다.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역학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문장(紋章)에 태극 문양을 넣었다 (Pais, 1991, Niels Bohr's Times, Oxford UP, pp. 314-316).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관측 방법에 따라 다른 면이 보인다. 그러나 둘 다 항상 거기에 있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동양에 시선을 맞추면 동양이 선명해지고 서양은 배경이 된다. 서양에 시선을 맞추면 반대가 된다. 그러나 둘 다 항상 거기에 있었다. 서로의 윤곽선을 만들어주면서.
이 책은 열두 개의 길에 대한 이야기다. 고래를 따라 태평양을 건넌 길. 빗살무늬와 함께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에 닿은 길. 고인돌이 해안선을 따라 세계를 연결한 길. 초원의 금이 사슴과 함께 경주에 도착한 길. 피라미드가 하늘을 읽은 길. 인삼이 지구를 한 바퀴 돈 길. 프레스터 존의 환상이 대양을 건너게 한 길. 은이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은 길. 총 두 자루가 동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길. 활자가 종교를 혁명한 길. 성리학이 계몽주의를 깨운 길. 그리고 음양이 0과 1이 되어 인공지능을 만든 길. 이 모든 길이 한 점에서 교차한다 — 한반도.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한반도가 세계와 얼마나 깊고 오래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에셔의 판화에서 한 마리 새의 날개짓을 추적하면 다른 모든 새의 형상이 드러나듯이, 한반도라는 한 점에서 출발하면 세계 문명 전체의 흐름이 보인다.
독자여, 함께 걸어주기 바란다. 첫 번째 길은 고래의 길이다. 울산 반구대의 절벽에서 시작하여 알래스카의 얼음 바다에 이르는, 7,000년 전의 길이다.
References: Escher, M.C. (1938) 'Day and Night,' woodcut; Schattschneider, D. (2004) M.C. Escher: Visions of Symmetry, Harry N. Abrams; Kant, I. (1764) Observations on the Feeling of the Beautiful and Sublime; Eze, E.C. (1997) "The Color of Reason," in Postcolonial African Philosophy, Blackwell; Hegel, G.W.F. (1837/1956) The Philosophy of History, Dover; Said, E. (1978) Orientalism, Pantheon Books; Pais, A. (1991) Niels Bohr's Times, Oxford UP.
대곡천은 좁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태화강의 지류인 이 작은 하천은 양쪽 절벽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간다. 여름 장마가 지나면 물이 불어 바위 아래쪽이 잠기고, 가을이 오면 다시 드러난다. 이 골짜기의 한쪽 절벽에, 인류 해양 문명의 가장 오래된 증거가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盤龜臺巖刻畵). 높이 약 3미터, 너비 약 10미터의 수직 암면에 빼곡히 새겨진 약 300점의 그림. 고래, 거북, 물개, 사슴, 호랑이, 멧돼지, 사람, 배. 대한민국 국보 제285호.
이 그림이 새겨진 것은 약 7,000-8,000년 전이다. 이 숫자를 세계사의 좌표 위에 놓아보자. 이집트 대피라미드(기원전 약 2560년)가 세워지기 4,000년 전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쐐기문자가 발명되기(기원전 약 3400년) 약 3,000년 전이다.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기원전 약 2600년)가 건설되기 4,000년 이상 전이다. 인류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의 거의 모든 기준점보다 앞선다. 그리고 이 바위에 새겨진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대형 고래를 조직적으로 사냥하는 장면이다. Lee와 Robineau(2004)는 프랑스 학술지 L'Anthropologie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정밀 분석하여,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적 포경(whaling) 장면임을 논증했다 (Lee & Robineau, 2004, L'Anthropologie 108(1):137-151).
대형 고래를 조직적으로 사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이것은 어부 한 명이 낚시를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활동이다. 네 가지가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선박(船舶). 반구대 암각화에는 여러 명이 탑승한 대형 선박이 다수 그려져 있다. 어떤 배에는 10명 이상의 선원이 타고 있다. 귀신고래(gray whale)의 성체는 길이 14미터, 무게 35톤에 달한다. 이런 거대한 동물을 바다에서 상대하려면 배가 튼튼해야 하고, 기동성이 있어야 하며, 여러 척이 동시에 운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조선 기술(shipbuilding technology)이다.
둘째, 무기 체계(weapon system). 암각화에 명확히 묘사된 것이 작살-줄-부구(浮具) 시스템이다. 작살을 고래에 박으면, 작살에 연결된 줄의 끝에 물개 가죽 부구(float)가 달려 있다. 고래가 잠수하면 부구가 수면에 떠서 위치를 알려준다. 여러 개의 작살과 부구를 박으면, 고래는 잠수할 때마다 부구의 저항을 받아 점차 지치고, 결국 수면으로 올라온다. 이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물리학 원리에 기반한 복합 무기 체계다.
셋째, 집단 전술(group tactics). 암각화에는 여러 척의 배가 고래를 에워싸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조직의 규율이다. 누가 먼저 작살을 던지고, 누가 측면을 막고, 누가 부상당한 고래의 꼬리를 피하는지 — 역할 분담과 의사소통 체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군사 작전에 가깝다.
넷째, 과학적 지식. 고래를 사냥하려면 고래를 알아야 한다. 귀신고래가 언제 울산 앞바다에 오는지, 어디서 새끼를 낳는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을 때 행동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것은 수세대에 걸쳐 축적된 생태학적 지식(ecological knowledge)이다. 현대 해양생물학자 Kato와 Kasuya(2002)는 귀신고래 서태평양 개체군의 회유 패턴을 분석하면서, 울산 해역이 핵심 번식지(key breeding ground)였음을 확인했다 (Kato & Kasuya, 2002, J. Cetacean Research & Management 4(3):277-282). 7,000년 전의 포경민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지식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네 가지를 갖추려면,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하다. 배를 만드는 사람, 작살을 만드는 사람, 줄을 꼬는 사람, 부구를 봉합하는 사람, 사냥을 지휘하는 사람, 고래의 습성을 기억하고 전수하는 사람. 전문적 분업, 기술의 세대 간 전승, 집단적 의사결정 — 이것은 "원시"가 아니다. 이것은 문명이다.
귀신고래(Eschrichtius robustus)는 현존하는 고래 중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하는 종 가운데 하나다. 서태평양 개체군(Western Pacific population)의 연간 회유(回遊) 경로는 다음과 같다: 겨울에 울산·부산 앞바다(따뜻한 수온)에서 교미하고 출산한다 → 봄이 되면 동해를 따라 북상한다 → 러시아 사할린 해역에서 먹이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한다 → 캄차카 반도를 지난다 → 베링해를 건넌다 → 알래스카 해역에 도달한다. 왕복 16,000~20,000km. 지구 둘레의 절반에 가까운 거리다.
이 물리적 경로가, 한반도와 북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문화적 회랑(cultural corridor)이 된다. 고래를 따라가면, 사람도 따라간다. 그리고 사람을 따라, 기술과 의례와 세계관이 이동한다.
반구대와 북아메리카 태평양 연안(특히 이누이트, 알류트, 틀링깃 등 원주민 문화)을 잇는 다섯 가지 평행 증거가 있다.
(1) 동일한 포경 기술. 작살+줄+부구 시스템이 반구대 암각화에 묘사된 것과 이누이트 전통 포경에서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Savelle과 McCartney(1999)는 World Archaeology에서 북극해 연안의 전통 포경 기술을 분석하면서, 작살-줄-부구 복합체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분포하는 포경 문화의 공통 기술 표지(technological marker)임을 보였다 (Savelle & McCartney, 1999, World Archaeology 30(3):437-451). 이 기술은 독립적으로 여러 번 발명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부 구조의 유사성은 공통 기원을 시사한다.
(2) 온돌형 바닥 난방. 알류샨 열도의 고고학 유적에서, 한반도의 온돌(ondol)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바닥 난방 시설이 발견되었다. 바닥 아래에 불을 때서 돌을 가열하고, 그 열이 바닥 전체로 전달되는 원리. 이 기술은 중국이나 일본 전통 건축에는 없고, 한반도와 만주 — 그리고 베링해 건너편 알류샨 열도에 있다.
(3) 고래 가면(whale mask). 한국의 하회탈과 태평양 연안 원주민의 가면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양쪽 문화 모두에서 동물 가면이 의례에서 동일한 기능을 한다 — 인간이 동물의 영혼을 입고, 동물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 고래 가면은 포경 의례의 핵심이었다.
(4) 샤머니즘 체계. 이것이 가장 구조적인 유사성이다. 양 지역의 샤머니즘은 다음 요소를 공유한다: 트랜스(trance) 진입을 위한 리듬 악기(한국의 장구/징, 원주민의 드럼), 3층 우주관(Upper World/Middle World/Lower World = 천상/인간계/지하), 동물 영혼 숭배(animal spirit worship), 영혼 비행(soul flight), 질병 치유자로서의 사회적 역할. Eliade(1964)는 Shamanism: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에서 시베리아-한반도-북아메리카를 잇는 샤머니즘 벨트(shamanic belt)를 제시했다 (Eliade, 1964, Princeton UP).
(5) 토템폴/장승·솟대. 태평양 연안 원주민(특히 틀링깃, 하이다, 콰키우틀)의 토템폴과 한국의 장승·솟대가 형태적·기능적으로 유사하다. 나무 기둥 위에 동물이나 인물의 형상을 조각하여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 영토의 경계, 수호의 상징, 세계관의 물질화. 이 유사성이 직접적 전파인지 구조적 수렴(convergence)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그러나 고래의 길이 열어놓은 가능성 속에서, 이 유사성은 새로운 무게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인류 정착은 약 13,000-15,000년 전 베링 육교(Beringia land bridge)를 통한 내륙 이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Erlandson과 Rick(2010)이 Annual Review of Marine Science에서 제시한 해안이주설(Kelp Highway Hypothesis)은 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Erlandson & Rick, 2010, Annual Review of Marine Science 2:231-251). 핵심 논지: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 풍부한 해조류(kelp) 숲이 연속적으로 분포하며, 이 해조류 숲은 물고기, 조개류, 해양 포유류의 서식지를 제공한다. 해양 자원을 이용하는 기술을 가진 집단이라면, 이 "다시마 고속도로"를 따라 배를 타고 남하하는 것이 내륙 빙하를 도보로 건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2021년, 이 가설에 결정적 증거가 추가되었다. 뉴멕시코 주 White Sands에서 약 23,000년 전의 인간 발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Bennett et al., 2021, Science 373(6562):1528-1531). 이 연대는 최종 빙하 극대기(Last Glacial Maximum) 이전이다. 당시 내륙 통로는 빙하로 막혀 있었으므로, 이 인류는 해안 경로로 왔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23,000년 전에 이미 아메리카에 있었다면, 그들의 출발점은 — 동아시아 해안이다.
노르웨이 알타(Alta)의 암각화도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 Helskog(2012)가 분석한 알타 암각화에는 고래, 사슴, 배, 인물이 새겨져 있으며, 약 7,000-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대와 알타 — 유라시아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유사한 해양 암각화가 존재한다. 이 사이에 시베리아의 암각화들이 점점이 놓여 있다.
Park Guem-Hee(2012)는 Asian Perspectives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동물 표현 양식을 태평양 연안의 다른 암각화들과 비교 분석하여, 한반도-시베리아-북아메리카를 잇는 해양 문화 전통의 존재를 시사했다 (Park, 2012, Asian Perspectives 51(2):233-259). Jeon Ho-Tae(2005)의 반구대 암각화 전문 연구서는 개별 도상의 정밀한 해독을 제공하며, 특히 고래 종(種)의 구별 — 귀신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가 각각 다른 양식으로 묘사되어 있음 — 이 7,000년 전 포경민들의 해양생물학적 지식의 깊이를 증명한다고 논증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림이 아니다. 7,000년 전 한반도 동남해안에 배, 무기, 전술, 지식을 모두 갖춘 해양 문명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문명이 사냥한 귀신고래의 회유 경로는, 아직 이름이 없던 시대에, 이미 한반도와 아메리카를 연결하고 있었다.
References: Lee, S.M. & Robineau, D. (2004) L'Anthropologie 108(1):137-151; Kato, H. & Kasuya, T. (2002) J. Cetacean Research & Management 4(3):277-282; Savelle, J.M. & McCartney, A.P. (1999) World Archaeology 30(3):437-451; Erlandson, J.M. & Rick, T.C. (2010) Annual Review of Marine Science 2:231-251; Bennett, M.R. et al. (2021) Science 373(6562):1528-1531; Helskog, K. (2012) Conversations with Stones, Tromsø Museum; Park, G.H. (2012) Asian Perspectives 51(2):233-259; Jeon, H.T. (2005) Ulsan Bangudae Amgakhwa, Daewonsa; Eliade, M. (1964) Shamanism: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 Princeton UP.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 Jeulmun pottery)는 기원전 약 8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뾰족한 바닥, 표면을 가득 채운 기하학적 문양. 빗(comb)과 같은 도구로 젖은 점토 위에 찍고, 그으며, 새긴 흔적들. 이 토기는 서울 한강변의 모래땅에서 출토되었고, 뾰족한 바닥은 모래에 꽂아 세우기에 적합하다.
핀란드의 빗살무늬토기(Kamkeramik, Comb Ceramic)는 기원전 약 4200년의 것이다. 한국 토기보다 약 4,000년 늦다. 바닥은 편평하다 — 핀란드의 딱딱한 바위 바닥에서는 뾰족한 토기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의 문양을 보라. 수평 띠(band)로 구획된 공간 안에 지그재그, 셰브런(chevron), 사선 해칭(diagonal hatching), 점렬(dot rows)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Hallstatt)의 토기는 기원전 약 800년의 것이다. 켈트 문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 소금 광산 마을의 이름은 유럽 철기시대 전기의 대명사가 되었다(Hallstatt culture, c. 800-450 BCE). 할슈타트 토기에도 같은 문양 체계가 나타난다. 수평 띠, 지그재그, 셰브런, 해칭.
세 토기의 연대를 나열하면: 한반도(c. 8000 BCE) → 핀란드(c. 4200 BCE) → 할슈타트(c. 800 BCE). 동에서 서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의 벨트(chronological belt)다.
여기서 핵심적 구별이 필요하다. 지그재그나 셰브런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이다. 어디서나 독립적으로 발명될 수 있다. 삼각형을 반복하면 지그재그가 되고, V자를 쌓으면 셰브런이 된다. 개별 문양의 유사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빗살무늬토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개별 문양이 아니라, 문양을 배치하는 문법(decorative grammar)이다. 토기 표면을 수평 띠로 구획하고, 각 띠 안에 서로 다른 문양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방식. 어떤 띠에는 지그재그, 그 위의 띠에는 셰브런, 그 위에는 사선 해칭, 최상단에는 점렬. 이 배열의 체계성, 즉 문양들 사이의 관계와 위계가 한반도-시베리아-핀란드-중부유럽을 관통하여 유사하다. 이것은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개별 단어가 같을 수는 있지만, 문법이 같다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차이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토기의 뾰족한 바닥과 핀란드 토기의 편평한 바닥. 이 차이는 환경에 대한 기능적 적응(functional adaptation)이다. 모래 해변에서는 뾰족한 바닥이 안정적이고, 딱딱한 바위 바닥에서는 편평한 바닥이 안정적이다. 기능(바닥 형태)은 환경에 따라 변했지만, 문화적 정체성(장식 문법)은 보존되었다. 이것은 인구 이동의 전형적 패턴이다 — 새로운 환경에 도구를 적응시키면서, 문화적 정체성은 유지한다.
Jordan과 Zvelebil(2009)은 "Ex Oriente Lux"(빛은 동방에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수렵-채집 사회의 토기가 동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가설을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Jordan & Zvelebil, 2009, in Ceramics Before Farming, Left Coast Press). 이 논문의 핵심: 토기의 발명은 농경과 무관하게 수렵-채집 사회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최초의 발명지는 동아시아(중국 남부, 러시아 극동, 일본)다.
Kuzmin(2006)은 Antiquity에서 방사성탄소 연대 데이터를 종합하여, 세계 최고(最古) 토기가 러시아 극동, 중국, 일본에서 약 16,000-12,000 BP(Before Present)에 출현함을 확인했다 (Kuzmin, 2006, Antiquity 80(308):362-371). 이것은 서아시아의 토기(약 8,500-8,000 BP)보다 최소 4,000년 앞선다. 토기는 동양에서 발명되어 서양으로 갔다. "Ex Oriente Lux" — 빛은 동방에서 온다.
2018년 Nature에 발표된 비커 문화(Beaker Culture) 연구는 토기의 이동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다 (Olalde et al., 2018, Nature 555:190-196). 연구팀은 유럽 전역의 고대 DNA 400개 이상을 분석했다. 결과: 영국에서 비커 토기가 등장한 시기에, 기존 인구의 약 90%가 유전적으로 교체되었다. 새로운 토기를 가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기존 주민들을 거의 완전히 대체한 것이다. 토기가 가는 곳에 사람이 간다(Where the pot goes, the people go). 빗살무늬토기가 한반도에서 핀란드까지 유사하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 전파(diffusion)가 아니라 인구 이동(migration)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빗살무늬와 함께 이동한 것은 토기만이 아니다. 한국어와 핀란드어(그리고 헝가리어, 터키어, 몽골어) 사이에는 놀라운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 구조 — 어근에 접미사를 차례로 붙여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 모음조화(vowel harmony) — 한 단어 안에서 모음이 조화를 이루는 규칙. SOV 어순(주어-목적어-동사) — "나는 밥을 먹는다"와 같은 구조. 문법적 성(grammatical gender)의 부재 — 프랑스어나 독일어처럼 명사를 남성/여성/중성으로 나누지 않는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일치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드물다.
언어를 넘어 문화적 유사성도 주목할 만하다. 사우나 문화 — 핀란드의 사우나와 한국의 찜질방·한증막은 증기를 이용한 목욕 전통이라는 점에서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곰 숭배(bear worship) — 핀란드와 시베리아 원주민의 곰 축제(bear feast)와 한국 건국신화(단군신화)의 곰 모티프. 샤머니즘 전통 — 앞 장에서 다룬 바와 같이, 한국의 무(巫)와 시베리아-핀란드의 샤먼이 구조적으로 동일한 의례 체계를 가진다.
2021년, Robbeets 등은 Nature에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Robbeets et al., 2021, Nature 599:616-621). 연구팀은 언어학(linguistic phylogeny), 고고학(archaeological evidence), 유전학(ancient DNA)이라는 세 개의 독립적 데이터 세트를 삼각검증(triangulation)하여, Transeurasian 언어(한국어, 일본어, 투르크어, 몽골어, 퉁구스어를 포함)가 약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에서 기장(millet) 농업과 함께 확산되었다고 논증했다. 기장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토기와 문화가 함께 이동한 것이다. 이것은 빗살무늬토기의 "시간의 벨트"와 정합적이다.
Choe와 Bale(2002)은 Arctic Anthropology에서 한반도와 시베리아의 선사시대 토기를 비교하며, 빗살무늬 전통이 동북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스칸디나비아까지 연결되는 문화적 연속체(continuum)의 일부임을 논증했다 (Choe & Bale, 2002, Arctic Anthropology 39(1-2):95-121). Carpelan(1999)은 핀란드 빗살무늬토기의 동방 기원설을 지지하며, 우랄 산맥을 넘어온 인구 이동과의 연관성을 제시했다. Im Hyo-Jai(2000)는 한국 신석기 문화의 포괄적 개관을 통해, 즐문토기가 한반도 전역에서 수천 년간 지속된 뿌리 깊은 문화 전통임을 보여주었다.
빗살무늬토기의 뾰족한 바닥과 핀란드 토기의 편평한 바닥의 차이는 기능적 적응이다. 모래 해변에서 바위 바닥으로 환경이 바뀌었을 때, 도구의 형태는 바뀌었다. 그러나 장식 문법 — 수평 띠, 지그재그, 셰브런, 해칭의 체계적 배열 — 은 보존되었다. 기능은 변하고, 정체성은 남는다. 이것이 이동하는 인류의 방식이다.
빗살무늬의 길은 고래의 길보다 넓다. 고래의 길이 태평양 연안을 따른 해양의 길이었다면, 빗살무늬의 길은 유라시아 대륙 내부를 관통하는 대륙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의 시간적 방향은 명확하다 — 동에서 서로.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거쳐 핀란드에 이르고, 다시 중부유럽의 켈트 세계까지. 수천 년에 걸쳐, 빗살무늬를 새기는 사람들이 서쪽으로 걸어갔다.
References: Jordan, P. & Zvelebil, M. (2009) "Ex Oriente Lux," in Ceramics Before Farming, Left Coast Press; Kuzmin, Y.V. (2006) Antiquity 80(308):362-371; Olalde, I. et al. (2018) Nature 555:190-196; Robbeets, M. et al. (2021) Nature 599:616-621; Choe, C.P. & Bale, M.T. (2002) Arctic Anthropology 39(1-2):95-121; Carpelan, C. (1999) in Pohjan poluilla, Finnish Society of Sciences; Im, H.J. (2000) Korean Neolithic Culture, Jibmundang.
한국에는 약 40,000기의 고인돌(dolmen)이 있다. 이 숫자를 처음 접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즉시 파악하기 어렵다. 비교가 필요하다. 40,000기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50%에 해당한다. 유럽 전체의 고인돌보다 많다.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스칸디나비아의 거석(megalith)을 모두 합쳐도 한반도 한 곳에 미치지 못한다 (Nelson, 1993, The Archaeology of Korea, Cambridge UP, pp. 117-147).
2000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등재 명칭은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이며, 등재 기준은 "선사시대 기술·사회 발전의 뛰어난 증거"였다 (UNESCO, 2000, Nomination File No. 977). 전라북도 고창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이 산기슭을 따라 밀집해 있고, 전라남도 화순에는 계곡을 따라 596기가 분포하며, 인천 강화도에는 탁자식(table-type) 고인돌이 해안을 따라 서 있다.
이 숫자 자체가, 고대 한반도 사회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를 요구한다. 고인돌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생각해보자. 상석(capstone)의 무게는 작은 것이 수 톤, 큰 것은 수십 톤에 달한다.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의 상석은 약 50톤으로 추정된다. 이 돌을 채석장에서 깨내고, 운반하고, 들어 올려 받침돌 위에 얹으려면 — 수백 명의 조직적 노동력이 필요하다. 석재를 깨는 기술, 통나무 굴림대와 지렛대를 이용한 운반 기술, 경사면과 토축을 이용한 적재 기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직 — 누가 지시하고, 누가 노동하고, 누가 식량을 공급하고, 왜 이 거대한 작업에 동의하는가. 40,000기의 고인돌은, 한반도에 그만한 규모의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음을 물질적으로 증명한다 (Rhee & Choi, 1992, J. World Prehistory 6(1):51-95).
세계 지도 위에 거석 문화(megalithic culture)의 분포를 표시하면, 놀라운 패턴이 나타난다. 거석은 대륙 내부가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분포한다. 대서양 연안 — 프랑스 브르타뉴의 카르낙(Carnac, c. 4500 BCE, 3,000기 이상의 선돌), 영국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Stonehenge, c. 3000 BCE),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Newgrange, c. 3200 BCE). 지중해 연안 — 몰타의 거석 신전(c. 3600 BCE), 사르디니아의 누라기(nuraghi). 인도양 연안 — 인도 데칸 고원의 고인돌. 그리고 태평양 연안 — 한반도의 40,000기.
이 분포는 해상 경로를 시사한다. Schulz Paulsson(2019)은 PNAS에서 유럽 전역 2,410건의 방사성탄소 연대를 분석하여, 유럽 거석 문화의 확산 경로를 재구성했다 (Schulz Paulsson, 2019, PNAS 116(9):3460-3465). 결과는 명확했다: 유럽 거석 문화는 프랑스 북서부(브르타뉴)에서 시작하여, 해상 경로를 통해 영국 제도, 스칸디나비아, 이베리아 반도, 지중해로 확산되었다. 내륙이 아니라 바다를 따라. 이것은 Renfrew(1973)가 Before Civilization에서 제시한 독립 발명론(independent invention) — 각 지역의 거석 문화가 외부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가설 — 에 대한 중요한 수정이다 (Renfrew, 1973, Before Civilization, Jonathan Cape).
Cunliffe(2001)는 Facing the Ocean에서 대서양을 "분리하는 장벽이 아니라 연결하는 고속도로"로 재정의했다 (Cunliffe, 2001, Facing the Ocean: The Atlantic and Its Peoples, Oxford UP). 그의 논지: 선사시대 유럽의 대서양 연안 공동체들은 내륙의 이웃보다 바다 건너편의 공동체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바다는 벽이 아니라 길이었다. 이 원리를 전 세계로 확장하면 — 거석 문화의 해안선 분포는, 선사시대에 이미 해양 네트워크가 대륙을 연결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한국 고인돌의 상석 위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파여 있다. 성혈(星穴, cup marks)이라 불리는 이 구멍들은 무작위로 흩어진 것이 아니다. Kim Byung-mo(1982)는 한국 고인돌의 성혈 배치를 분석하여, 이것이 북두칠성(Big Dipper), 오리온(Orion), 카시오페이아(Cassiopeia) 등 실제 별자리에 대응함을 밝혔다. 고인돌의 상석은 하늘의 축소판이었다. 죽은 자의 무덤 위에 하늘을 새겨, 죽은 자를 별의 세계로 보내는 것. 또는 살아 있는 자에게 계절과 방위를 가르치는 것.
따라서 고인돌은 하나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최소 세 가지 기능이 중첩된다. 첫째, 무덤. 하부 구조에서 인골과 부장품이 발견된다. 둘째, 영토 표지(territorial marker). 수십 톤의 거석을 세울 수 있는 집단의 힘을 과시하여, "이 땅은 우리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 셋째, 천문학 교과서. 성혈을 통해 별자리 지식을 기록하고 전수하는 것. Joussaume(1988)은 Dolmens for the Dead에서 전 세계 거석 문화를 비교하며, 거석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돌로 만든 우주론(cosmology in stone)"이라고 규정했다 (Joussaume, 1988, Dolmens for the Dead, Cornell UP).
한반도의 청동기 기술 수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다. "여러 개의 꼭지(多鈕)가 달린 가는 무늬(細文)의 거울(鏡)"이라는 뜻이다. 이 거울의 뒷면에는 0.3mm 간격으로 13,000개 이상의 동심원 선이 새겨져 있다. 육안으로는 하나의 매끄러운 면처럼 보이지만, 확대하면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들이 정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현대의 정밀 가공 기술로도 이 수준의 재현은 극히 어렵다고 보고되었다.
이 거울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7,000년 전에 고래를 조직적으로 사냥한 해양 문명. 별자리를 돌에 새긴 천문학적 지식. 수만 기의 거석을 세운 사회적 조직력. 그리고 0.3mm 정밀도의 청동기 주조 기술. 이 모든 것을 가진 문명이라면 — 대양을 횡단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 질문은 던져야 한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물질적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이다.
거석 문화가 해안선을 따라 분포한다는 것은, 그것을 세운 사람들이 바다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40,000기 고인돌은, 그 해양 네트워크의 동쪽 끝(또는 시작점)에 위치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는 제1장의 고래의 길, 제2장의 빗살무늬의 길과 교차한다. 서로 다른 증거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한반도는 고립된 반도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해양 문명의 거점이었다.
40,000기의 고인돌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선사시대"라 부르는 시기에, 한반도에는 수백 명을 동원하여 수십 톤의 돌을 운반하고, 별자리를 기록하고, 0.3mm 정밀도의 금속을 주조할 수 있는 사회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회는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References: UNESCO (2000) Nomination File No. 977; Schulz Paulsson, B. (2019) PNAS 116(9):3460-3465; Renfrew, C. (1973) Before Civilization, Jonathan Cape; Rhee, S.N. & Choi, M.L. (1992) J. World Prehistory 6(1):51-95; Nelson, S.M. (1993) The Archaeology of Korea, Cambridge UP; Kim, B.M. (1982) Megalithic Culture in Korea, Hanyang University Press; Cunliffe, B. (2001) Facing the Ocean, Oxford UP; Joussaume, R. (1988) Dolmens for the Dead, Cornell UP.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면 신라 금관들이 있다. 금관총 금관(1921년 발견), 서봉총 금관(1926년), 천마총 금관(1973년), 황남대총 금관(1974년). 이 금관들은 세계 고고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같은 시기 유럽(5-6세기)에서 이 정도 규모와 기술 수준의 금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게르만 부족들이 유럽을 나누어 가지던 시기에, 한반도 동남쪽의 작은 나라 신라에서 이런 금관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수수께끼다.
신라 금관에는 네 가지 구조적 요소가 있으며, 이 네 가지 모두가 스키타이-시베리아 금 문화(Scytho-Siberian gold culture)와 일치한다.
(1) 출자형(出字形) 나뭇가지. 금관의 정면에 한자 "出"자 모양의 수직 장식이 세 개 솟아 있다. 이것은 나뭇가지를 양식화한 것이며, 세계수(World Tree) 숭배의 물질적 표현이다. 세계수는 하늘과 땅과 지하를 연결하는 우주적 나무로, 유라시아 샤머니즘의 핵심 상징이다. 시베리아 샤먼의 의례복에 나뭇가지 장식이 달려 있고, 알타이 파지리크(Pazyryk) 쿠르간 출토 유물에 세계수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Jacobson(1993)은 The Deer Goddess of Ancient Siberia에서 세계수 숭배가 스키타이-시베리아 문화권의 핵심 요소임을 논증했다 (Jacobson, 1993, Brill).
(2) 녹각형(鹿角形) 사슴뿔. 금관의 양쪽에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뻗어 있다. 사슴(deer)은 초원 유목민의 가장 신성한 동물이었다. 몽골과 시베리아 곳곳에 서 있는 사슴돌(deer stone)은 높이 수 미터의 석주(石柱) 위에 날아오르는 사슴을 조각한 것이다. Fitzhugh(2009)는 몽골의 사슴돌을 분석하며, 이것이 전사의 무덤 표지이자 천상 세계로의 통로를 상징한다고 논증했다 (Fitzhugh, 2009, "The Mongolian Deer Stone-Khirigsuur Complex," in Proceedings of the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ongolian Archaeology). 신라 금관의 사슴뿔은 이 초원 전통의 직접적 연장선에 있다. 왕이 사슴뿔 금관을 쓴다는 것은, 왕이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왕(shaman-king)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3) 보요(步搖). 금관 곳곳에 얇은 금판 달개가 매달려 있다. 가는 금실에 연결된 이 금판들은 착용자가 걸으면(步) 흔들린다(搖).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수백 개의 금판이 반사광을 만들며 찰랑거린다. 이 효과는 태양신의 현현(epiphany)을 시각화한 것이다. 초원 유목민에게 금은 태양의 금속이었고, 왕은 태양의 대리자였다. 보요 기술은 스키타이와 흉노의 금 장신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전해졌다 (Bunker, 2002, Nomadic Art of the Eastern Eurasian Steppes, Metropolitan Museum of Art).
(4) 금 세공 기술. 신라 금관의 제작 기술 자체가 초원과 연결된다. 얇은 금판을 두드려 펴는 기법(repoussé), 금실을 꼬아 장식하는 기법(filigree), 작은 금 알갱이를 표면에 부착하는 기법(granulation). 이 기술들의 조합이 스키타이-파지리크-흉노 금세공 전통과 일치한다 (Parzinger, 2006, Die frühen Völker Eurasiens, C.H. Beck, pp. 598-647).
신라의 왕릉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먼저 땅 위에 나무로 덧널(木槨, wooden chamber)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다. 그 위에 돌을 쌓아 올리고(積石), 마지막으로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다. 이 구조는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에만 존재하며, 중국의 전통 묘제(磚室墓나 土壙墓)와도, 일본의 전통 묘제(전방후원분 등)와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 구조가 5,000km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파지리크(Pazyryk) 쿠르간(kurgan, 고분)이다. Rudenko(1970)가 발굴하고 보고한 파지리크 쿠르간은 나무 널방(wooden chamber) 위에 돌을 쌓고 봉토를 덮은 구조다 (Rudenko, 1970, Frozen Tombs of Siberia: The Pazyryk Burials of Iron Age Horseme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영구동토층 덕분에 유기물이 보존되어, 정교한 직물, 카펫, 마구(馬具), 타투가 있는 인체까지 발견되었다. 구조적으로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파지리크의 쿠르간은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다.
금관의 네 가지 요소와 적석목곽분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경로를 재구성하면: 스키타이(Scythia, 흑해 연안, 기원전 7-3세기) → 파지리크(Pazyryk, 알타이 산맥/바이칼 호, 기원전 5-3세기) → 흉노(Xiongnu, 몽골 고원/만주, 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 → 한반도(경주, 4-6세기). 초원의 금 문화가 유라시아 스텝(steppe)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여, 궁극적으로 경주에 도달한 것이다.
Kim Won-Yong(1981/2004)은 Art and Archaeology of Ancient Korea에서 신라 금관의 스키타이-시베리아 기원설을 학술적으로 논증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논지: 신라의 금 문화는 한반도 내부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초원을 통해 들어온 것이며, 이것은 신라 지배층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 재고를 요구한다 (Kim, 1981/2004,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1973년 발굴된 천마총(天馬塚)은 이 연결의 가장 극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금관, 금제 허리띠, 금동 신발, 유리구슬 등 부장품 11,526점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유물은 말다래(障泥, 말 옆에 다는 흙받이)에 그려진 그림이다. 자작나무(birch) 껍질 위에 그려진 날개 달린 백마(天馬). 이 그림이 천마총이라는 이름의 기원이다 (Gyeongju National Museum, 2001, Silla Gold catalog).
자작나무 껍질 자체가 증거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와 몽골의 상징적 나무이며, 초원 유목민의 일상 재료였다. 파지리크 쿠르간에서도 자작나무 껍질 공예품이 대량 출토되었다. 날개 달린 말(winged horse)은 초원 샤머니즘에서 샤먼의 영혼이 천상 세계로 비행할 때 타는 영적 탈것이다. 금관의 세계수와 사슴뿔이 천상으로의 통로를 상징한다면, 날개 달린 말은 그 통로를 이동하는 수단이다.
신라의 건국 전설에는 세 성씨가 등장한다: 박(朴), 석(昔), 김(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 세 성씨는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토착적 남방 기원을 시사한다. 석탈해는 바다 건너 용성국(또는 다파나국)에서 왔으며, 동북방 해양 기원과 철(鐵) 문화를 대표한다. 김알지는 금궤(金櫃)에서 발견되었으며, 북방 초원 기원과 금(金) 문화를 대표한다.
"김(金)"이라는 성 자체가 단서다. 초원 유목민의 왕실은 태양과 금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흉노의 선우(單于)는 "천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 —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투르크어로 "알툰(altun)"은 금을 뜻하며, 알타이 산맥의 어원이기도 하다. "김"이라는 성이 초원 왕실의 금/태양 칭호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는 가설은, 금관의 물질적 증거와 정합적이다.
초원에서 온 것은 금관과 무덤 양식만이 아니다. 정치 전통도 왔다. 몽골의 쿠릴타이(kuriltai/quriltai)는 부족장들이 모여 칸(Khan)을 선출하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합의체다. 칭기스칸도 쿠릴타이에서 선출되었다. 바이킹의 팅(Thing/Þing)은 자유민들이 모여 법을 만들고 분쟁을 해결하는 민회(assembly)다. 아이슬란드의 알팅(Althing, 930년 설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의회로 불린다.
신라의 화백(和白)은 이 전통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귀족 회의체인 화백은 만장일치(unanimity)를 원칙으로 왕위 계승, 전쟁, 외교 등 국가 중대사를 결정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하나라도 반대하면 그만둔다(一不從則不得行)." 이것은 다수결(majority rule)이 아니라 합의제(consensus)다. 유라시아 초원을 횡단하여, 흑해에서 몽골을 거쳐 한반도까지, 부족 합의제라는 정치 원리가 공유되고 있었다.
신라 금관은 아름다운 예술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출자형 나뭇가지는 세계수를, 녹각형은 사슴 숭배를, 보요는 태양신의 현현을, 금 세공 기술은 초원과의 물리적 연결을 말하고 있다. 적석목곽분은 파지리크의 쿠르간과 같은 원리로 지어졌고, 천마총의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날개 달린 말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혼 비행을 물질화한 것이다. 초원의 금이 경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금과 함께, 세계관과 정치 전통이 도착했다.
References: Jacobson, E. (1993) The Deer Goddess of Ancient Siberia, Brill; Kim, W.Y. (1981/2004) Art and Archaeology of Ancient Korea,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Bunker, E.C. (2002) Nomadic Art of the Eastern Eurasian Steppes, Metropolitan Museum of Art; Parzinger, H. (2006) Die frühen Völker Eurasiens, C.H. Beck; Rudenko, S.I. (1970) Frozen Tombs of Siber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Fitzhugh, W. (2009) "The Mongolian Deer Stone-Khirigsuur Complex," Arctic Studies Center, Smithsonian; Gyeongju National Museum (2001) Silla Gold catalog; Samguk Sagi (1145); Samguk Yusa (c. 1281).